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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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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朝鮮日報)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언론기관이다. 영어로는 The Chosun Ilbo이다.

개요[편집]

정의옹호(正義擁護), 문화건설(文化建設), 산업발전(産業發展), 불편부당(不偏不黨)을 경영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조선일보는 서울에서 발행되는 조간신문이다. 1919년 조선일보사가 창립되었으며, 1920년 조선일보가 창간되었다. 역사가 깊은 만큼 국내에서의 영향력도 지대하다. 2016년 6월, 한국 ABC 협회에 따르면 광고 정보 쇼핑 활용 비율, 광고 주목도, 오피니언 리더의 평가, 유료부수, 발행부수 등 주요 부문에서 타 신문사를 앞지르며, 광고 효과가 가장 좋은 매체, 한국의 대표 신문, 가장 즐겨 보는 신문,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신문, 분석이 깊이 있는 신문, 국내에서 유료 부수 100만 부가 넘는 유일한 신문 등의 타이틀을 휩쓸어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광복 이전인 1920년대부터 현재까지 사회에도 크게 기여해온 것 역시 기업 평가와 이미지에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다.[1]

연혁[편집]

  • 1919년 09월 : 조선일보사 창립 ('조선일보설립 발기인조합' 결성)
  • 1919년 10월 09일 : 조선일보창간취지 '신문명진보의 주의' 선언
  • 1920년 03월 05일 : 조선일보 창간, 초대 사장 조진태(趙鎭泰)
  • 1920년 04월 28일 : 영친왕 – 日 왕족 방자의 강압적 결혼을 비판해 창간 4호만에 첫 압수
  • 1920년 08월 15일 : 유문환(劉文煥) 사장 취임
  • 1920년 08월 27일 : 일본 경찰의 민족 탄압 비난, 민간지 중 첫 정간(1차)
  • 1920년 09월 05일 : 정간 풀린 지 3일 만에 총독부의 정간 조치 비난, 무기 정간(2차)
  • 1921년 04월 09일 : 남궁훈(南宮薰) 사장 취임
  • 1922년 12월 01일 : 조선 민립대학 설립 운동
  • 1923년 06월 28일 : 조선일보 '사설(社設)' 등장
  • 1924년 09월 13일 : 신석우(申錫雨) 조선일보 인수, 이상재(李商在) 사장 취임
  • 1924년 09월 13일 : 국내 신문 최초 연재만화 '멍텅구리' 게재 시작
  • 1924년 11월 23일 : 국내 최초 조·석간 신문 발행
  • 1925년 02월 21일 : 첫 해외 특파원, 모스크바 특파
  • 1925년 09월 08일 : 일제 비판 사설 게재해 무기 정간(3차)
  • 1927년 02월 15일 : 항일 민족단일전선 신간회新幹會) 창립, 악법철폐 운동 전개
  • 1927년 03월 25일 : 신석우(申錫雨) 사장 취임
  • 1927년 12월 01일 : 조선일보 첫 신춘문예 사고(社告)
  • 1928년 05월 09일 : 일본군 출병 비난 사설로 133일간 정간(4차)
  • 1929년 07월 14일 : 문자보급 운동 시작('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 구호)
  • 1931년 07월 25일 : 안재홍(安在鴻) 사장 취임
  • 1932년 02월 22일 : 유진태(兪鎭泰) 사장 취임
  • 1932년 11월 23일 : 조만식(曺晩植) 사장 취임
  • 1933년 04월 : '정의옹호·문화건설·산업발전·불편부당' 사시(社是) 제정
  • 1933년 07월 19일 : 방응모(方應謨) 사장 취임
