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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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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위치
마르케주 위치

마르케주(이탈리아어: Marche)는 이탈리아 중앙부에 있는 주이다. [1]

개요[편집]

마르케주의 면적은 9,366km²이며 인구는 1,542,106(2006)명이다. 아펜니노 산맥 기슭에 위치하며, 아드리아해에 접한다. 아드리아해로 유입하는 몇몇 강을 따라서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마르케주의 주도는 안코나이며, 마체라타, 아스콜리피체노, 안코나, 페르모, 페사로에우르비노의 5개 도가 있다. 마르케주 마체라타도 마체라타는 마테오 리치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서 센티눔 전투가 벌어졌다.

이탈리아 마르케(Marche) 주에는 프라다(Prada)나 토즈(Tods), 체사레 파치오티(Cesare Paciotti)의 신발 생산 공장들이 있고 요트를 제조하는 공장도 밀집해있으며 와인과 치즈,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어 수입이 많은 반면 인구 밀집도는 적어 삶의 질이 매우 풍요로운 곳이다.[2][3][4]

자연환경[편집]

마르케주는 계곡해안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구릉지다. 해안 지역의 길이는 약 173km에 달한다. 가비체-페사로 사이 구릉지와 안코나 인근 동쪽 경사면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탄하고 직선형이다. 가장 높은 산은 해발 2,476m의 몬테베토레다. 겨울철 산악지역은 춥고 종종 눈이 오는 반면, 해안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낸다. 내륙에 더 비가 많이 내린다. 연평균 강수량은 내륙이 1,000~1,500mm이고, 아드리아 해안은 600~800mm이다.

역사[편집]

마르케주는 고대 철기시대 도시인 피케넘의 영토로 알려져 있다. 안코나에 있는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이 시대의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BC 4세기 북쪽지역은 세노네스족이 점령했고, BC 295년 센티눔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다. 그 후 로마인들은 고대도로인 비아 플라미니아, 비아 살라리아를 건설하여 로마와 연결하였다.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고트족의 침략을 받았다. 고딕전쟁 이후에는 비잔틴제국의 일부였다. 이후 롬바르드족의 지배를 거쳐 8세기 후반 샤를마뉴에 의해 정복되었다. 마르케는 명목상으로 교황영토의 일부였지만, 대부분 지역 영주들의 소유였다. 12세기 안코나는 프레드리히와 베네치아공화국에 모두 저항했고, 스스로 해양 공화국임을 선포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러 귀족 가문이 이 지역을 놓고 다퉜다. 1808~1813년 이탈리아 왕국으로 합병되었고 1860년 국민투표에 의해 확정되었다.

교통[편집]

마르케주에서 큰 공항은 안코나-팔코나라 국제공항이다. 국내선은 파노공항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주요 항구는 안코나 항구이며, 2010년 기준 150만 명 이상의 승객이 이용한다. 주요 철도 노선은 밀라노-레체 노선이며, 볼로냐-안코나, 로마-안코나 노선도 있다.

아드리아해[편집]

아드리아해(이탈리아어: Mare Adriatico, 영어: Adriatic Sea)는 지중해 북쪽의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이다. 서쪽 해안이탈리아와 접하고 있으며, 동쪽 해안은 북쪽으로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알바니아와 접하고 있다. 아드리아해는 1,300개가 넘는 섬들이 있으며, 대부분이 크로아티아 서부 지역의 해안가 지역에 위치했다.

아드리아해에는 1,300개 이상의 섬이 있으며, 대부분은 동부 해안의 크로아티아 부분을 따라 위치해 있다. 3개의 분지로 나누어져 있으며 북쪽이 가장 얕고 남쪽이 가장 깊으며 최대 수심은 1,233m(4,045피트)이다. 수중 능선인 오트란토 실(Otranto Sill)은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 사이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우세한 해류는 오트란토 해협에서 동쪽 해안을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흐르다가 다시 서쪽(이탈리아) 해안을 따라 해협으로 흐른다. 아드리아해의 조수 움직임은 미미하지만 때때로 더 큰 진폭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드리아해의 염분도는 지중해보다 낮다. 왜냐하면 아드리아해는 지중해로 유입되는 담수의 1/3을 모아 희석분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표면 수온은 일반적으로 여름에는 30°C(86°F), 겨울에는 12°C(54°F) 범위로 아드리아 해 분지의 기후를 상당히 완화시킨다.

아드리아 해는 중생대에 아프리카 판에서 분리된 아풀리아 소판(Adriatic Microplate)에 위치해 있다. 판의 움직임은 유라시아 판과 충돌한 후 주변 산맥의 형성과 아펜닌 구조의 융기에 기여했다. 올리고세 후기에 이탈리아 반도가 처음 형성되어 아드리아 해 분지를 나머지 지중해와 분리했다. 모든 종류의 퇴적물은 아드리아 해에서 발견되며, 대부분의 물질은 포 강과 서해안의 다른 강을 통해 운반된다. 서쪽 해안은 충적토 또는 계단식 지형인 반면, 동쪽 해안은 뚜렷한 카르스트화로 인해 움푹 들어간 곳이 많다. 아드리아해에는 바다의 카르스트 서식지와 생물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수십 개의 해양 보호 지역이 있다. 바다에는 동식물이 풍부하다. 7,000종이 넘는 종이 아드리아해에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그 중 다수는 고유하고 희귀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이다.

