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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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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군 위치

재령군(載寧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남도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개요[편집]

재령군의 면적은 328.4km²이며 인구는 125,631명(2008)이다. 동쪽으로 황해북도 은파군, 봉산군, 사리원시, 서쪽으로 신천군, 남쪽으로 신원군, 북쪽으로 안악군과 접해 있다. 동서(용교리~고산리) 간의 길이는 11km이고, 남북(천마리~동신흥리) 간의 길이는 39km이며, 도 전체면적의 3.8%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1구 24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재령읍이다.

재령(載寧)이라는 이름은 고려 시대인 1217년에 붙었는데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뜻이다. 장수 산성이 있다 하여 성(城)의 옛말인 재로부터 유래하여 재령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군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재령평야는 순우리말로는 '나무리벌'이라고도 부른다. 조선 시대 이래로 황해도, 나아가 북한 지역의 주요 곡창지대로 꼽힌다. 조선 인조 대부터 김자점의 주도로 개간하기 시작하면서 원래 만이었던 재령평야가 오늘날의 곡창지대로 탈바꿈하였다. 특히 북률면 일대에 김자점이 세운 수리시설인 경우궁보(景祐宮洑)는 심지어 광복 때까지도 일부가 남아 기능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재령군 북부, 옛 북률면 지역에는 '김제원리'(金齊元里)라고 하는 리가 있는데, 원래 '대홍리'였던 것을 1961년에 이름을 바꾸었다. 이 지역 출신인 '김제원(1888~1950)'이라는 농민이 북조선인민위원회의 토지개혁을 통해 토지를 분배받게 되었다는 것에 감격하여 수확한 쌀 30가마니를 북한 공산주의 정권에 바쳤다는, 이른바 애국미헌납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제원의 쌀 헌납은 선의에 기반한 것이었으나, 이를 악용한 애국미헌납운동은 또다른 형태의 쌀 수탈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북한 정권 수립 시기에 이어진 토지개혁 때문에 재령 지역 대부분의 자영농과 지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고, 많은 이들이 월남했다.

과거 재령에 동척 소유의 북률농장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조선노동당의 김제원협동농장, 재천협동농장, 북지협동농장 등의 집단농장들이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지역 농민들은 사실상 농노처럼 착취당하는 삶을 이어오는 중이다. 협동농장 시스템의 비효율과 비료 부족, 북한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오늘날 재령은 과거의 명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북한 내부에서는 여전히 가장 농업 생산성이 좋은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북한 내에서 연백평야와 함께 쌀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다.

2022년부터는 김정은의 교시로 평야 내의 밀 재배 면적을 기존의 1.5배로 늘렸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들어 경제 사정이 더욱 악화된 북한이 옥수수 재배에 한계를 느껴 대신 밀 재배를 늘린 것이라고 분석한다.

해방 이후, 재령평야는 38선 이북에 위치했기에 북한의 영토가 되었다. 한국전쟁 도중 북진 과정에서 잠시 대한민국 정부가 수복하였으나, 곧 중공군의 불법 개입으로 인해 1.4 후퇴가 벌어지며 다시 북한 치하로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신천군 사건 같은 이념 대립으로 인한 양민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재령 출신의 실향민으로 유명 연예인인 송해가 있는데, 생전 송해는 죽기 전에 자신의 고향 재령군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열 수 있기를 희망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2022년 세상을 떠났다.[3]

자연환경[편집]

재령군은 재령강(載寧江) 왼쪽 기슭을 따라 북남방향으로 길게 놓여 있는데, 넓은 재령벌(載寧-)을 차지하고 있어 지형의 대부분이 평탄하며 장수산줄기(長壽山-)가 뻗어 있는 남부지역만 산지로 되어 있다. 평균해발은 113.2m이고, 재령읍의 해발은 13m밖에 안 된다. 남부에는 장수산(745m), 석동산(石洞山, 661m), 천마산(天摩山, 467m) 등 산들이 솟아 있는데, 이 산들에는 규암으로 된 큰 절벽들이 있다. 장수산은 예로부터 ‘황해금강(黃海金剛)’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명산으로서 층암절벽 사이에 열두 굽이의 ‘석동12곡(石洞十二曲)’이 있다.

