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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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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국기

말레이시아(말레이어: Malaysia)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연방제 입헌 군주국이다. 말레이시아는 13개의 주와 3개의 연방 직할구로 구성되어 있고, 남중국해로 나뉜 말레이반도 지역과 보르네오섬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태국,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해상 국경은 싱가포르베트남, 필리핀과 맞대고 있다. 수도는 쿠알라룸푸르이지만, 연방정부는 푸트라자야에 있다.그리고 다리를 통해 싱가포르와 연결된다.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국이며, 국가 원수인 군주(국왕)은 9개 주에 있는 술탄에 의하여 5년에 한 번씩(단, 궐위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 호선으로 선출한다. 군주의 칭호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이며, 지금 군주는 파항주의 술탄 압둘라이다. 정부의 장은 수상이다. 정부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에 가깝고, 법체계는 영국의 법에 기초한다. 말레이시아는 민족과 문화가 다양하고 그 다양성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국교는 이슬람교이지만,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인정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는 유라시아 본토의 최남단 지역인 탄중피아이가 있고, 적도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 열대 기후의 국가이다. 다양한 동식물군이 있어 생물 다양성이 큰 국가이다. ASEAN, 이슬람 회의 기구의 창립멤버이며, APEC, 영국연방,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다.

개요[편집]

  • 수도: 쿠알라룸푸르 (공식), 푸트라자야 (행정)
  • 면적: 329,847km²
  • 인구: 33,037,483 명 (2022년)
  • 공용어: 말레이시아어
  • 정치체제: 군주제, 입헌제, 연방제, 양원제, 내각제
  • 국왕: 파항의 압둘라
  • 총리: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역사[편집]

식민지배 이전[편집]

약 4만년 전 지금의 말레이시아 땅에 인류의 거주지들이 형성된 기록이 있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신생국가가 아님을 증명한다. 현재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에 해당되는 말레이 반도의 첫 정착민은 검은 피부를 가진 네그리토로 추정된다. 기원후 시대 초기 인도양남중국해 사이의 말레이 반도는 동서양 무역상 및 여행객들의 장소였는데, 2~3세기경 그들은 이곳에 무역항과 해안 마을을 건설했다. 그 결과 인도중국 문화가 현지 문화에 강한 영향을 끼쳤고, 사람들은 이들로부터 유입된 힌두교와 불교를 믿기 시작했다.2세기 무렵 말레이 반도 북부의 랑카수카 왕국이 번창하기 시작했으며 15세기까지 존속했다. 7~13세기 말레이 반도 남부 해안 지역은 스리비자야 제국의 일부였다. 스리비자야 제국의 멸망 이후 등장한 마자파힛 제국은 말레이 반도와 말레이 제도 일대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14세기 무렵 아랍 상인들이 이슬람교를 소개하면서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말레이시아가 이슬람 국가가 되는 시초가 되었다. 15세기 초 구 스리비자야 제국의 왕자였던 파라메스와라가 지금의 말라카 지역에 말레이 반도 최초의 독립 국가로 간주되는 말라카 술탄국을 건설했다. 지리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말라카는 당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국제적인 무역항으로써 매우 크게 번영했다.

식민통치 시절[편집]

이 번영의 말라카도 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과 함께 몰락했다. 포르투갈이 침공한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권을 확장하는 한편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말라카 주민들은 포르투갈의 통치에 강력하게 저항했으며, 1641년 이 지역을 노린 네덜란드의 침공으로 포르투갈의 지배도 끝이 났다. 이어 네덜란드의 지배가 시작되었으나, 1786년 크다의 술탄피낭영국령 동인도 회사에 양도하면서 대영제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1819년 싱가포르를 획득했고, 이후 기존에 말라야를 지배하던 네덜란드와 마찰이 발생하자 1824년 영국-네덜란드 협정을 맺어 세력범위를 확정했다. 이 협정에 따라 영국은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해서 북부는 영국이, 남부는 네덜란드가 지배하도록 했는데 말라카는 영국이 가져가는 대신 자신들이 지배하던 벤쿨렌(방카훌루)을 네덜란드에 양도했다. 이후 영국의 세력범위는 영국령 말라야라 하여 오늘날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되었고 네덜란드의 세력범위는 네덜란드령 인도라 하여 오늘날의 인도네시아가 되었다.

1826년 영국은 피낭, 말라카, 싱가포르, 라부안을 직접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이 지역에 직할식민지의 일종인 해협 식민지를 건설했다. 20세기 무렵 파항, 슬랑오르, 페락, 느그리슴빌란으로 구성된 연합 말레이 주에 영국이 눌러앉기 시작했는데 각 주의 말레이 지도자들이 자신들과의 협정을 거부할 것이 확실해지자 그들을 조언해 영국 지도부를 임명하게 했다. 나머지 5개 주는 비연합 말레이 주라 하여 영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았는데 20세기 영국인 조언자가 있게끔 전환되었다. 19세기까지 말레이 반도와 보르네오의 발전은 대개 큰 관련이 없었다. 영국은 지배 기간 동안 중국과 인도에서 수입된 노동자들의 이민을 장려했다.

