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개천시

해시넷
이동: 둘러보기, 검색
북한 위치
평안남도 위치
개천시 위치

개천시(价川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북부 지역에 있는 이다. 본래 개천군으로 불리는 군이었다가 1990년에 시로 승격했다. 내륙 지역으로 묘향산청천강, 대동강이 있고, 시 면적의 약 61%가 숲 지대이다. 북쪽은 평안북도 영변군(녕변군구장군, 동쪽은 덕천시·북창군, 남쪽은 순천시, 서쪽은 안주시에 접한다.[1][2]

개요[편집]

  • 행정구역: 평안남도
  • 면적: 738km²
  • 인구: 319,554명(2008년)
  • 언어: 평안 방언

개천시는 북한 제9의 도시이며 황해북도 소속이던 개성시보다 인구가 많았으나 2019년 개성시가 개풍군과 함께 개성시로 승격되면서 개성의 인구가 더 많아졌다. 내륙 분지 지역으로 묘향산맥이 지나며, 청천강, 대동강의 상류가 모두 흐른다. 북쪽은 평안북도 (녕변군)·구장군, 동쪽은 덕천시·북창군, 남쪽은 순천시, 서쪽은 안주시에 접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26동 11리로 구성되어 있다.

극악한 인권탄압으로 악명높은 개천 제14호 관리소와 함께 개천 제18호 관리소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UN군이 참패를 당한 군우리 전투의 군우리가 바로 이 곳의 군청 소재지다.

개천의 '개'는 대동강과 청천강 사이에 끼여 있는 고장이라는 뜻에서 끼일 ‘개(介)’를 붙인 것이다. 고려 때 개주(介州)라 불리던 이름에서 조선 태종 때‘주(州)’를 ‘천(川)’이나 ‘산(山)’으로 바꾸던 관례에 따라 강을 끼고 있는 고을이라 하여 ‘천(川)’자를 붙였다. 후에 ‘개(介)’를 ‘개(价)’로 변경하였다. 본래는 고려의 안수진(安水鎭)이었고, 여요전쟁 등에서 연주 방어사(連州防禦使)라고 고쳤다가 이후 조양진(朝陽鎭), 익주(翼州)를 거쳐 고려말에야 개주라는 이름이 되었다.

자연환경[편집]

개천시는 묘향산 줄기가 뻗어 있는 동부, 남부 지역과 서부경계지역이 높고 북서쪽으로 점차 낮아져 개천 분지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해발 400m 이하의 지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개천시 면적에서 해발 200m 이하의 언덕과 평야지역은 53%, 200~500m의 저산지대는 30%, 500m 이상 저산-중산지대는 17%를 차지하며 20° 이상의 경사지가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동부지역에 월봉산(月峯山, 1,032m), 백탑산(白塔山, 1,199m), 제일봉(第一峯, 1,190m), 갈인봉(葛仁峯, 1,108m), 알일고개(戞日-, 621m) 등이 솟아 있으며 남부에 묵방산(墨坊山, 1,012m), 여정산(310m) 등이 솟아 있다.

개천시는 산비탈절벽으로 되어 있는 곳이 많다. 동부지역과 남부, 북서부 지역에는 석회암과 관련된 분지, 동굴들이 발달되어 있다. 서부지역에는 구릉성벌들이 전개되어 있으며 농경지의 대부분이 여기에 분포되어 있다. 개천시에는 석탄, 철, 망간, 동, 납, 보크사이트, 남정석, 석회석, 흑연 등 여러 가지 지하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무연탄도 많이 매장되어 있는데 주로 남전동, 삼봉동, 자작동, 전진동, 북원동, 인흥동, 군우동, 알일동, 조양동, 묵방동, 용운리 등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토양은 갈색산림토양, 논토양, 표백화산림갈색토양과 충적토가 분포되어 있다.

연평균기온은 9.1℃인데, 1월 평균기온은 -7.8℃이고 8월 평균기온은 23.6℃이다. 10℃이상 적산온도는 3,492℃, 연평균상대습도는 72%, 연평균일조율은 51%이다. 온도가 몹시 높고 습하며 일조량이 많기 때문에 농업에 유리하다. 연평균강수량은 1,170mm이로서 평안남도에서 강수량이 많은 지역의 하나로 되어 있으며 특히 봄철 강수량이 다른 지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많다.