  • 1935년 01월 10일 : 한국 언론 최초 취재용 항공기 도입
  • 1935년 06월 10일 : 조선일보 태평로 사옥 신축
  • 1935년 12월 21일 : 일제의 한글교육 폐지 움직임에 저항, 전국에 한글 교재 10만부 배포
  • 1936년 08월 08일 : 한국 언론 최초 국제전화 취재(손기정 베를린마라톤 출전)
  • 1937년 01월 10일 : '소년조선일보' 창간
  • 1938년 03월 05일 : 조선향토문화조사 실시
  • 1938년 11월 26일 : 조선일보, 한국 최초 영화제 개최('제1회 영화제')
  • 1940년 08월 10일 : 일제에 의해 조선일보 폐간(지령 6923호)
  • 1945년 08월 : '주식회사 조선일보사 재창립위원회' 구성
  • 1945년 11월 23일 : 폐간 5년3개월 만에 조선일보 복간(지령 6924호)
  • 1947년 02월 23일 : 주식회사 조선일보사 창립주주총회(방응모 사장 선임)
  • 1950년 06월 27일 : 6.25전쟁 발발로 일시 제작 중단
  • 1950년 07월 06일 : 방응모(方應謨) 사장 강제 연행, 납북
  • 1950년 10월 23일 : 조선일보 속간
  • 1952년 04월 28일 : 장기영(張基榮) 사장 취임
  • 1954년 04월 30일 : 방일영(方一榮) 발행인 겸 편집인 취임
  • 1954년 06월 09일 : 제1기 수습기자 공개채용 시험
  • 1955년 03월 23일 : 조선일보, 한국 언론 사상 첫 지령(紙齡) 1만호 발간
  • 1964년 06월 25일 : 납북인사 송환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
  • 1964년 08월 : 납북인사 송환 100만인 서명운동 전개
  • 1964년 11월 14일 : 방일영 회장, 방우영(方又榮) 대표이사 전무 취임
  • 1968년 10월 20일 : '주간조선' 창간
  • 1970년 02월 02일 : 방우영 사장 취임
  • 1971년 04월 17일 : 정부의 언론탄압에 항의, '언론 자유 선언문' 채택
  • 1979년 02월 27일 : 조선일보 100만부 발행 돌파
  • 1980년 03월 15일 : 조선일보 지령 2만호 발간
  • 1984년 02월 01일 : 조선일보 미주판 창간
  • 1986년 04월 04일 : '월간조선' 창간
  • 1990년 03월 21일 : '스포츠조선' 창간
  • 1992년 03월 21일 : 신문사 최초 전국 동시인쇄망 완성
  • 1993년 03월 10일 : 방우영 회장, 방상훈(方相勳) 사장 취임
  • 1993년 03월 20일 : 국내 언론 최초 옴부즈맨 제도 조입
  • 1993년 04월 28일 : 기사 실명제 최초 실시
  • 1993년 11월 20일 : 방일영문화재단 발족
  • 1994년 06월 03일 : 조선일보, UN환경상(글로벌500) 수상
  • 1998년 04월 24일 : 한국 언론 최초 이메일 실명제 실시
  • 1999년 03월 02일 : 가로쓰기 단행
  • 2003년 03월 26일 : 인터넷뉴스부 신설, 자체 인처넷 속보체제 가동
  • 2003년 03월 26일 : 방우영 명예회장 취임
  • 2003년 10월 08일 : 국내 최초 36면 컬러 동시 인쇄
  • 2005년 03월 03일 :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 첫 개최
  • 2009년 02월 13일 : '글로벌 챌린지 프로그램(GCP)' 도입
  • 2010년 03월 05일 : 창간 90주년 기념 '타임캡슐 봉인식'(창간 100주년 개봉)
  • 2010년 05월 10일 : 온라인 경제매체 '조선경제아이' 창간
  • 2011년 12월 01일 : 종합편성채널 'TV조선' 개국
  • 2013년 03월 05일 : 복합미디어 체험관 '조선일보 뉴지엄' 개관(서울 흑석동)
  • 2015년 05월 26일 :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 설립
  • 2017년 06월 24일 : 조선일보 지령 3만호 발간[1]

주요 인물[편집]