현재 사바주에 해당되는 지역은 1877년부터 1878년 사이 브루나이술루의 술탄이 통치권을 영국에 양도하면서 영국령 북보르네오가 되었다. 지금의 사라왁주에 해당되는 지역은 영국 모험가인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이 1842년 브루나이 술탄으로부터 양도받은 뒤 사라왁 왕국이 되었으며, 1946년 직할식민지로 개편될 때까지 백인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일본이 말라야, 북보르네오, 사라왁, 싱가포르를 점령했으며, 1945년 항복할 때까지 3년간 통치했다. 비록 3년으로 말레이시아를 지배한 그 어떠한 나라보다도 짧게 통치했지만, 더 잔인했으며, 특히 중국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일본은 이 지역의 중국인들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중국인뿐 아니라 청년들은 태국을 거쳐 미얀마까지 이어지는 철로를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막노동에 영양 실조 등으로 희생되어 이 철로는 '죽음의 철로'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않았으며 식량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음으로써 경제난에 시달렸다. 이 무렵 공산주의자들의 산악전이 시작되었고, 한편으로는 인종적 긴장 상태 및 민족주의가 성장하였다. 민중의 항의가 이어졌으며,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나 영국이 재점령했다. 이에 민족주의가 더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독립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말라야 연합에서 독립까지[편집]

영국의 재점령 이후 영국은 1946년 싱가포르를 제외한 영국령 말라야 지역에 직할 식민지인 말라야 연합을 건설했다. 말라야 연합의 이민법은 출생지주의(jus soli)를 강조했는데, 이 이민법에 따라 말레이인 또는 말라야 연합 및 싱가포르 출신자들은 자동으로 시민권이 주어지며, 중국인(명나라, 청나라 출신) 및 인도인(영국령 인도 출신) 등 외족도 1942년 2월 15일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으면 시민권이 주어졌다. 이민법은 모든 민족에게 평등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던 말레이인들은 이 결과로 외국인들의 힘이 세져 자신들의 지위가 더 추락할까봐 두려움을 느꼈으며, 말레이인들의 상징이었던 술탄제를 폐지함으로써 말레이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되었다. 결국 말라야 연합은 해체되었고, 대신 1948년 말라야 연방이 결성되었다. 이후 말레이인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들이 시작되는 가 하면 영국의 보호 아래 말레이 주의 지도자들의 자주성을 회복시켰다. 이 무렵 말라야 공산당(PKM) 소속 중국계 게릴라들이 영국을 자국에서 축출하는 목적으로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에 동년 말라야 비상사태가 선포되었고, 영국 연방 국가들의 병력을 동원해 이들을 진압하였다. 비상사태는 독립 후인 1960년까지 지속되었다. 말라야의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져 1955년 총선이 실시되었고, 이어 1957년 8월 3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현대의 역사[편집]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다.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지도자였던 툰쿠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이 초대 총리가 되었으며, 느그리슴빌란 주의 최고지도자(Yang di-Pertuan Besar; 종종 '술탄'으로 간주됨)였던 투앙쿠 압둘 라만(Tuanku Abdul Rahman)이 초대 국왕이 되었다. 말라야 인들의 소원이었던 독립을 쟁취했으나, 갈 길은 멀고 험난했다. 나라 안은 말레이인과 중국인 등 민족간의 갈등이 심했고, 말라야 연방 홀로는 국제 사회에 나설 수 없었다. 또한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될 만한 자원이 부족했고, 원주민의 수가 부족하여 말레이인들을 우대하는 데 크게 불리했다. 마침 영국의 또다른 식민지였던 북보르네오, 사라왁, 싱가포르, 브루나이에서도 독립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말라야 연방 정부는 이 지역에 자국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당초 브루나이가 먼저 동의함으로써 1961년 말라야 연방의 가입했으나, 석유라는 최고의 경제적 조건을 갖춘 브루나이는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쇠퇴할 것을 우려, 1년만에 탈퇴했다. 한편 북보르네오(사바), 사라왁, 싱가포르는 당초 이를 고사했으나, 싱가포르가 가입을 결정했고, 싱가포르와 깊은 인연이 있던 북보르네오와 사라왁도 가입을 결정했다. 1963년 세 나라 모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며, 9월 16일 현재의 말레이시아 연방을 성립하였다.

말레이시아[편집]

1963년 9월 16일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가 말레이시아를 결성했다. 2년 뒤 싱가포르가 탈퇴하여 현재의 말레이시아로 지속되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구성된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10개 회원국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다.

압둘 라만 1차 내각

1957년 독립한 말라야 연방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툰쿠 압둘 라만은 말라야 연방의 국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싱가포르, 사라왁, 북보르네오(사바)에 자국 가입을 요청했다. 이리하여 1963년 9월 16일 지금의 말레이시아가 출범했고, 그는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라만 정부는 지배계층이며, 말레이시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들을 우대했다. 이는 낮은 경제수준으로 사회에서 밀릴 걸 우려한 말레이인들의 불만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인들이 다수를 점한 싱가포르 주의 반발을 가져왔다. 싱가포르 주의 총리였던 리콴유는 "중국인도 말레이 원주민과 같은, 엄연한 부미푸트라이다"라고 주장했으며, "말레이시아인의 말레이시아!"를 강조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전체를 두고 보면,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으며, 그 결과 싱가포르 주정부와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 간의 마찰이 빚어졌다. 1964년 싱가포르에서 인종 폭동이 발생했고, 양측 간의 골이 깊어지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싱가포르가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며 자국에서 추방키로 했다. 1965년 싱가포르 정부는 말레이시아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8월 9일 말레이시아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라만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말레이시아는 출범 이후 국제적 지위가 높아졌고, 1967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5개국이 가입한 ASEAN의 결성을 실현하였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국부로 추앙받았으나, 인종 대립이 심해져 1969년 5월 13일 대폭동으로 이어졌다(일명 5·13 사건). 동년 총선에서 집권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은 많은 의석을 잃었고, 국민들은 물론 당 내에서도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만은 계엄령을 선포해, 철권을 휘두르는 등 독재자로 변모했다.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졌으며, 1970년 총리직을 사임했다. 부총리였던 압둘 라작 후세인이 총리직을 승계했다.