하천은 북쪽경계를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청천강(淸川江)이, 남쪽경계지대로 대동강(大同江)이 유입되어 있다. 이밖에 동부와 남부에서 발원하여 청천강에 흘러드는 조통강(潮通江), 남천강(南川江), 남전천(藍田川)을 비롯하여 길이 5km 이상의 하천이 17개나 유입되어 있다.

수력자원이 풍부한 개천시에는 지하수도 많다. 저수지는 서쪽 안주시와의 경계에 있는 연풍호(延豊湖)를 비롯하여 노다골저수지, 회골저수지, 수동저수지, 노전저수지, 새골저수지, 수화저수지, 내동저수지(內洞貯水池) 등이 있다. 수력자원은 주로 관개용수와 공업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산림은 시 전체면적의 약 61%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침엽수림이 약 31%, 활엽수림이 약 57%, 침엽수와 활엽수의 혼성림이 약 12%를 차지한다. 주요 수종은 참나무, 잎갈나무, 소나무, 잣나무, 아까시나무 등이다.

산림 자원은 주로 남전동, 자작동, 조양동, 알일동, 전진동 등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산림자원은 주로 갱목과 건설용재로 이용되고 있다. 이밖에 림 속에는 도토리, 머루, 다래, 참나물, 두릅, 산삼, 만삼, 오미자 등이 많이 자라고 있다. 특히 묵방동, 조양동, 삼봉동, 자작동, 건지동 등 지역에서는 도토리가 많이 산출되고 있다.[3]

역사[편집]

개천시 지역의 여러 곳에서 원시사회의 유적들이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에 이미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개천시 지역은 고구려의 영역으로 되어 있었다. 고려왕조가 건립된 이후 930년(태조 13년)에 개천시 지역에 안수진(安水鎭)이 설치되었다. 1018년(현종 9년)에 연주(連州)로 되었다가, 그 후에 조양진(朝陽鎭)으로 개칭되었다.

1215년(고종 2년)부터 다시 연주로 불렀으며 2년 후에 익주(翼州)로 개칭되었다. 그 후 개주(价州)로 부르다가, 조선왕조가 건립된 이후인 1413년(태종 13년)에 서북면이 평안도로 되면서 개천군(价川郡)으로 개편되었다. 1895년에 평양부(平壤府) 관하의 한 개 군으로 되었다.

1896년에 평안남도 개천군으로 되면서 군내면(郡內面), 내동면(內東面), 외동면(外東面), 중남면(中南面), 외서면(外西面), 중서면(中西面), 북면(北面), 내남면(內南面) 등 8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내남면을 순천군(順川郡)에 이관하였으며, 1929년에 군내면과 내동면을 병합하여 조양면(朝陽面)으로 개편하고, 외서면을 개천면(价川面)으로 개칭하였다. 1939년에 개천면을 개천읍(价川邑)으로 승격하고 외동면과 순천군 봉명면(鳳鳴面)을 병합하여 봉동면(鳳東面)으로 개편하여 1개의 읍과 5개의 면으로 되어 있었다. 1949년 10월에 개천읍이 개천면으로 강등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개천군 6개 면의 전체 리와 안주군 동면(東面)의 금서리(錦西里) · 금천리(錦川里) 일부와 평안북도 영변군(寧邊郡) 연산면(延山面)의 도화리(島花里)를 병합하여 개천군을 새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개천군 개천면의 군우일리 · 군우이리 · 군우삼리와 삼포리를 병합하여 개천읍(价川邑)으로, 개천군 개천면의 용성리 · 견룡일리와 북면 용등이리를 병합하여 군우리(軍隅里)로, 개천군 개천면의 신송리와 운포리를 병합하여 외서리(外西里)로, 개천군 개천면의 견룡이리 · 송학리 · 마장리를 병합하여 보부리(寶富里)로, 개천군 중남면의 청곡리 · 잠계리와 중서면 용흥리를 병합하여 청룡리(靑龍里)로, 개천군 중서면의 운룡리와 신현리를 병합하여 용진리(龍津里)로, 개천군 중남면의 남양리 · 인곡리 · 삼소리를 병합하여 대각리(臺閣里)로, 개천군 중서면의 용탄리 · 부암리와 중남면 용원리를 병합하여 서남리(西南里)로, 개천군 중남면의 광덕일리와 광덕이리 · 답도리를 병합하여 광도리(光島里)로, 개천군 봉동면의 오봉리 · 중리를 병합하여 외동리(外東里)로, 개천군 봉동면의 봉하리 · 기양리를 병합하여 묵방리(墨坊里)로, 개천군 봉동면의 금평리 · 신흥리 · 봉창리 · 상리를 병합하여 봉창리(鳳倉里)로, 개천군 조양면의 운흥리 · 용봉리 · 신립리를 병합하여 알일리(戞日里)로, 개천군 조양면의 용현리 · 쌍룡리 · 운양리를 병합하여 용운리(龍雲里)로, 개천군 조양면의 봉명리 · 용복리 · 승창리를 병합하여 구읍리(舊邑里)로, 개천군 조양면의 동림리 · 당아리 · 저리를 병합하여 내동리(內洞里)로, 개천군 북면의 원리 · 용연리 · 인흥리를 병합하여 북원리(北院里)로, 개천군 북면의 용담일리와 남전일리를 병합하여 남전리(藍田里)로, 개천군 북면의 남전이리와 용담이리를 병합하여 용담리(龍潭里)로, 개천군 북면의 봉천리와 삼봉리를 병합하여 삼봉리(三峯里)로, 개천군 북면 용등일리와 개천면 중흥리를 병합하여 준혁리(俊赫里)로, 평안북도 영변군 연산면의 도화리와 평안남도 안주군 동면의 금천리 일부 · 금서리 · 개천군 개천면 연당리를 병합하여 도화리(島花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2리를 관할하였다. 얼마 후 용담리가 용담노동자구(龍潭勞動者區)로 승격되었다.

