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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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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니지(아랍어: تونس , 영어: Tunisia)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이며 공식 국명은 튀니지 공화국(아랍어: الجمهورية التونسية, 영어: Republic of Tunisia)이다. 튀니지는 이탈리아시칠리아 섬의 남서쪽과 사르데냐의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알제리와 남동쪽으로는 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튀니지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국가이며, 아틀라스 산맥을 따라 자리잡은 나라들 중 가장 작은 국가이다. 국토의 약 40퍼센트는 사하라 사막이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지역은 1,300km의 해안선과 그 인근의 비옥한 토지로 구성되어 있다. 튀니지 해안가의 비옥한 토지는 특히 고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들었는데, 먼저 유명한 페니키아인들이 설립한 카르타고가 이 곳에 있었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는 아프리카 속주로서 "빵 바구니(bread basket)"이라는 별칭으로 불릴만큼 곡창 지대로 유명하였다. 이후 5세기에는 반달족, 6세기에는 비잔티움 제국, 8세기부터는 아랍족의 지배를 받았다.

튀니지는 세계 경제 포럼이 발표한 보고서에 있어 아랍과 아프리카의 나라들 사이에서 높은 위치를 랭크했다.

개요[편집]

튀니지 국기
  • 수도: 튀니스
  • 면적: 163,610 km2
  • 인구: 1,1700,000명 (2018년)
  • 공용어: 아랍어
  • 정치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이원집정부제
  • 대통령: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의 국가명은 동북부에 위치한 수도 튀니스로부터 유래했다.

지도[편집]

역사[편집]

고대[편집]

고대에는 페니키아인들이 교역 거점으로 이 땅에 이주하여 기원전 814년경에는 고대 카르타고가 건국되고 지중해 무역으로 번영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신흥 세력인 로마 제국과 시칠리아의 패권을 둘러싸고 기원전 264년 제1차 포에니 전쟁[1]을 겪은 후에, 제2차 포에니 전쟁[2]에서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간 한니발 바르카 장군이 활약을 펼쳤지만,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의해 본국이 공략되고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완전히 패배함으로써, 기원전 146년에 멸망했다. 현재의 튀니지와 리비아는 로마 지배 하의 아프리카 속령이 되었다.

로마 시대[편집]

로마 지배 하에서는 일류 속령으로 로마화가 진행되어 기독교도 전래되었다. 로마 제국의 동서 분열 이후, 서로마 제국의 관할이 되었지만, 게르만계 반달족이 439년 침입하여, 카르타고에 반달 왕국을 세웠다. 반달 왕국은 해상 무역으로 번영했으나 534년에 비잔티움 제국에 정복되었다.

이슬람 시대[편집]

7세기에는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세력을 모은 아랍인이 동방에서 침입하여 토종 민족인 베르베르인 가히나 여왕과 동로마 제국의 연합군을 격파하고, 아프리카를 이슬람 세계에 편입시켰다. 이프리키야로 자리매김한 튀니지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를 섬기는 형태로 카이르완의 아글라브 왕조가 성립되었고, 아글라브 왕조의 쇠퇴 후 반아바스를 내건 이스마일파의 파티마 왕조가 이 땅에서 흥하여, 아글라브 왕조를 멸망시켰다. 파티마 왕조의 쇠퇴 이후 카이르완은 지리드 왕조가 번창했다. 그 후 모로코 방면에서 세력을 확장한 무와히드 왕조의 지배를 받은 후에, 1229년에 튀니지에 하프스 왕조가 성립되었다. 하프스 왕조는 서쪽으로는 알제리에서 동쪽으로 트리폴리에 이르기까지 영토를 통치하였으며, 《역사서설》을 저술한 이븐 할둔 등이 활약했다. 그러나 하프스 왕조는 점차 퇴색하고, 16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페인의 속국이 된 후, 1574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당했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초기에는 "파샤"라는 군사령관이 파견되어 왔지만, 유럽 열강 침략에 의한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튀니지의 "베이"는 이스탄불의 오스만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통치를 실시하였고, 1705년 튀니지에는 후세인 왕조가 성립되었다.