압둘 라작 2차 내각

1970년 신임 총리에 취임한 압둘 라작은 집권 후 사회의 안정을 목적으로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에 의한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했으며, 반대파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했다. 그는 민주적인 정치 참여가 인종간의 갈등을 조장한다며 말레이시아를 비정치화했고, "평화를 원한다면 BN"을 택해라" 등으로 국민들을 위협하고 중국인들의 시위를 비합법화했다. 라작 정부는 기존의 말레이인 우대 정책으로는 실효가 없다고 판단, 이른바 '부미푸트라 정책'을 작성했는데 이에 따라 말레이인들을 우대하고 외국인들의 이민을 제한하여 현재 말레이시아의 폐쇄적이고 인종 차별적인 모습을 구축했다. 말레이인들과 무슬림들은 정치적으로 우대를 받는 가 하면, 인종 분쟁을 해소하려 했으나 오히려 조장해, 현재 중국인들이 말레이인에 대한 반감을 갖는 요인이 되었다. 라작 정부는 부미푸트라 정책을 실현에 옮기고자 했으나, 1976년 1월 14일 라작이 급서하면서 무산되고 만다. 부총리 후세인 온이 총리직을 승계했다.

후세인 온 내각

라작의 뒤를 이은 후세인 온은 라작이 두고 간 부미푸트라 정책을 실현에 옮겼으며, 이에 따라 말레이인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외국인들의 유입을 차단해,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정치적 단결을 강조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고, 1981년 4월 20일 통합국민신뢰계획을 발표했다. 한편으로는 인종 간의 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주력했다. 후세인 온은 부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와 종종 마찰을 빚었으며, 마하티르의 도움을 받아 이뤄낸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후세인의 건강은 매우 악화되었으며, 7월 17일 총리직을 사임 함에 따라 마하티르가 총리직을 승계했다.

마하티르 모하마드 내각

1981년 7월 17일 새 총리로 임명된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대대적인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추구했다. 그는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일본대한민국으로부터 배우자"는 소위, 향동학습정책(向東學習政策, Look East Policy)을 펼쳤다. 기존 잔인과 독재로 얼룩진 통치에서 벗어나 부분적인 유화조치를 펼쳤는데, 일례로 국가보안법 수감자 21명을 석방했다. 집권세력의 확장을 위해 ABIM의 지도자였던 안와르 이브라힘을 UMNO로 편입시켰으며, 이듬해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각 주의 지도자인 술탄 간의 대립을 완화시켰고,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어 현재 말레이시아가 산업대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종 분쟁을 줄이기 위해 부미푸트라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방식으로 인종 갈등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1990년대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인구 과밀화를 막고 분산시키기 위해 수도 천도 정책을 펼쳐, 행정 수도인 푸트라자야가 새로 설치되었다.

재직 기간 동안 말레이시아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른바 '신흥 중진국'으로 떠올랐다, 이로써 '현대화의 아버지' 등으로 칭찬을 받았다.

2003년 경제 발전의 또다른 일원으로 중학교에서 수학과 과학 과목을 영어로 전환했으며, 동년 10월 31일 22년의 장기집권을 마치고 퇴임했다.

압둘라 바다위 내각

2003년 10월 31일 압둘라 아마드 바다위가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재직 중 초등 교육을 무상·의무화 하여 가난한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 결과 말레이시아인의 문해율과 교육률은 크게 향상되었다. 이 결과로 '인적자원 개발의 아버지'로 호칭되었다. 그는 민족의 단결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정책을 펼쳤으나, 여전히 말레이인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사회의 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져 민주화라는 큰 문제 앞에 직면하게 되었다. 한편 2008년 마하티르 정권 시절 투옥된 안와르 이브라힘의 집행유예기간이 만료되면서 UMNO의 지지도가 야권으로 이탈하는 결과가 벌어졌다. 그 결과 2008년 총선에서 야당의 의석수가 개헌저지선을 초과하면서 UMNO의 패배를 가져왔고, 당 내에서 나온 사임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2009년 총리직을 사임했다.

나집 라작 내각

2009년 4월 3일 나집 라작이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그는 제2대 총리 압둘 라작의 아들이며, 유력 정치 가문 출신으로 주목받았다. 취임 후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는데, 예를 들어 말레이인들을 지나치게 우대했던 부미푸트라 정책의 완화를 추진해 외국인들에게 지나쳤던 차별을 대폭으로 완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 정책에는 손을 대지 않았으며, 종종 민주화 시위에 직면해오고 있다. 부정 선거 관행을 고치고 있지 않아, 2013년 총선에서 야권이 더 많은 지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선거와 게리맨더링으로 UMNO의 재집권을 이끌었다. 한편 완화를 추진하던 부미푸트라 정책을 다시 강화해 더 강력한 인종차별과 이민제한을 추진하고 있으며, '악법'으로 꼽혀온 국가보안법을 폐지한 대신 새로운 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선동처벌법 강화 등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야권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 그는 말레이시아를 UMNO의 일당독재체제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2015년 국영기업 1MDB와 연계된 부패 스캔들을 계기로 야권 인사들과 국민들의 큰 저항에 맞부딪치고 있으며, 8월부터 9월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 단체 버르시 4.0 등의 시위 등, 나집 정부는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마하티르 전 총리가 동참하는 등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7월 1MDB 스캔들에 관해 해명을 요구한 관계로, 무히딘 야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및 압둘 가니 파타일 검찰총장 등 일부 공무원들이 경질되었다.

