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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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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동군 위치

벽동군(碧潼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벽동군의 면적은 640㎢이며 인구는 35,601명(2008)이다. 서북쪽의 압록강을 경계로 중국과의 국경 지대에 위치한다. 남서쪽은 창성군, 동남쪽은 동창군이며 동쪽으로 자강도와 접해 있다. 남북(성상리~동하리) 간의 길이는 22.8km이고, 동서(송삼리~사창리) 간의 길이는 22.04km이며, 도 전체면적의 5.12%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19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벽동읍이다.

1403년에 벽단과 음동을 병합하여 새 군을 신설하면서 벽단의 벽자와 음동의 동자를 따서 벽동군이라 하였는데, 벽단은 푸른 이 우거진 골짜기를 가리키던 고유어 부루다니(부루는 숲을, 다니는 골짜기를 의미한다)의 이두표기이고 음동은 숲이 우거져 그늘이 지고 압록강물이 산굽이를 감돌아 흐르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명승고적으로는 구봉산(九峰山)·삼일산(三日山)·실호령(失號嶺)·벽단진(碧團鎭)·오사헌(五事軒)·탄진정(彈珍亭) 등이 있다. 벽동면(북한 행정구역상 동주리)에 15세기초에 건립된 벽동읍성이 있다. 동문과 남문, 성벽이 남아 있으며 남문에는 완월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한편 읍성에는 사방에 장대(將臺)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오사헌이라는 남장대가 남아있다.

세벌식 자판을 고안한 것으로 유명한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가 이 지역 출신이며 1970~1990년대 MBC의 간판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차인태 교수 역시 이 지역이 고향이다. 북한의 고위 정치인인 김중린 또한 벽동군 출신이다.[3]

자연환경[편집]

벽동군은 산지가 군 전체면적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산간지대로서 북부 수풍호(水豊湖) 연안을 제외한 변두리는 피난덕산줄기(避難imagefont山-)를 비롯한 산줄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해발 800m 이상 되는 지역은 약 8%를 차지하며 대부분 지역이 해발 200~800m의 산지로 되어 있다. 피난덕산줄기는 서부 창성군과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동~북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여기에 비래봉(飛來峯, 1,470m)을 비롯하여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어 이곳은 평안북도에서 묘향산 다음으로 높은 지대를 이룬다.

동부 자강도 우시군과의 경계에는 해발 700~800m 정도의 산들로 이루어진 산줄기가 남동~북서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남부 동창군과의 경계에는 이곳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진 단풍덕산(丹楓imagefont山 1,159m)이 솟아 있다. 산지가 많은 지형상 관계로 넓은 벌은 없고 다만 동천(東川)을 비롯한 하천들의 연안에 좁은 충적지들이 이루어져 있다. 기반암은 대부분 지역에서 연화산암군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금, 납, 아연, 형석, 석회석 등 지하자원이 분포되어 있는데, 남하리 일대에 매장되어 있는 금-납아연광상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품위도 높다.

벽동군은 북서부의 일부 지역이 수풍호의 영향을 받고 있으나 지대가 높은 데다가 바다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하여 평안북도에서 추운 지방의 하나로 되어 있다. 연평균기온은 7.1℃인데, 1월 평균기온은 -12.5℃, 8월 평균기온은 23℃이다. 연최고극기온은 35.2℃(1972년 7월), 연최저극기온은 -30℃(1983년 1월 9일)였다. 10℃이상 적산온도는 3,227℃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017mm이며 강수량이 가장 적었던 1939년에는 595.8mm, 가장 많았던 1964년에는 1,622.9mm였다. 연평균일조율은 52%로서 평안북도 안의 산간지대에서 적은 지역에 속한다. 그러나 일조율이 가장 낮은 7월의 일조율은 40%로서 평안북도 안에서 가장 높다.

첫서리는 수풍호 연안에서 10월 중순에, 마감서리는 4월 말에 내린다. 바람은 북서풍이 우세하며 연평균풍속은 1.2m/s로서 약하다. 땅이 어는 깊이는 120cm이며 가장 깊이 언 1984년 2월 말에는 벽동에서 127cm었다. 하천은 모두 압록강수계에 속한다. 5km 이상 되는 하천이 12개 유입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큰 하천은 압록강과 그 지류인 동천, 남천(南川), 송계천(松溪川)이다.