지질은 동부와 서부가 서로 다르다. 서부지역에는 시생대낭림층군과 유라기 단천암군 화강암관입체들이 발달되어 있으며 동부지역에는 상원계와 대보계층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흑운모편마암, 흑운모각섬편마암, 각섬암, 흑운모화강암, 백운모화강암, 역암, 사암, 이암, 응회암, 석영반암, 분사암 등이 주요 암석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주로 철, 석고, 수정, 석면, 운모 등 유색금속 및 비금속자원이 풍부하다. 토양은 갈색산림토양, 충적지토양, 논토양, 진펄토양이 분포되어 있다. 특히 재령강과 서강 일대의 재령벌에는 충적지토양과 논토양이 발달되어 있다.

연평균기온은 10.1℃, 1월 평균기온은 -6.6℃, 8월 평균기온은 24.7℃, 10℃이상 적산온도는 3,742℃이다. 연평균강수량은 963.7mm, 일최대강수량은 301.4mm(1965년), 연최소강수량은 631.7mm(1977년)였다. 첫 서리는 10월 13일경에, 마감서리는 4월 27일경에 내린다. 여름철에는 남서풍이, 겨울철에는 서풍, 북서풍이 우세하다. 수계는 5km 이상 되는 하천이 11개이며 모두 대동강수계에 속한다. 제일 큰 강은 재령강이며 이밖에 페천, 척서천(滌暑川), 전탄천(箭灘川), 단장천(短墻川) 등이 있다. 재령강 강바닥의 물매는 약 0.3‰로서 비교적 느리다.

서해갑문(西海閘門)이 건설되어 재령강어구로부터 42km나 떨어진 용교리까지 받던 바다의 해수 피해는 없어졌다. 저수지로는 황해북도 은파군과의 경계에는 은파호(銀波湖)가 있고 그 밖의 양계저수지(陽溪貯水池), 천마저수지(天摩貯水池) 등이 있다. 산림은 재령군 전체면적의 25%를 차지하는데, 주로 남부의 서림리, 봉오리, 장국리, 천마리, 양계리 등의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식물피복에서 소나무림이 50% 이상이다.[4]

역사[편집]

재령군의 고산리, 부덕리 등 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발굴된 것은 적어도 이시기부터 재령군 고장에 인류가 생존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식성군(息城郡) 또는 한성군(漢城郡), 내홀(內忽), 한홀(漢忽)로 불렸고, 통일신라 때에는 중반군(重盤郡)이라 하였으며 고려 초에는 안주(安州)라고 하였다.

1217년에 서해도(西海道) 재령현으로 되었고, 1397년에 풍해도(豊海道) 재령현으로 개편되었는데, 당시 풍주(豊州) 관하의 삼지현(三支縣)을 이 고을에 소속시킨 다음 직촌으로 개편하였다. 1415년에 풍해도 재령군으로 되었으며, 1417년에 황해도에 이관되면서 안풍(安風) 또는 안릉(安陵)이라고도 하였다.

1895년에 해주부(海州府) 재령군으로 되었고, 1896년에 황해도 재령군으로 되어 우률면(右栗面), 좌률면(左栗面), 상률면(上栗面), 하률면(下栗面), 좌리면(左里面), 상안면(上安面), 하안면(下安面), 우리면(右里面), 서호면(西湖面), 토산면(土山面), 용연면(龍淵面), 하성면(下聖面), 상류면(上柳面), 삼지강면(三支江面), 우두천면(牛頭川面), 은질지면(銀叱只面), 화산면(花山面), 상성면(上聖面), 하류면(下柳面), 상방면(上方面), 하방면(下方面), 청수리면(淸水里面) 등 22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 시에 북률면(北栗面), 남률면(南栗面), 재령면(載寧面), 하호리면(下湖里面), 용산면(龍山面), 하성면, 상류면, 삼지강면, 우두천면, 은산면(銀山面), 화산면, 상성면, 하류면, 상방면, 하방면, 청수리면 등 16개 면으로 개편되었다.