2018년 총선에서 패배하여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총리 취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마자 조세포탈 및 세금 탈세 와 사기 혐의로 고소 당하여 명품가방과 자녀 가재도구 유체동산 등 가압류 가집행 처분을 받게 되어 경찰 수사 중이다.

그 뒤인 2020년 7월 28일에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정치[편집]

말레이시아는 연방제 국가이며, 선거군주제를 기반으로 한 나라다. 현재 말레이시아의 정치 체제는 웨스트민스터 체제와 유사한데, 이는 영국 식민지의 유산이다. 국가 원수는 양디퍼르투안 아공인데, 흔히 왕으로 부른다. 왕의 임기는 5년이며, 피낭, 믈라카, 사바, 사라왁을 제외한 9개 각 주의 술탄(Sultan) 중에서 교대로 선출된다. 현재의 왕은 2019년에 선출된 파항주의 압둘라이다. 왕은 총리와 내각을 임명할 권리와 군대 최고 사령관으로서의 통솔권 등을 갖는다. 1994년 헌법 개정 이후 왕은 대개 의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인종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간주되며, 많은 정당들이 인종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신경제정책 또는 대체된 국가개발정책 등 확정적인 정책들이 부미푸트라(말레이인 또는 말레이시아 내 원주민/토착민)를 화족이나 인족 등 비부미푸트라보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려놓기 위해 시행되고 있다. 이 정책에 따라 부미푸트라는 고용, 교육, 학사, 사업은 물론 값싼 집을 구매하거나 지원받는 데 있어 우선권을 갖는다. 이 때문에 비부미푸트라 및 외국인들의 반발이 심하며, 일각에서는 이를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와 동급으로 취급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 말레이시아의 법과 사회가 세속주의를 추구해야 하느냐, 아니면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일례로 1993년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는 이슬람 과격정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을 주도로 하는 클란탄 주의회가 통과시킨 형사법의 시행을 금지한 적이 있으며, 연방 정부는 형사법은 연방 정부의 권한임을 밝혔다.

입법부[편집]

의회는 연방의회와 주의회로 나뉜다. 양원제로 상원(원로원)과 하원(대의원)이 존재한다. 현재 국회의원은 총 222명이고, 최대 5년 임기를 갖는다. 상원의원 70명은 3년 임기를 가지며, 그 중 26명은 13개의 주의회에서 선출되고, 나머지 44명은 총리의 제안에 따라 국왕이 임명한다.[11] 국회는 다당제를 기초로 하며, 소선거구제 형태로 선출한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독립한 직후 여러 개의 정당이 연합해 만든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BN)이 현재까지 집권하고 있다.

각 주에는 단원제 성격의 주의회가 존재하며, 이 의원들은 단일 선거구에서 당선된 이들이다. 주정부는 주수상이 지도하며, 주수상은 주의회 내 다수당 소속 의원이다. 각 주에는 세습형 지도자가 있는데, 주수상은 대개 말레이인이어야 하며 총리의 추천에 따라 지도자가 임명한다. 하지만 꼭 말레이인인 것은 아닌데, 예를 들어 사라왁의 초대 주수상 스테픈 칼롱 닝칸, 사바의 초대 주수상 툰 푸아드 스테픈스, 전 주수상 총카키엣 등 비말레이인들도 있다. 국회의원 선거(총선거)는 5년 이내로 치러지며, 가장 최근에 치러진 총선은 2013년 5월에 있었다. 21세 이상의 등록된 유권자는 대의원 후보자들에게 투표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주에서는 주의회 의원들도 선출할 수 있다. 의무투표제를 시행하지 아니하며, 사라왁은 예외적으로 주 총선이 연방 총선과 동시에 치러지도록 하는 협약이 있지만 독자적인 주 총선도 치러진다.

행정부[편집]

행정부는 내각으로 구성되며, 총리가 주도한다. 총리는 대의원 의원이어야 하며, 국왕을 조언하고 의회 다수당을 지도한다. 내각 의원들은 원로원 의원과 대의원 의원 양측에서 선택될 수 있다. 총리는 내각의 수장이자 정부의 수장이다.

사법부[편집]

말레이시아의 법률 체계는 영국의 관습법에서 유래했다. 이론적으로 사법부는 독립되어 있지만, 이 독립성은 판사의 임명 과정에서 낮은 책임성과 투명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고 법원은 연방 법원이며, 그 밑으로는 상소 법원과 대법원(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 양측에 각각 하나씩 존재)이 있다. 또한 왕실에 반하는 행위를 처리하는 특별 법원이 있다. 사형제는 살인, 테러, 마약밀매 등 중범죄자들을 처리하는 데 적용된다. 시민법원과 같지만 다른 샤리아 법원이 존재하며, 샤리아 율법에 따라[57] 무슬림의 가족문제 또는 종교 관련 문제를 다룬다.