벽동군 영역 내에서 중국과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압록강은 31.6km, 동창군 대암산(大巖山)에서 발원하여 군의 동부지역을 지나 영풍리에서 수풍호에 흘러드는 동천은 45km, 남부 단풍덕산에서 발원하여 수풍호에 흘러드는 남천은 28.7km, 서부 비래봉에서 발원하여 벽동에서 수풍호에 흘러드는 송계천은 18.5km의 구간에서 흐르고 있다.

산림은 벽동군 전체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그 중 90%가 임목지로 되어 있다. 평안북도에서 산림 자원량이 많은 군의 하나이다. 산림의 대부분은 해발 200m 이상 되는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비래봉과 그 주변에는 벽동군내의 다른 지역보다 잣나무, 삼송류를 비롯하여 경제가치가 높은 나무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 산과일, 산나물, 약초와 송이버섯을 비롯한 경제식물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산림 속에는 산토끼, 여우, 너구리, 오소리, 노루, 멧돼지 등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토양은 대부분 지역에서 갈색산림토양이, 하천연안에는 충적토과 논토양이 반점상으로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벽동군 지역은 오랜 역사를 가진 북방의 요지로서 삼국시대에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그 후 발해국의 서경압록부(西京鴨綠府)에 속해 있었다. 발해가 패망한 이후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 하에 있으면서 임토(林土)와 벽단(碧團)으로 불렸다. 고려 공민왕에 이르러 벽동군 지역은 비로소 고려의 영토로 수복되었는데, 이때 임토를 음동(陰洞)으로 개편하였다. 조선왕조가 건립된 이후 1403년(태조 3년)에 벽단과 음동을 통합하여 벽동군으로 개편하였다.

1895년에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의주부(義州府) 벽동군으로 되었고, 그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평안북도 벽동군으로 개편되었다. 이때 관하에 군내면(郡內面), 동부면(東部面), 서부면(西部面), 가면(加面), 별면(別面), 우면(雩面), 시면(時面), 성면(城面), 남면(南面), 서상면(西上面), 서하면(西下面), 평상면(坪上面), 평하면(坪下面), 오면(吾面), 북면(北面), 권면(鸛面), 사면(社面), 회면(會面) 등 18개 면을 두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군부면(郡部面), 가별면(加別面), 우시면(雩時面), 성남면(城南面), 송서면(松西面), 오북면(吾北面), 권회면(鸛會面) 등 7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1918년에 군부면이 벽동면(碧潼面)으로 개칭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우시면, 오북면, 가별면과 벽동면의 9개 리는 새로 설립되는 우시군에 편입되고 나머지 권회면 · 성남면 · 송서면의 전체 리와 벽동면의 12개 리를 통합하여 벽동군을 새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벽동면의 동주리 · 중앙리 · 이동리를 병합하여 벽동읍(碧潼邑)으로, 벽동면의 마흥리와 회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마전리(麻田里)로, 권회면의 대안리 · 연풍리를 병합하여 대풍리(大豊里)로, 송서면의 연수리 · 연하리 · 창평리를 병합하여 송련리(松連里)로, 벽동면의 대동리 · 대덕리를 병합하여 대동리(大洞里)로, 벽동면의 영풍리와 권회면 복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영풍리(永豊里)로, 벽동면의 답은리 · 송흥리와 회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남서리(南西里)로, 벽동면의 동하리와 후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동하리(東下里)로, 권회면의 신당리 · 마양리를 병합하여 사창리(社倉里)로, 권회면의 용평리와 복흥리 일부 · 용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평리(龍坪里)로, 권회면의 신창리와 용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권창리(鸛倉里)로, 권회면의 권사리 · 삼장리를 병합하여 권상리(鸛上里)로, 권회면의 신고리 · 구암리를 병합하여 회상리(會上里)로, 성남면의 남하리 · 남중리를 병합하여 남하리(南下里)로, 성남면의 남상리 · 남사리를 병합하여 남중리(南中里)로, 성남면의 성하리 · 성중리를 병합하여 성하리(城下里)로, 성남면 성상리는 벽동군 성상리(城上里)로, 송서면의 송일리 · 송이리를 병합하여 송일리(松一里)로, 송서면의 일서리 · 이서리 · 삼서리를 병합하여 송이리(松二里)로, 송서면 송삼리는 벽동군 송삼리(松三里)로, 송서면의 송사리 · 육서리를 병합하여 송사리(松四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0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벽동읍이 동주리(東主里)로 강등되면서 송일리가 벽동읍으로 승격되었고, 1954년에 회상리가 동창군에 편입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벽동읍), 19리(권상리, 권창리, 남서리, 남중리, 남하리, 대동리, 대풍리, 동주리, 동하리, 용평리, 마전리, 사창리, 성상리, 성하리, 송련리, 송사리, 송삼리, 송이리, 영풍리)로 구성되어 있다. 벽동군 소재지는 벽동읍이다.[5]