  • 방상훈 : 조선일보의 사장이다. 1948년 2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나 1966년에는 경복고를, 1972년에는 미국에 오하이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오하이오대학교에서 경영학과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는다. 1970년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로 입사해 1971년부터 1972년까지 2년간 조선일보 주미 특파원 자격으로 근무했다. 1983년에 국제 언론위원회 한국위원회 이사로 임명되었고 5년 뒤인 1988년, 조선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이 되었다. 1992년,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이사장과 회장을 겸했고 1993년에 조선일보의 사장의 자리를 이어받아 2019년까지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2019년까지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면서 그에 걸맞은 신중한 경영방침을 유지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일보 창립자인 방응모가 방상훈의 양증조부이며, 방응모가 1950년 납북된 이후 조선일보 사장직에 오른 방일영이 방상훈의 아버지이다. 또, 조선일보 회장직을 지낸 적이 있는 방우영은 방상훈의 삼촌이다. 동생 방용훈은 코리아나호텔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방상훈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 방준오는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고, 차남 방정오는 TV조선의 대표였다.[2]

관계사[편집]

조선방송[편집]

TV조선은 2011년 12월 1일 개국된 종합편성 방송 채널이다. 조선일보의 의지를 그대로 담아 빠르고 쉽고 공정한 언론, 건강하고 유익한 방송을 추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시청자의 공감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한민국 대표 방송을 지향한다.

디지틀조선일보[편집]

1995년 10월, 조선일보의 뉴미디어 계열사로 등장한 디지틀조선일보는 시야 밖에 있었던 CTS/SI 및 온·오프라인 교육(캐나다 문화 어학원/취업교육센터/국제 교육센터), 토플 TPO(ETS TOEFL Practice Online), 시티비전 등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가며 종합 미디어그룹으로서의 비전을 실현했다.

조선비즈[편집]

2010년 5월 10일, 조선일보에서는 고급 경제 경영 뉴스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온라인 경제 매체인 조선비즈를 선보였다. 증권사 HTS, 대형 포털,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 등 각종 뉴스 플랫폼을 통해 고급 경제 콘텐츠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찬찬히 입지를 다져 프리미엄 경제 매체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2018년 1월에는 조선일보와의 협력으로 디지털 편집국으로 거듭나면서 기존의 경제·경영 뉴스 외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온라인과 모바일에 특화 한 고품격 기사를 제공하는 종합 매체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조선[편집]

젊은 층과 스포츠 마니아를 주요 타깃으로 잡았다. 그 결과, 국내 1위의 스포츠신문이 될 수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인 스포츠조선닷컴에서도 기사를 접할 수 있다.

조선뉴스프레스[편집]

2010년 1월, 월간조선사와 주간조선이 하나가 돼 출범한 시사 미디어 기업이다. 특종·심층보도로 언론계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대표 시사월간지인 '월간조건',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통 시사주간지인 '주간조선', 사회 각 분야 트렌드 리더들의 성공 과정을 품격 있게 담아낸 인물 잡지인 'TOP Class', 한국 ABC 인증 유가 판매 1위 여성 종합지인 '여성조선', 한국 최초의 등산 전문지인 '월간산' 등을 발행하고 있다.

CS M&E[편집]

2007년 7월 설립된 CS M&E는 조선일보 교육문화 법인으로 교육문화 전반에 걸친 다양하고 깊이 있는 기사와 콘텐츠를 만든다. 조선일보 교육섹션 맛있는공부, 소년조선일보, 국내 최초 프리미엄 온라인 교육미디어인 조선에듀 등을 제작, 발행하며 전시, 공연, 문화이벤트 등의 문화 사업도 활발히 전개해 나가고 있다. CS M&E는 빠른 변화 속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서 어른, 아이 가릴 것 없이 문화적 소양을 갖춘 인격체로서 삶을 보다 윤택하고 행복하게 사는데 동행하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헬스조선[편집]

2005년 12월 설립된 의료건강 부문의 자회사이다. 조선일보 건강 섹션인 'Health'와 월간 매거진인 '월간헬스조선', 인터넷뉴스(헬스조선닷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또, 의료·생활건강·교양·인문 분야의 다양한 서적 출판으로 병원·제약 홍보마케팅, 힐링여행, 의약품·건강기능식품 도·소매, 유통 등 다양한 헬스케어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다.