정당[편집]

말레이시아의 정당들을 주로 단독으로 활동하지 않고 연합하여 활동한다. 이러한 정당연합은 선거뿐 아니라 국정을 총괄할 때도 유지된다. 대표적인 정당연합은 국민전선(Barisan Nasional)이며, 현재 집권연합이다. 국민전선에는 독립 후 쭉 집권하고 있는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말레이시아화교협회(MCA), 말레이시아인도인회의(MIC) 등이 있으며, 이 3당은 단일민족 정당인데 UMNO는 말레이인, MCA는 중국인, MIC는 인도인, 특히 타밀인을 대변한다. 주요 야당으로는 인민정의당(PKR), 민주행동당(DAP),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PAS가 이슬람 과격주의를 추구하는 것 외에 민족/종교주의적 성향은 없다. 다만 DAP는 중국인, PKR은 인도인의 성향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가 처음부터 동일했던 건 아닌데, 한 예로 PAS는 한때 국민전선의 일원이었다가 축출된 뒤[58] 인민동맹의 일원으로 있었다. 국민전선은 부미푸트라, 특히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는데 반해, 야당은 논부미푸트라, 특히 중국인들의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중국인을 대표하는 정당인 MCA나 인도인을 대표하는 MIC는 국민전선의 일원이다. 연합에 속하지 않은 정당들은 군소 정당들인데, 대표적으로는 민중운동의 성과인 사회당(PSM), 인민당(PRM) 등이 있다. 동말레이시아, 특히 사라왁과 사바에는 각 주를 대표하는 정당들이 있는데, 그 예로 사바통일당(PBS), 사라왁인민당(PRS) 등이 있다. 이들은 대개 국민전선에 소속되어 있다. 공산주의를 금기하므로 공산당의 결성은 불법인데, 한때 존재했던 말라야공산당(PKM), 북칼리만탄공산당(NKCP) 역시 불법이었다.

헌법상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사실상 국민전선, 특히 UMNO에 의한 일당독재체제이다. 집권연합인 국민전선은 철저한 부정선거 및 개리멘더링 선거구로 60년 가량 장기집권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 및 인권침해라는 결과를 낳았다. 2013년 총선에서 인민동맹이 더 많은 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조작 및 협박 등으로 국민전선의 승리를 이끌어,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는 야권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및 야권 소속 의원 티엔 추아 등을 구속, 수감 및 위협할 정도로 야권인사 및 야당에 대한 탄압이 매우 심각하며, 미국 등 서방의 비판을 종종 받는다. 사라왁, 사바에서는 특히 현지인을 대변하고 분리독립을 추진하려는 정당들이 심하게 탄압받는데, 일례로 1990년대 초반 PBS 소속 당원들이 대규모로 구속, 수감된 사건이 있었다. 사건 후 해당 정당들은 국민전선에서 축출되었으나, 현재 재가입했다.

정치적 갈등은 심하며, 야권 내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 특히 PAS의 이슬람 극단주의적 법안 관련 문제로 기존의 인민동맹이 해체되었으며, 기존에 남은 DAP와 PKR이 국가신뢰당(Amanah)과 함께 '희망연맹(Pakatan Harapan; PH)'을 새로 결성했다.

경제[편집]

주로 주석, 팜유, 석유를 생산.수출하며, 제조업과 관광업을 주요 산업기반으로 삼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자체적으로 극복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98년 9월 초 환율을 고정시키는 조처와 함께 자본통제에 들어갔다. 자기나라 통화인 링깃화의 달러화 환전을 못하게 하고, 나라 밖에 있는 링깃화는 2달 안에 모두 국내로 갖고 들어오도록 하여, 외국에 그냥 놔 둔 링깃화는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또 국내 증권을 산 외국인이 그 증권을 다시 팔려면 1년을 기다리도록 했다. 자본통제는 국내경제를 해외 금융·외환시장과 차단한 뒤 경기부양 정책을 펴기 위한 사전조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런 조처 뒤 통화량 확대공급, 금리인하, 공공지출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기부양 정책들을 단계적으로 취해 나갔다.

IMF의 통계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의 2008년 국내총생산(GDP)은 2216.06억 달러이다. 영국의 식민지 시대부터 고무의 플렌테이션과 주석의 채굴, 천연가스의 채굴 등 특정한 농작물과 광물의 생산이 번성하였으나,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전 총리가 내세웠던 "와와산 (말레이어로 비젼의 뜻) 2020"(비젼 2020, Vision 2020) 정책에 따라, 종래의 농작물과 광산물의 수출, 관광업에 의존하였던 체질로부터 탈피하여 2020년까지 말레이시아의 정치.경제.문화 각 방면을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통화[편집]

말레이시아의 통화 단위는 말레이시아 링깃(RM)으로, 1링깃은 약 325원 정도이다. 보조통화는 (SEN)이라고 하며, 1링깃은 100센에 해당한다. 지폐는 100링깃, 50링깃, 20링깃, 10링깃, 5링깃, 1링깃의 6종류가 있고, 동전은 50센, 20센, 10센, 5센, 1센의 5종류가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공항이나 시중 은행, 호텔, 환전소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생수 500ml의 경우 약 1링깃(400원 정도), 택시의 기본 요금은 3링깃(1200원 정도)이다.

산업[편집]