산업[편집]

벽동군의 경제 구조는 대체로 지방원료원천에 의거한 지방공업과 여러 모로 발전된 농촌 경제로 이루어졌다. 지방공업은 식료품 · 일용품 · 방직 · 피복 · 건축재 · 화학 · 제약 공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식료품공업에서는 주식물과 부식물 · 청량음료, 일용품공업에서는 가구 · 수지일용품 · 학용품, 건축재공업에서는 시멘트와 소석회, 화학공업에서는 가성소다, 제약공업에서는 한약 생산이 큰 비중을 점한다.

이 밖에 자동차, 트랙터, 연결 농기계를 수리하며 이에 필요한 부속품과 여러 가지 농기구들도 자체로 생산 보장하고 있다. 임업도 발달되어 있는데, 성하리에는 벽동임산사업소가 설치되어 있다. 농업에서 기본은 곡물생산을 위주로 하는 농산업과 축산업이다. 농경지는 군 전체면적의 6%를 차지하며 평안북도 내에서 그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에 속한다.

농경지 구성에서 밭이 90%, 논이 4%, 과수밭이 3.3%를 차지하고 있는데 밭은 주로 송련리, 송이리, 대풍리 등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논은 송계천 연안과 벽동읍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벼, 콩, 수수를 비롯한 곡물과 감자, 고구마, 채소류이다. 옥수수는 곡물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데, 그 주요 산지는 송이리, 남하리, 영풍리, 대풍리, 송련리, 남중리, 성하리, 용평리 등 지역이다.

채소는 주로 벽동읍 일대와 동주리에서 재배되는데, 전체 파종면적에서 고추 파종 면적이 20% 이상을 차지하며 여기서 생산된 고추는 평안북도 내의 여러 지역에 공급된다. 평안북도에서는 이 많은 지대특성에 맞게 소, 양, 염소 등 가축을 많이 사육하고 있는데, 소는 대풍리 · 성하리 등 지역에서, 양은 용풍리 · 송이리 · 벽동읍 등 지역에서 많이 사육하고 있다. 군에는 130여 정보의 과수밭이 있는데, 그 30%는 벽동읍, 남하리 일대에 집중되었다. 주요 과일은 배, 사과, 포도, 자두, 백살구 등이며 그 중에서 배가 70%를 차지한다. 과실이 많이 산출되는 지역은 남하리, 남서리, 성하리, 벽동읍 등 지역이다. 누에고치 생산에서는 뽕누에가 많은 비중을 점한다.[6]

교통[편집]

교통은 신의주~우암, 박천~초산, 남하리~성상리 간 도로가 뻗어 있으며 수풍호 기슭을 따라 달리고 있는 신의주~강계 간 도로는 이 일대의 지형기복이 복잡한 것으로 하여 굽이돌이와 물매가 급한 곳이 많다. 벽동~대관 간 80km 구간에는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이 밖에 수풍호를 이용하여 수풍~벽동~동주 간(96km) 수상통로가 개설되어 있다. 벽동에서 창성까지는 44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벽동군〉, 《위키백과》
  2. 벽동군〉,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벽동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벽동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벽동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벽동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북도 벽동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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