아드리아해 해안에는 350만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가장 큰 도시는 바리 (도시)(Bari), 베네치아(Venice), 트리에스테(Trieste), 스플리트(Split)이다. 아드리아해 해안의 최초 정착지는 에트루리아인, 일리리아인, 그리스인이었다. 기원전 2세기에는 이 지역이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중세에는 아드리아해 해안과 바다 자체가 여러 국가, 특히 비잔틴 제국, 크로아티아 왕국, 베네치아 공화국, 합스부르크 왕가, 오스만 제국 등 여러 국가에 의해 어느 정도 통제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 제1제국은 해안 통제권을 획득하고 영국은 이 지역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싸우게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아드리아 해 동부 해안과 포 계곡 대부분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통일 이후, 이탈리아 왕국은 20세기까지 지속된 동쪽 확장을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의 붕괴 이후 동부 해안 전체의 통제권이 유고슬라비아와 알바니아에게 넘어갔고, 트리에스테와 주변 지역은 이탈리아의 통제하에 남아 있었다. 전자는 1990년대에 붕괴되어 아드리아해 해안에 4개의 새로운 주가 탄생했다.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는 1975년까지 해양 경계에 합의했고 이 경계는 유고슬라비아의 후계 국가들에 의해 인정되었지만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사이의 해양 경계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탈리아와 알바니아는 1992년 해양 경계에 합의했다.

수산업과 관광업은 아드리아해 해안 전체의 중요한 수입원이다. 아드리아 해 크로아티아의 관광 산업은 아드리아 해 분지의 다른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해상 운송은 또한 이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드리아 해에는 연간 백만 톤 이상의 화물을 처리하는 항구가 19개 있다. 연간 화물 회전율 기준으로 가장 큰 아드리아해 항구는 트리에스테항이고, 스플리트항은 연간 승객 수가 가장 많은 아드리아해 항구이다.[5]

관광[편집]

우르비노(Urbino)[편집]

Pesaro, Urbino 도의 한 축인 도시 우르비노(Urbino)는 르네상스 시대의 걸출한 예술가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건축, 회화, 장식 등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뽑낸 라파엘로는 현재 바티칸에 있는 아테네 학당(La Scuola di Atene)라는 잘 알려진 걸작으로 유명하다. 비록 37세의 젊은 나이로 단명했지만, 도시 우르비노에서 그의 생가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우르비노하면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Federico da Montefeltro)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우르비노의 공작으로 르네상스의 문을 여는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인문학적 교육을 실천한 지도자이다.

리비에라 델 코네로(Riviera del Conero)[편집]

마르케는 모든 도가 바다와 맞닿아있고 해안선도 구불구불하지 않아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다. 그 중 현지인들에게도 유명한 리비에라 델 코네로(Riviera delConero)는 누군가 깍아낸 듯한 절벽과 함께 있는 해변, 해변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에서 내려다보는 아드리아 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명칭은 시롤로(Sirolo), 누마나(Numana) 등을 통칭하는 말로 각 지역마다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하게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몬티 시빌리니(Monti Sibillini)[편집]

마르케는 역사 깊은 도시, 아름다운 해변과 더불어 드넓은 평야와 산도 있다. 이탈리아 중간을 가로지르는 아펜니니 산맥의 일부인 몬티 시빌리니가 마르케 남서쪽에 위치해있다. 국립공원으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2,476m인 몬테 베토레(Monte Vettore)이다. 한국의 산보다 완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과거 빙하 침식 지형으로 U자형 계곡이 많기 때문이다. 이 곳이 유명한 이유는 산뿐만 아니라 그 아래 넓은 평야 지역에서 자라는 다양한 식물과 꽃들이 있기 때문이다. 튤립, 라벤더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드넓은 평야, 산맥과 어우러져 매력적인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다.

로레토(Loreto)[편집]

로레토(Loreto)는 나사렛으로부터 옮겨진 성모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가(聖家, The Holy House)가 있는 도시이다. 카톨릭 신자들의 성지로 순례자들이 많고 근처 길에서도 순례자들을 볼 수 있다. 안쪽의 책자만 보더라도 여러 언어별로 준비되어 있고 당연히 한국어 책자도 있다. 성모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집의 일부분이라고 알려진 곳을 들어갈 수 있고 황금으로 장식한 것을 알 수 있다. 천사에 의해 그 집이 옮겨졌다는 말이 있는데, 역사적 고증을 보면 사실 나폴리왕국의 왕자 펠리페 2세 결혼으로 옮겨졌다고 되어있다. 과학적 조사 결과, 성당 안 성가는 당시 나사렛의 건축물 성분, 건축양식 등이 같기에 신빙성이 더 높고, 그만큼 종교적 의미가 강한 곳이라 할 수 있다.[6]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마르케주〉, 《위키백과》
  2. 마르케주〉, 《네이버 지식백과》
  3. 마르케〉, 《나무위키》
  4. 예술가들의 고향 이탈리아 마르케주〉, 《티스토리》, 2013-09-04
  5. 아드리아해〉, 《위키백과》
  6. L군, 〈2020년 최고의 여행지 - 지역 이탈리아 '마르케 Marche'〉, 《네이버 블로그》, 2019-12-26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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