경제는 전적으로 농업, 광업 등 1·2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 주석, 천연 고무, 팜유 생산국으로 1960년대 만 해도 주요수출품이 주석과 팜유였다. 이후 정부의 강력한 경제정책으로 말레이시아는 동남아국가 중 3번째로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되었으며, 주요 산업도 관광업과 제조업으로 전환되었다. 농업에 있어서는 주산물이 쌀, 고무, 코프라 등이다. 쌀은 국민의 주식이지만, 쌀 자급률이 30%에 불과해, 자급자족하지 않고 매년 다량의 쌀을 수입한다. 따라서 정부는 관개사업 실시, 벼의 품종 개량 등을 통해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최대의 고무 생산국으로, 수출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합성고무의 발달, 고무 농원 노동자 등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외에도 열대과일 재배, 도시근교 채소, 원예농업이 발달되어 있다. 광업에서는 주석광(錫鑛)과 철광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 주석 생산국으로 주석광은 서해안 몬타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충적토를 준설(浚渫)하여 채굴하며 주석을 가공하는 산업이 발달되어있다. 철광은 동해안에 있으며 그 대부분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그리고 석유산업도 사라와크 주에서 소량 산출되었으나, 그 후 사바주·사라왁주에서 대규모 해양유전이 개발되면서 석유채취, 가공산업도 주요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정제기술이 발달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석유는 산유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대규모의 유전은 하지 않고 있다. 제조업은 1970년대 말부터 개발하기 시작해 지금은 동남아시아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주로 전기·통신기계와 수송기계 생산을 하고 수출을 하고 있다. 그리고 관광업도 이 나라의 주 수입원이다. 고무, 주석광, 철광석은 수출하며 식량과 공업제품을 수입한다. 따라서 경제는 고무, 주석, 철의 국제가격의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약간의 1차 산품만을 생산하는 산업구조는 식민지 경제의 유산이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산 저가 과자의 수출도 활발하다.

지리[편집]

몰말레이시아의 면적은 329,758km2이며, 세계에서 67번째로 큰 나라이다. 말레이시아는 크게 말레이 반도에 위치한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흔히 '반도'를 뜻하는 '스므난중'으로 알려져 있음)와 보르네오 섬 북부의 동말레이시아로 나뉘는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는 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동말레이시아는 인도네시아브루나이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좁은 코스웨이와 다리 하나가 국토를 싱가포르와 연결한다. 베트남, 필리핀과 해상 국경을 맞대고 있다. 토지의 경계는 프를리스 강, 골록 강, 파갈라얀 운하 등 자연경계로 나뉘기도 하는데 일부는 분쟁 중이다. 브루나이는 사라왁 주에 의해 연결되지 않은 두 부분으로 나뉘며, 사실상 말레이시아 내 소수민족 거주지나 다름 없다. 말레이시아는 유라시아 본토와 말레이 제도 둘 다 영역이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남부 조호르 주탄중피아이는 유라시아 대륙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말라카 해협수마트라 섬과 말레이 반도 사이에 위치하며, 무역의 40%를 이끌어 오래 전부터 국제 무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소이다. 3/4가 밀림 및 습지대로 구성된다.

말레이시아는 동중국해에 의해 둘로 나뉘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 양쪽다 해안지대에서 산악지대로 이어지는 여러 자연적 특색들을 고유한다. 말레이 반도에 위치한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 영토의 40%를 차지하며, 길이는 북에서 남으로 740km(460마일), 동서의 폭은 최대 322km(200마일)이다. 2,183m(7,162피트)의 코르부산 을 최고봉으로 하는 티티왕사 산맥이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를 동해안과 서해안으로 나누며 반도의 중심으로 내려온다. 이 산들은 대개 숲지대이며, 주로 화강암 및 기타 화성암류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암석들은 차츰 부식되어 카르스트 지형을 형성한다. 이러한 지대는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수계(水系)에서 유래했다.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의 해안지대의 폭은 최대 50km(31마일)이며, 해안선은 1,931km(1,200마일)이나 항만들은 서해안에서만 가능하다.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대륙 본토에서 유일하게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군주국이다.

동말레이시아는 보르네오 섬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해안선은 2,607km(1,620마일)이다. 동말레이시아는 해안지대, 언덕지대, 계곡지대, 산악지대로 구분된다. 크로커 산맥이 사라왁 주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며, 사바 주에 의해 나뉜다. 말레이시아의 최고봉인 키나발루산이 존재하는데 높이는 4,095m(13,435피트)이다. 키나발루산은 키나발루 국립공원에 의해 보호되며,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다. 높은 산악지대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간의 경계를 형성한다. 사라왁에는 세계 최대의 동굴인 물루동굴이 위치한다.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 양쪽 다 여러 개의 섬이 있는데, 가장 큰 섬은 방기 섬이다.

기후[편집]

기후는 적도 기후이며 매년 남서(4월 내지 10월) 또는 북동(10월 내지 2월)지역의 몬순에 의해 결정된다. 온도는 주위 바다에 의해 적정히 유지된다.[88] 습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연간 평균 강수량은 250cm(98인치)이다.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와 동말레이시아의 기후는 다른데, 반도 말레이시아(서말레이시아)가 즉시 본토 바람의 영향을 받는 반면 동말레이시아는 해양성 기후를 띈다. 국지 기후는 고지대, 저지대, 해안지대에 따라 나뉜다. 기후변화는 해수면과 강수량의 영향을 받으며, 홍수의 위험이 높아지고 가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적도와 가깝다는 점 때문에 4계절이 없고 우기와 건기가 있는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에 속한다. 열대지역에 속하는 말레이시아의 기후는 연중 고온 다습한 편이다. 연평균 기온이 21~32℃로 연평균 강우량 2,000~2,500mm, 평균 습도는 63~80%이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의 기온 차는 9~12℃ 전후로 낮에는 30℃를 웃돌다가도 저녁과 밤에는 매우 선선한 기후를 유지한다. 건기와 우기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으며, 우기라도 일시적인 열대성 소나기의 횟수가 증가하는 것이므로 여행에는 불편함이 없다.

주민[편집]

온건주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 최근 저렴한 물가 등으로 외국인들의 대표적인 유학 장소로 꼽히고 있으며, 임금 및 근로환경이 양호해 해외 노동자들, 특히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의 진출이 매우 크다.