1953년 12월에 순천군 용암리(龍巖里)를 흡수하고 서남리 일부를 안주군 상서리(祥瑞里)에 편입하였다. 1958년 6월 알일리 일부가 조양노동자구(朝陽勞動者區)로 개편되었다. 1961년 3월에 남전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고, 1963년 11월에 삼봉리 · 용진리 · 묵방리가 각각 노동자구로 승격되었으며, 1967년 10월에 북원리 · 군우리 · 알일리가 각각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동시에 남전노동자구 일부가 용담노동자구에, 용담노동자구 일부가 남전노동자구에 각각 편입되었다. 1969년 12월에 서남리가 용원노동자구(龍源勞動者區)로 개편되었으며, 용암리가 용원노동자구에 흡수되었고, 1984년에 봉창리가 북창군(北倉郡)에 이관되었다.

1990년 8월 군이 개천시로 승격되면서 개천읍과 준혁리 일부를 병합하여 삼포동(三浦洞)으로, 개천읍 일부와 군우노동자구 일부를 병합하여 천리길동 · 광복동(光復洞) · 군우동(軍隅洞)으로, 개천읍 나머지 일부를 신성동(新成洞)으로, 군우노동자구 일부를 약수동(藥水洞)으로, 군우노동자구 나머지 일부와 보부리 일부를 병합하여 강철동(鋼鐵洞)으로, 보부리 일부와 용진노동자구 일부를 병합하여 건지동(巾之洞)으로, 보부리 나머지 일부를 남천동(南川洞)으로, 용진노동자구 나머지 일부를 용진동(龍津洞)으로, 남전노동자구를 분리하여 자작동(自作洞)과 전진동(前進洞)으로, 용담노동자구를 남전동(藍田洞)으로, 조양노동자구를 조양동(朝陽洞)으로, 삼봉노동자구를 분리하여 봉천동(鳳泉洞) · 삼봉동(三峯洞)으로, 북원노동자구를 분리하여 인흥동(仁興洞)과 북원동(北院洞)으로, 용원노동자구를 분리하여 용원동(龍源洞) · 각암동(閣巖洞) · 용암동(龍巖洞)으로, 알일노동자구를 알일동(戞日洞)으로, 묵방노동자구를 묵방동(墨坊洞)으로, 용운리 일부와 구읍리 일부를 병합하여 승창동(承昌洞)으로, 용운리 일부와 대각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대동(龍臺洞)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1993년에 내동리가 동림리(桐林里)로 개칭되었다. 1997년에 용원동이 서남동(西南洞)으로 개칭되었고, 안주시 송암동 일부를 흡수하여 용원동으로 개편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26동(각암동, 강철동, 건지동, 광복동, 군우동, 남천동, 남전동, 용대동, 용암동, 용원동, 용진동, 묵방동, 봉천동, 북원동, 삼봉동, 삼포동, 서남동, 승창동, 신성동, 알일동, 약수동, 인흥동, 자작동, 전진동, 조양동, 천리길동), 11리(광도리, 구읍리, 대각리, 도화리, 동림리, 용운리, 보부리, 외동리, 외서리, 준혁리, 청룡리)로 구성되어 있다.[4]

