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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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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북한의 남부에 있는 도시이다. 북한의 특별시에 해당한다. 과거 고려의 수도로서 500여 년간 번영한 고도(古都)이다. 개성은 개경(開京), 송악(松岳), 송도(松都), 송경(松京)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북위 38도 이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전쟁 전에는 대한민국 경기도의 관할에 속하였으나, 한국 전쟁 중에 북한의 관할이 되었다.

개요[편집]

  • 행정 단위: 북한의 특별시
  • 면적: 441.86km²
  • 인구: 30만 8440명(2008년)

역사[편집]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편집]

이 곳은 처음에는 백제의 영토였으며, 청목령(靑木嶺)이라고 불렸다. 나중에는 고구려의 영토로서 동비홀(冬比忽)과 부소갑(扶蘇岬)으로 불리는 지역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동비홀은 개성(開城)으로, 부소갑은 송악군(松岳郡)으로 각각 고쳐졌다.

고려의 도읍[편집]

이 지역은 바다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던 호족의 본거지였으며, 그 중 왕씨 일가는 그 대표적인 존재였다. 궁예(弓裔)도 철원(鐵原)을 후고구려의 도읍으로 확정하기 전에는 한때 이곳을 임시 도읍으로 삼았다. 918년 왕건(王建)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워 본격적으로 고려의 도읍이 되었다(919년). 고려 왕성이 위치한 곳은 신라 시대의 송악군이었고 개성현은 그에 속한 현이었다. 919년에 개주(開州)가 설치되고 995년에 개성부(開城府)로 개칭되어 송악현을 비롯한 수도 내를 관장하다가 1018년(현종 9) 개성부를 없애면서 송악현은 중앙 정부의 직속이 되고 개성현은 분리되었다. 1062년에 개성현이 개성부로 바뀌고 1308년에 개성부가 수도 내까지 관장하게 되면서 개성의 지위가 역전되어, 마침내 옛 송악군의 자리도 개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개성은 인접한 항구 도시인 벽란도(碧蘭渡)와 함께 국제 상업 도시로 발달하였다. 이후 조선 왕조가 들어서 1394년 한양으로 천도할 때까지 489년간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도읍이었다.

조선[편집]

조선 태조가 1392년 조선을 개국한 후 잠시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다가, 1394년에 한양으로 수도가 옮겨졌다. 이후 잠시(1399년 - 1405년) 수도가 개경으로 돌아온 것을 제외하고는, 개성은 정치적 중심으로서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그러나, 조선 왕조에서도 개성은 중요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1438년 개성에는 개성부(開城府)가 설치되어 개성부 유수(留守)가 파견되었다. 또한, 개성은 특히 상업의 중심지로 이름을 떨쳤다. 이 시기에 개성은 송도(松都), 송경(松京), 중경(中京)이라고도 불리었다. 1895년 6월 23일 23부제가 실시되면서 도제(道制)가 폐지되어 개성부가 잠시 설치되었다가, 1896년 8월 4일 13도제가 실시되면서 경기도로 환원되었다.

일제 강점기[편집]

1914년 4월 1일 개성군, 풍덕군을 통폐합하여 개성군을 설치하였다. 이 때, 송도면 안의 12개 리(里)가 13개 정(町)으로 개편되었다. 1930년 송도면이 개성부로 승격되고, 개성군은 개풍군(開豊郡)으로 개칭되었다.

대한민국[편집]