2010년 조사에 따르민 인구는 28,334,135명이며, 말레이시아는 세계에서 4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2010년 기준으로 인구의 91.8%가 말레이시아 시민권자이며 이 중 67.4%가 부미푸트라이다. 헌법상 말레이인은 무슬림들이며 말레이 문화와 관습을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개 인도네시아에서 건너온 이들의 후손이며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지배적인 역할을 한다. 부미푸트라는 꼭 말레이인이 아니더라도, 타이인, 크메르인, 시암인사라왁, 사바인도 포함한다. 비말레이계 부미푸트라는 사라왁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며 사바 인구의 ⅔ 이상을 차지한다. 말라야 지역에는 어보리진 계열의 오랑아슬리들이 소수 거주한다. 주마다 부미푸트라가 갖는 법적인 지위는 다르지만, 이들은 타 민족에 비해 월등히 높은 지위에 있으며, 정치적 혜택 등으로 종종 비판을 받고 있다.

부미푸트라의 지위를 무시할 수 없도록 하는 타 민족들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24.6% 가량은 화족이며 7.3% 가량은 인족 들이다. 화족들은 역사적으로부터 사업과 경제 등에서 우위를 점하며, 풀라우피낭 주에서는 다수 민족이다. 인족 들은 대부분이 남부 인도 계열인 타밀인이며 19세기 초반 말레이시아에 유입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단순히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으나, 해외에서 말레이시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시민권이 주어진다. 이중국적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민자의 시민권 취득은 보르네오 지역(사라왁, 사바)과 말라야 지역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모든 시민들은 12세에 마이카드(MyKad)라고 불리는 신분증을 발급받는데 생물학적 스마트 칩이 내장되어 있어 논란이 되고 있으며, 어딜 가든 무조건 갖고 다녀야 한다.

교육[편집]

유아 교육(어린이집, 유치원)은 의무가 아니지만, 초등 교육은 모든 말레이시아인들이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초등 교육은 총 6년이며 그 다음에는 중등 교육을 받는데 이 이상은 의무가 아니다. 고등학교가 없는 대신 중학교가 5학년까지 있다.[121] 초등학교는 두 종류로 나뉘는데 말레이어를 쓰는 공립학교와 중국어나 타밀어를 쓰는 문화학교가 있다.[122] 초등 교육은 총 6년이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은 UPSR이라는 시험을 보게 된다. 그 뒤 중학교로 배정된다. 중학교도 초등학교와 비슷하게 공립학교와 문화학교 계열로 나뉘나, "문화학교"라는 표현 대신 "자율형 사립 중학교"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중등 교육은 총 5년인데 하급 3년과 상급 2년이 포함된다. 3학년 학생들은 PT3, 5학년 학생들은 SPM(Sijil Pelajaran Malaysia)이라고 불리는 대학 입시 시험을 보게 된다.

대학은 대개 4년이지만, 일부 사립학교들이 시행하고 있는 파운데이션(Foundation)은 정식 과정이 아닌 차에서 3년인 경우가 많으며, 디플로마(Diploma)는 2년이다. 대학교는 공립대와 사립대로 나뉘는데 사립대는 흔히 유니버시티(university)와 컬리지(college)로 나뉜다. 공립대는 9월에 학기가 시작되며, SPM 이후 최소 9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1999년부터 대학 입시 프로그램이 시행됨에 따라 12개월의 대학 입시 프로그램을 거친 학생들은 공립대에 입학할 수 있다. 하지만 비부미푸트라에게는 10%만 열려있어, 실제로 비부미푸트라의 공립대 입학은 어렵다. 뿐만 아니라 공립대 입학 시 부미푸트라에게 가산점을 붙이는 경우가 많으며, 이 때문에 비부미푸트라 학생들이 시험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들은 사립대로 주로 간다. 사립대는 1월에 학기가 시작한다는 점 때문에 긴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으며, 해외 명문대로 편입되도록 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어 외국인들이 많이 선호한다. 다만 SPM 성적이 3월에 나오는 관계로 다른 성적을 통해 미리 입학시키곤 한다. 물론 불법이다.

언어[편집]

말레이시아의 공용어는 말레이시아어(Bahasa Malaysia)이며, 이는 말레이어가 표준화된 형태이다. 정부 정책에 따른 전문용어는 말레이시아어이나, 법률적으로는 공용어를 말레이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어는 말레이시아의 공용어로,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내의 논부미푸트라(Non-Bumiputera)들도 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일부는 이를 구사하지 못한다. 말레이어의 또 다른 표준인 인도네시아어와 매우 흡사하여 의사소통에도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다만, kantor, mampir, apotek, karcis, akuntabel 등 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는 단어와 비슷도 하지 않은 단어들을 사용할 경우 큰 지장이 생길 수 있다). 본래 말레이어의 철자법은 영국이 정한 걸 개정한 자아바(Za'aba)였으나, 네덜란드식 철자법을 개정한 수완디(Soewandi)를 사용하는 인도네시아와 마찰을 일으키자 합의하여 완전한 철자법(EYD; Ejaan Yang Disempurnakan)을 제정했다. 표준 말레이어는 구 조호르리아우어와 고급 말레이어의 중간 위치를 점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른 것으로 추정된다. 1967년 공용어법에 따르면 "말레이어의 문자는 루미(로마 문자)로 한다"고 하지만, 이는 말레이 문자라고 하는 자위(아랍 문자)의 사용을 금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상적으로 루미를 훨씬 더 선호하며, 자위는 대개 이슬람교에 관련된 부분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일상적으로 변칙어(broken language) 형태의 말레이어를 사용하며, 이것은 어디나 일상화돼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 어디 가냐고 물을 때 주로 'Kau pigi mana?'를 사용하지만, 제대로 된 형태는 'Di manakah (yang) engkau pergi?'이다. 심지어 'yg(원래는 yang)', 'utk(원래는 untuk)', 'm'cri(원래는 mencari)' 등 축약형들까지 널리 사용된다. 정부는 변칙 말레이어의 사용을 배제하고 있지만, 생활에 깊숙히 배어있는 건 물론 광고에서조차 널리 사용되어, 실질적으로 배제할 순 없는 실정이다.