1938년에 재령읍(載寧邑), 북률면, 남률면, 삼강면(三江面), 은룡면(銀龍面), 상성면(上聖面), 하성면(下聖面), 신원면(新院面), 장수면(長壽面), 청천면(淸川面), 서호면(西湖面) 등 1읍 10면으로 되어 있었으며 광복 직후에 재령읍이 재령면으로 강등되면서 11면으로 되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신원면, 하성면, 상성면, 은룡면의 3개 리가 신원군(新院郡)에, 서호면의 3개 리가 신천군(信川郡)에, 삼강면의 4개 리, 은룡면의 4개 리가 은파군(銀波郡)에 편입되고 나머지 북률면, 남률면, 재령면, 청천면, 장수면의 전체 리와 서호면의 7개 리, 삼강면의 7개 리, 은룡면의 5개 리를 병합하여 재령군을 새로 구성하였는데, 이때 재령면의 남정리 · 수창리 · 석정리 · 문창리 · 향교리 · 국화리 · 일신리 · 신대리 · 유화리를 병합하여 재령읍(載寧邑)으로, 북률면의 동신흥리 · 서신흥리 · 강서리를 병합하여 동신흥리(東新興里)로, 북률면의 대홍리 · 석포리 · 석해리를 병합하여 대홍리(大洪里)로, 북률면의 굴해리 · 쌍교리와 무상리 일부를 병합하여 굴해리(屈海里)로, 북률면의 북지리 · 내종리 · 장하리를 병합하여 북지리(北芝里)로, 북률면의 신지리 · 남지리 · 진초리를 병합하여 남지리(南芝里)로, 북률면의 무상리 일부와 남률면의 강교리 · 방성리 · 신연리를 병합하여 강교리(江橋里)로, 남률면의 좌곡리 · 진곡리 · 내림리를 병합하여 내림리(來臨里)로, 재령면의 부성리 · 임천리 · 벽산리를 병합하여 벽산리(碧山里)로, 남률면의 해창리 · 고잔리 · 야두리를 병합하여 고잔리(古棧里)로, 재령면의 봉천리 · 내야리 · 양산리를 병합하여 봉천리(蓬泉里)로, 서호면의 작도리 · 무덕리 · 신탄리 · 신환포리와 신천군 노월면의 덕성리 일부 · 굴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환포리(新換浦里)로, 서호면의 왕현리 · 재천리 · 신전리와 재령면의 신정리를 병합하여 재천리(財泉里)로, 재령면의 고산리 일부를 고산리(孤山里)로, 재령면의 한천리와 삼강면의 금산리를 병합하여 금산리(金山里)로, 삼강면의 청룡리 · 학교리 · 은산리를 병합하여 청룡리(靑龍里)로, 삼강면의 용소리 · 설산리 · 용교리를 병합하여 용교리(龍橋里)로, 청천면의 부천리 · 부덕리 · 망월리를 병합하여 부덕리(富德里)로, 청천면의 곤산리 · 청천리를 병합하여 청천리(淸泉里)로, 청천면의 원내리 · 신곶리 · 송암리를 병합하여 신곶리(新串里)로, 청천면의 양대리와 은룡면의 신창리 · 석탄리를 병합하여 석탄리(石灘里)로, 은룡면의 신유리 · 봉오리 · 용지리를 병합하여 봉오리(鳳梧里)로, 장수면의 동락리 · 서원리 · 재궁리를 병합하여 서원리(書院里)로, 장수면의 동림리 · 서림리 · 식성리를 병합하여 서림리(西林里)로, 장수면의 장국리 · 용천리를 병합하여 장국리(墻菊里)로, 장수면의 양계리 · 청천리 · 양현리를 병합하여 양계리(陽溪里)로, 장수면의 천마리 · 두목리 · 학현리를 병합하여 천마리(天摩里)로 각각 개편하였으며 얼마 후 금산리를 금산노동자구(金山勞動者區)로 승격하여 1읍 1구 26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 12월에 벽산리 일부 · 봉천리 일부 · 고산리 일부 · 재천리 일부를 재령읍에 편입하였다. 1954년 10월에 황해남도 재령군으로 되면서 벽산리 일부가 고산리에, 안악군(安岳郡) 덕성리(德成里) 일부가 신환포리에, 신환포리 일부가 안악군 덕성리에, 은파군 양동리(養洞里) 일부가 용교리에, 용교리 일부가 은파군 유정리(柳亭里)에, 봉오리 일부가 은파군 구련리(龜蓮里)에, 청천리 일부가 신천군 동령리(東嶺里)에 각각 흡수되었으며 은파군 신덕리(新德里) 일부와 신원군 운양리(雲陽里) 일부를 병합하여 신덕리(新德里)로 개편하였다.