산업[편집]

광복 전 개천시에서는 주로 채굴업과 수공업적인 양주업 그리고 농업이 지역경제의 기본을 이루고 있었다. 일제는 조양광업소, 봉천무연탄주식회사, 조양광업주식회사, 일본제철업주식회사 등을 통하여 석탄, 철광 등을 약탈하여 갔다. 광복 후 개천시는 채굴업을 위주로 하면서 기타 공업부문도 다각적으로 발전되어 평안남도의 중요한 공업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공업은 석탄채굴업, 광석채굴업, 금속공업, 기계공업 등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석탄생산액이 개천시 공업 총생산액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다. 개천시에는 평남북부탄전 총매장량의 30여 %에 해당한 석탄이 분포되어 있는데, 주로 자작동, 전진동, 남전동, 삼봉동, 북원동, 알일동, 조양동 일대에 매장되어 있다. 석탄총생산량에서 중앙공업에 속하는 탄광이 81.3%를 차지하고, 지방공업에 속하는 중소탄광들이 18.7%를 차지한다.

중앙공업에 속하는 탄광으로는 조양탄광(朝陽炭鑛), 봉천탄광(鳳泉炭鑛), 개천탄광(价川炭鑛), 남전탄광(藍田炭鑛), 신립탄광(新立炭鑛), 무진대탄광(無盡臺炭鑛), 신성탄광(新成炭鑛) 등이 있다. 이밖에 개천시에는 지방공업에 속하는 100여 개의 중소규모탄광들이 운영되고 있다. 매장량이 많고 발열량이 높은 개천시의 석탄은 서부지역의 공업 원료 및 연료로 이용되고 있다.

기타 광석채굴업도 발달되어 있는데 주로 철광, 납, 남정석, 흑연, 석회석 등을 채굴하고 있다. 원리광산(院里鑛山)의 흑연은 매장량이 많고 질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천동광산(泉洞鑛山)에서는 탄산철광과 석회석이, 남전광산(藍田鑛山)과 삼봉광산(三峯鑛山)에서는 남정석이 채굴되고 있다. 개천선철공장(价川銑鐵工場)에서는 선철, 강철을 비롯하여 환강, 주철관, 방열기, 주물품 등이, 개천씰루민공장에서는 여러 가지 알루미늄 제품들이 생산되고 있다.

기계공업에서는 채굴기계설비와 그 부속품 생산이 기본을 이루고 있는데, 주요 업체로는 개천탐사기계수리공장(价川探査機械修理工場), 개천기계공장(价川機械工場), 개천서부지구탐사설비부속품공장(价川西部地區探査設備附屬品工場) 등이 있다. 주요 기계공업제품으로는 시추기, 감속기, 보일러, 터빈, 펌프, 송풍기, 광차 등과 각종 부속품이 있다.

이밖에 개천시에는 건재, 화학, 제약, 일용품, 식료, 방직 및 피복 공업부문의 공장들이 있다. 특히 양질의 무연탄과 석회석이 많은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시멘트, 콘크리트부재, 벽돌, 내화벽돌, 오지관, 소석회 등을 많이 생산하고 있다. 개천피복공장(价川被服工場)에서 생산되는 각종 피복제품들은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한편 외국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농경지는 개천시 전체 면적의 약 21% 되는데, 그 중 논이 약 19.6%, 밭이 약 66.9%, 뽕밭이 약 5.3%를 차지하고 있다. 옥수수는 개천시의 주요 작물로서 주로 구읍리, 청룡리, 용운리 등 지역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 공예작물에서는 담배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곳에서 생산된 담배의 약 50%가 외국에 수출된다.