근대[편집]

후세인 왕조는 프랑스 지배를 사이에 두고 252년에 걸쳐 지배 하였다. 1837년에 즉위했던 아흐메드 베이 시대에 시작된 서유럽 정책과 부국강병책은 튀니지는 근대화가 서구화 정책이라는 것을 직시하고 정책을 시행했다. 하이루딩 파샤 등의 활약으로 1861년 헌법이 제정되고 사독 베이는 이슬람 세계 및 아프리카 최초의 입헌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보수파의 저항으로 1864년 헌법은 정지되고 근대화, 서구화 정책은 좌절되었다. 1869년 서구화 정책의 부담으로 재정이 파탄이 일어났다.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프랑스의 종주권이 인정되면서, 프랑스가 튀니지를 침공하여 1881년 《바르도 조약》을 맺었고, 1883년《 마르사 협정》으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따라서 베이는 명분상의 군주가 되었으며, 실질적 통치는 프랑스인 총독과 정부 및 지방 자치 단체에 의해 이뤄졌으며, 요직도 프랑스인이 차지했다.

현대[편집]

1907년에는 튀니지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 "청년 튀니지당"이 등장하여 "헌정당"으로 발전했다. 그들은 튀니지 인의 시민권 승인, 헌법 제정, 튀니지 인의 정치 참여를 요구하는 운동을 전개한 하비브 부르기바가 "신헌정당"의 이름으로 튀니지의 완전 독립을 요구했다. 이러한 튀니지의 민족 운동의 증가함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1956년 3월 20일 베이 무하마드 8세 알 아민을 국왕으로 하는 조건으로 독립을 받아들였다. 초대 총리는 부르기바가 선출되었고, "튀니지 왕국"이 성립하여 독립을 달성했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57년에는 왕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튀니지 공화국"이 성립시켰다. 총리에서 대통령이 된 부르기바는 1959년 헌법을 제정하고,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했다가, 1970년대에는 자유주의 노선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장기 집권과 총파업과 식량 위기 등 사회 불안이 높아지면서 1987년에는 무혈 쿠데타가 일어나, 벤 알리 총리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부르기바 정권은 하야했다.

1991년 걸프 위기 때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지지하면서 아랍인의 연대를 주창했다. 1990년대에는 이웃 나라인 알제리 이슬람주의 조직에 의한 테러가 펼쳐졌으며 내전으로 발전했기 때문에(알제리 내전), 이슬람 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현재는 이슬람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온화한 이슬람에 속하는 나라이고 중동과 서양의 통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관광지로 발달하여,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는 양호한 경제 상황을 가지고 있다.

2011년 튀니지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정권퇴진 운동으로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해 23년 독재정권은 막을 내렸다.

지리[편집]

튀니지는 알제리, 리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한다. 튀니지는 상대적으로 주변 국가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기후적, 지리적 다양성이 충분하다. 아틀라스 산맥이 북동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북쪽으로는 계속된 산지와 평원으로 이어지는 텔 지대가 나타난다. 동쪽 지중해 해안을 따라서 사힐(Sahil)이라고 하는 평원 지대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올리브로 유명한 곳이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가프사(Gafsa)라고 하는 구릉 지대가 나타난다. 남쪽 지대는 반건조 지대이며 사막이다.

튀니지의 기후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고 건조하며 겨울에는 온화하고 비가 자주 내린다. 7월 평균기온은 29.3℃, 12월 평균기온은 11.4℃이나 여름에는 40℃이상 오르기도 하고 겨울에는 6~7℃정도로 떨어지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인구[편집]

튀니지에서는 아랍인이 다수이며, 프랑스인은 그 다음, 그 다음이 이탈리아인, 소수는 베르베르인이다.

공용어는 아랍어(튀니지 아랍어)이고 프랑스어는 오늘날 약 700만의 인구가 모어로 쓰고 있다. 또한, 프랑스어사용국기구(프랑코포니)의 정회원국이다.

영어와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은 관광지에서 주로 사용된다.

각주[편집]

  1. 제1차 포에니 전쟁〉, 《위키백과》
  2. 제2차 포에니 전쟁〉,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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