현재는 전 지역에서 말레이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조금씩, 때로는 큰 차이를 보인다. 보르네오 지역(사바, 사라왁, 라부안) 주민들이 사용하는 말레이어와 말라야 지역(쿠알라룸푸르, 슬랑오르 등 말레이 반도 지역)에서 사용하는 말레이어는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는데, 예를 들어 'a'로 끝나는 단어들은 보르네오 지역에서는 '아' 그대로 발음하지만, 말라야 지역에서는 '으'와 '어'의 중간정도로 발음한다. 또한 '망가진, 훼손된'을 뜻하는 단어인 'rosak'도 보르네오 지역, 특히 사바와 라부안에서는 인도네시아어인 'rusak'에 가깝게 발음한다. 또한 보르네오 지역에서는 말라야 지역에서 사용되지 않는 'anu'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 밖에 클란탄 주에서는 태국어의 영향이 큰 클란탄팟타니어, 또는 클란탄 말레이어를 사용하는데 말레이시아인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 있다. 특히 '먹다'를 뜻하는 'makan'을 'make', '안된다'를 뜻하는 'jangan'을 'jange'라고 하는 등 'an', 'am' 등으로 끝나는 단어를 'e'로 끝낸다.

말레이어 외에도 영어 역시 상업과 공업에서 널리 쓰이며, 말레이시아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 교육을 받는다. 영어는 역사적으로 공용어였지만, 1969년 5·13 사건 이후 말레이어가 두드러졌다. 1967년 공용어법에 따라 영어는 일부 공식적 자리에서 공용어로서의 역할을 하나, 꼭 공용어라 하긴 어렵다. 영어는 대부분의 국민이 제2언어로 사용하며, 사업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것은 물론 대학에서도 대개 이 언어 위주로 사용한다. 말레이시아에서 규정하는 표준 영어는 '말레이시아 표준 영어'로 영국식 영어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학교 교육 역시 영국식 영어로 가르친다(다만, 일상 또는 온라인 상에서는 미국식 영어를 섞어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말레이시아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영어는 싱글리시와 유사한 소위 '맹글리시(Manglish)'나 '망글리시'로 불리는 독특한 영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영어권 화자들이 전혀 알아듯지 못하는 상당한 부분을 포함하며,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변칙영어(broken english)가 만연하다. 예를 들어 맹글리시 단어 중에는 'where got'이 있는데, 이는 말레이어 'mana ada'를 그대로 직역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영어로는 'What are you talking about'이다. 맹글리시는 싱가포르의 싱글리시처럼 문장 끝에 'lah'를 붙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말레이어 단어나 중국어 단어를 넣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어 'disturb'대신 'kacau'를, 'very' 대신 'sibeh'를 사용한다. 말레이시아는 한 문장에 4개국어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변칙영어 때문에 외국인들 앞에서 자칫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여 맹글리시이와 잉들리시 자유자재로 바꿔 쓸 수 있는 사람도 많다. 말레이시아인의 상당수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지만 영어로 일상 회화가 가능하다.

말레이시아 내 중국계들은 중국어를 사용한다. 표준 중국어인 만다린 외에도 방언인 객가어, 광둥어 등 종류가 다양한데 말레이시아 중국어는 이들이 전반적으로 섞인 편이다. 풀라우피낭 주에서는 '피낭 호키엔(피낭 객카어)'이라 불리는 독특한 방언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류를 떠나서 말레이시아 중국어에는 액선트를 표준 중국어와 같이 강하게 하지 않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은 중국어뿐 아니라 공용어인 말레이어와 통용어인 영어까지 총 3개국어(때로는 그 이상) 이상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며, 외국에서 말레이시아 중국인들의 이런 점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 내 인도인들은 주로 남부 인도인들로, 힌디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타밀어인데 말레이어를 주로 사용하는 말레이인, 중국어를 주로 사용하는 중국인과는 달리 타밀인들은 주로 영어를 사용한다. 타밀어를 할 줄 모르는 인도인도 적지 않다. 인도인의 한 갈래로 전반적인 상류식 교육을 받은 인도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구사할 줄 알며, 이들의 영어는 말레이인이나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보다 수준이 높다.

동말레이시아의 원주민들은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다. 사라왁 주에는 이반어, 다약어가 있고 사바 주에는 카다잔어, 두순어, 무룻어, 바자우어 등 종류가 다양한데 이 중 카다잔어와 두순어는 매우 흡사하여 "카다잔두순어"라는 통일적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언어들은 말레이어와는 계통 자체가 다르지만, 일부 비슷한 점들을 공유하고 있는데 특히 이반어에는 말레이어 차용어들이 많다. 1973년 동말레이시아의 자치권이 소멸된 이후 이 언어들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며, 최근에는 많은 원주민들이 자기 부족의 언어 대신 말레이어나 영어를 더 선호하는 경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각 언어학회들이 생기면서 이 언어들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적어도 70여 개의 다른 어족(語族)에서 생성된 다양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모든 언어들은 사업, 여행, 산업, 라디오, TV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 등에서 쓰이고 있으며, 최근 말레이시아를 자녀들의 유학 목적지로 선택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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