1961년 3월에 대홍리를 김제원리(金齊元里)로 개칭하였고, 1967년 10월에 신덕리를 신원군에 이관하였으며, 1979년 12월에 청룡리를 삼지강리(三支江里)로 개칭하였다. 1988년에 고잔리가 내림리에 편입되었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1읍(재령읍), 1구(금산노동자구), 24리(강교리, 고산리, 굴해리, 김제원리, 남지리, 동신흥리, 내림리, 용교리, 벽산리, 봉오리, 봉천리, 부덕리, 북지리, 삼지강리, 서림리, 서원리, 석탄리, 신곶리, 신환포리, 양계리, 장국리, 재천리, 천마리, 청천리)로 구성되어 있다. 재령군 소재지는 재령읍이다.[5]

산업[편집]

재령군은 현대적인 농업공업을 가진 군으로 되었다. 재령군 경제에서 기본을 이루는 부문은 농산업이다. 농경지에서 논이 60%, 밭이 30%, 과수밭이 7%, 뽕밭이 1%이다. 북부 및 동부 지역의 재령나무리벌에 위치해 있는 강교리, 굴해리, 북지리, 김제원리, 내림리, 동신흥리, 신환포리, 남지리, 삼지강리 등 지역은 재령군의 주요 벼산지로 되어 있다.

광복 후 재령군에서는 낮은 지대의 밭들을 논으로 개간하는 한편 물웅덩이와 불필요한 물도랑들을 메워 논 면적을 늘리고 밭 관개면적도 많이 늘렸다. 특히 은파호와 서해갑문이 건설됨으로써 논은 물론 등성이밭에까지 관개수가 보장되게 되었다. 이밖에 소출이 높은 벼품종을 대대적으로 받아 들여 알곡생산을 늘렸다. 재령나무리벌의 벼생산량은 군 벼생산량의 75%를 차지한다.

재령군은 북한에서 벼를 많이 생산하는 군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옥수수, 콩, 수수, 밀, 보리 등 곡물도 재배하고 있다. 과수업에서는 사과(53%), 배(36%), 복숭아, 포도, 자두, 감 등이 산출되고 있는데, 사과는 부덕리 · 신곶리 · 고산리 · 청천리 · 봉오리 · 서림리 · 벽산리 등 지역에서, 배는 삼지강리 · 서림리 · 봉오리 · 청천리 · 봉천리 등 지역에서 많이 산출된다.

축산업에서는 돼지, 소, 염소, 양, 토끼, 닭, 오리 등을 많이 사육하고 있다. 재령군의 공업은 채굴, 식료, 일용, 방직, 편직 및 피복, 종이, 도자기, 화학, 제약 공업부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 중앙공업이 42%, 지방공업이 58%를 차지한다.

중앙공업에서는 철광석과 광산기계부속품들이 산출되고 있다. 지방공업에서는 재령군의 원료에 기초하여 수지일용품, 철제일용품, 목재일용품, 운동기구 등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위치해 있다. 식료품공업은 재령군의 지방공업에서 일용품공업 다음 가는 자리를 차지하는데, 이밖에 여러 가지 기성복과 여자옷이 생산된다.[6]

교통[편집]

교통은 은률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재령역(載寧驛), 금산역(金山驛)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재령을 중심으로 하여 해주, 신천, 안악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있다. 재령~사리원, 재령~신원, 재령~신천, 재령~해주, 재령~안악, 재령~석탄, 재령~동신흥 간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이 밖에 재령강을 통한 수상통로도 개설되어 있다. 황해남도 소재지인 해주시까지는 52km이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재령군〉, 《위키백과》
  2. 재령군〉,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재령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재령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재령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재령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7. 조선향토대백과: 황해남도 재령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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