개천시는 평안남도 안의 기타 시, 군들보다 채소업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채소는 개천시는 물론 기타 시, 군들에까지 공급되고 있다. 축산업은 개천시의 농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개천시에서는 연풍호 주변의 산골짜기에 25정보의 방목지를 조성하고 소를 사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축산업을 공업화하여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곳에는 개천닭공장, 개천오리공장, 개천배합사료공장(价川配合飼料工場) 등이 있으며 배합사료와 가축약은 평안남도의 기타 지역에까지 공급된다. 광복 후 개천시의 과수밭면적은 광복 전의 약 100배로 장성하였다. 과수밭 가운데서 사과밭이 약 47%, 배밭이 약 24%, 복숭아밭이 약 23%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참살구밭, 딸기밭, 자두밭 등으로 되어 있다. 과수업은 주로 외서리, 용원동, 군우동 등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밖에 1,000여 정보의 뽕밭과 가둑나무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전문적인 잠업농장도 운영되고 있는데, 양잠업은 알일동, 구읍리, 광도리 등 지역이 중심지로 되어 있다.[5]

교통[편집]

개천시 지역은 북한 서부지대교통의 중심지로서 서부지대와 북서부 내륙지역 사이는 물론 동부와 서부 사이의 운수연계보장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통운수에서 철도 운수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만포선(滿浦線)이 개천시의 서부지역으로 통과하고 있고 개천역(价川驛)에서 개천선(价川線)과 조양탄광선(朝陽炭鑛線)이 분리되고 있다. 그리고 남부경계지대로 대건선이 통과하고 있다. 영역 내에는 만포선과 개천선, 조양탄광선에 개천역을 비롯하여 남전역(藍田驛), 자작역(自作驛), 봉천역(鳳泉驛), 원리역(院里驛), 구읍역(舊邑驛), 석간역(石間驛), 조양탄광역(朝陽炭鑛驛), 천동역(泉洞驛), 용원리역(龍源里驛), 각암역(閣巖驛), 무진대역(無盡臺驛) 등 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망도 발달되어 있는데, 평양~강계 간 1급도로를 비롯하여 개천~영변, 개천~신안주, 개천~덕천, 개천~순천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도로의 총연장길이는 934.3km이다. 평안남도 소재지인 평성시까지는 도로로 82km, 철도로 약 64km이다.[6]

교육[편집]

교육기관으로 공업대학 1개교와 석탄공업전문학교를 비롯한 전문학교 8개교, 고등중학교 50개교, 인민학교 46개교, 유치원 235개, 탁아소 282개가 있다. 문화시설로 시문화회관과 군중문화회관이 있으며, 30여 개의 전문치료과와 실험실 및 500개의 병상을 갖춘 인민병원을 비롯하여 80여 개의 전문 예방치료 기관이 있다.

행정 구역[편집]

현재 강계시는 36동, 11리로 구성되어 있다.

  • 천리길동
  • 신성동 (新成洞)
  • 광복동 (光復洞)
  • 삼포동 (三浦洞)
  • 자작동 (自作洞)
  • 람전동 (藍田洞)
  • 조양동 (朝陽洞)
  • 봉천동 (鳳泉洞)
  • 북원동 (北院洞)
  • 인흥동 (仁興洞)
  • 군우동 (軍隅洞)
  • 강철동 (鋼鐵洞)
  • 약수동 (藥水洞)
  • 룡진동 (龍津洞)
  • 서남동 (西南洞)
  • 각암동 (閣巖洞)
  • 룡암동 (龍巖洞)
  • 알일동 (戞日洞)
  • 묵방동 (墨坊洞)
  • 건지동 (巾之洞)
  • 남천동 (南川洞)
  • 룡대동 (龍臺洞)
  • 전진동 (前進洞)
  • 룡원동 (龍源洞)
  • 준혁리 (俊赫里)
  • 외서리 (外西里)
  • 도화리 (島花里)
  • 보부리 (寶富里)
  • 청룡리 (靑龍里)
  • 광도리 (光島里)
  • 대각리 (臺閣里)
  • 룡운리 (龍雲里)
  • 구읍리 (舊邑里)
  • 동림리 (桐林里)
  • 외동리 (外東里)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개천시〉, 《위키백과》
  2. 개천시〉,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개천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개천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개천시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평안남도 개천시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개천시 문서는 도시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  

  검수요청.png검수요청.png 이 개천시 문서는 북한 행정구역에 관한 글로서 검토가 필요합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문서 내용을 검토·수정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