광복 후, 개성은 북위 38도선 바로 남쪽에 있기 때문에 미군정 지역이 되고, 1949년에 개성부는 개성시가 되어 대한민국의 최접적(最接敵) 도시가 되었다. 시가지의 북쪽 송악산 정상(488고지)은 북한, 그 남쪽의 475고지는 남한이어서, 1949년 5월 4일에 송악산 5·4 전투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편집]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북한에 편입되었으며, 1955년 1월에 개풍군과 판문군이 개성시에 속하게 되었고, 1957년 6월에 도(道)급인 개성직할시로 승격하였다. 이때, 고려동 일부는 분리하여 해운동(海雲洞)을 신설하였으며 수창동이 남안동에 편입되었다. 1958년 6월 서흥동이 남안동에 편입되었으며 덕암리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보선동(步仙洞)을 신설하였다. 1959년 2월 개성시 운학리가 운학동(雲鶴洞)으로 개칭되었다. 1960년 3월 황해북도에 속해있던 장풍군이 개성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61년 3월 장풍군 내 옛 개풍군 영남면·영북면 지역(룡흥리, 삼거리, 산성리)이 개성시에 편입되었고, 만월동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송학동(松鶴洞)을 신설하였다. 1967년 10월 태평동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역전동(驛前洞)을, 남안동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남문동(南門洞)으로 개칭되었다. 1981년 10월에 개성시 태평동이 내성동(內城洞)으로 개칭되었다. 1983년 11월에 개성시 손하리가 성남동(城南洞)으로, 산성리가 박연리(朴淵里)로 개칭되었고, 운학동이 운학일동(雲鶴一洞)과 운학이동(雲鶴二洞)으로 분리되었으며, 부산동 일부를 분리하여 방직동(紡織洞)을, 판문군 전재리 일부를 분리하여 개성시 은덕동(恩德洞)을 신설하였다. 1988년 7월 룡흥리가 룡흥동(龍興洞)으로 개칭되었으며, 1993년 12월 남산동이 남산일동(南山一洞)과 남산이동(南山二洞)으로 분리되었다. 1994년 3월 덕암리가 덕암동(德巖洞)으로 되었다.

2002년 11월 판문군이 폐지되었고, 2003년 6월 개성직할시의 장풍군과 개풍군이 황해북도로 이관되었다. 2003년 9월 개성직할시가 폐지되고, 개성시가 황해북도로 재편입되어 개성시로 변경되었다. 2019년 10월에 황해북도에서 분리되어 특별시로 승격되었고, 개풍군이 편입되어 개풍구역과 판문구역이 설치되었다.

지리[편집]

서쪽으로는 황해남도 배천군, 북쪽으로는 황해북도 금천군, 동쪽으로는 장풍군, 남동쪽으로는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대한민국의 경기도 파주시와 접한다.

1945년 해방 전까지의 개성은 개풍군에 둘러싸이고, 동쪽 일부가 장단군과 닿아 있었다. 1953년 7월 27일으로 개성 시가지의 10km 동쪽(판문점)에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개성 시내와 군사분계선 사이에 개성공단이 있으며, 개성공단은 대한민국의 파주시 문산읍에서 14km 서북쪽에 위치해 있다.

개성은 아호비령산맥이 인근에 있어 주변에는 산들이 많이 있다. 산으로는 북쪽에 제석산(帝釋山), 천마산(天馬山), 두석산이, 중앙에 송악산(松岳山), 남쪽에 진봉산(進鳳山)과 용수산(龍岫山)이 있다. 송악산 서쪽에는 만수산이 있다. 특히 개성 시가지 주위에 있는 송악산, 자남산(子南山) 등에는 소나무가 많아, 개성을 송도(松都)라고 불리게 하였다.

하천으로는 원교(遠郊)에 임진강과 례성강이 흐른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옹진군과 함께 기후가 가장 온화한 지역에 속한다. 시 면적의 55%는 삼림이 차지한다. 주목할 만한 동식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천연기념물인 개성백송(開城白松)과 크낙새가 있다.

기후[편집]

개성특별시의 기후는 일반적으로 냉대동계소우기후 (Dwa)를 띄고 있다.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서울특별시와 인접하기 때문에 Cwa 같은 기후 대역으로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냉대 기후를 띄는 것이 보통이다.

행정구역[편집]

개성특별시는 옛 개풍군, 판문군 지역인 시외의 2구역과 시내의 27동 3리로 구성되었다.

  • 구역
  • 개풍구역
  • 판문구역
  • 고려동(高麗洞)
  • 관훈동(冠訓洞)
  • 남문동(南門洞)
  • 남산1~2동(南山洞)
  • 남안동(南安洞)
  • 내성동(內城洞)
  • 덕암동(德巖洞)
  • 동현동(銅峴洞)
  • 동흥동(東興洞)
  • 룡산동(龍山洞)
  • 룡흥동(龍興洞)
  • 만월동(滿月洞)
  • 방직동(紡織洞)
  • 보선동(步仙洞)
  • 부산동(扶山洞)
  • 북안동(北安洞)
  • 선죽동(善竹洞)
  • 성남동(城南洞)
  • 송악동(松嶽洞)
  • 승전동(勝戰洞)
  • 역전동(驛前洞)
  • 운학1~2동(雲鶴洞)
  • 은덕동(恩德洞)
  • 자남동(子男洞)
  • 해운동(海雲洞)
  • 박연리(朴淵里)
  • 삼거리(三居里)
  • 해선리(解線里)

지도[편집]

개성시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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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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