조선아이에스[편집]

1997년 설립된 조선아이에스는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직결돼 신속한 매출 신장 효과를 가져오는 전단 광고지를 조선일보에 삽지해 배포하는 국내 최대의 전단 광고 대행사이다. 설립 이래 전국적인 영업망을 구축해 전단 광고는 물론 조선일보 지면 광고, DM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하였고, 조선일보 독자서비스 및 다양한 신문 판촉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방일영문화재단[편집]

방일영문화재단은 조선일보사 회장과 사장을 지낸 방일영, 방우영 형제가 출연한 조선일보 주식을 기금으로 발족됐다. 국가와 사회에 공헌할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에서 우수한 대학생, 탈북 대학생을 선정해 등록금 전액과 생활보조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학생 외에도 언론인과 언론학자를 대상으로 저술, 출판을 지원한다. 방일영문화재단은 국악계와 교육계에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국악의 전승과 보급에 크게 기여한 우수 국악인을 선정해 방일영국악상을 수여하고 전국의 유치원, 초, 중, 고에서 크게 헌신하는 우수 교사를 선정해 올해의 스승상을 수여한다.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편집]

2003년 10월 설립된 비영리 공익 연구재단인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는 미디어 학계와 업계에 도움이 될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미디어와 연관 있는 연구, 저술, 포럼, 세미나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언론 교육 사업 및 언론인을 대상으로 국내외 연수도 지원한다.[1]

사건·사고[편집]

앞선 개요와 같이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신문사로서의 영광을 이어가며 이른바 '꽃 길'만 걸을 줄 알았던 조선일보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은 적지 않은 국민들을 싸늘하게 만들고 조선일보를 등 돌리게 하였다. 민심이 돌아서 버린 것이다.

2019년 7월[편집]

조선일보사 외벽에 띄워진 '폐간하라'[편집]

2019년 7월 12일 저녁, 조선일보사 외벽에는 대형 빔프로젝터로 쏘아 올린 문구들이 차례로 띄워졌다. 조선일보사의 외벽을 무대로 삼아 진행된 것이었다. 같은 시각, 시민들은 외벽에 쓰인 문구들을 규탄 구호로 활용하며 집회를 가졌다. 이 날 조선일보사 외벽에 문구를 띄운 곳은 미투시민행동이었다. 미투시민행동은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여성·시민·노동계 단체 340여 개가 힘을 모아 2018년 3월 출범된 연합이다.[3] 오후 7시부터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서 60명의 시민들과 함께 1차 페미시국광장을 열었고 1시간 20분 정도 지난 오후 8시 20분부터 조선일보사 외벽에는 '폐간하라', '고 장자연 배우에게 사죄하라', '검찰 경찰 모두 공범', '수사 외압 언론 적폐' 등의 여러 문구들이 차례로 비춰줬다. 해당 문구들이 건물 외벽에 비치게 된 것은 시민들이 지난 2019년 5월에 검찰과거사위원회가 故 장자연 사건에서 성폭력 범죄를 배제하고 기소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내놓은 것이 조선일보 사주 일가가 故 장자연 사건과 연루되어 회사 차원에서 수사를 무마한 결과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청와대로부터 공개적 비판을 받다.[편집]

조선일보가 '국채보상, 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라는 국내 기사 제목을 일본어판에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국민의 반일감정에 불을 붙인 한국 청와대'로 바꿔 제공하고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40%,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라는 국내 기사 제목을 일본어판에서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로 바꿔 제공해 국내 여론을 일본 내에 왜곡해 퍼뜨린다며 고민정 現 청와대 대변인은 2019년 7월 17일에 있었던 현안 브리핑에서 공개적으로 조선일보에 비판을 가했다. 조선일보가 일본어판에 내놓은 기사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앞서 소개한 기사 이외에도 '문통 발언 다음날 외교사 사라진 한국'이라는 기사가 日 현지 뉴스랭킹 3위에 랭크돼있으며 '우리가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해 적잖은 일본 국민들에게 잘못된 한국 여론을 알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고 대변인은 "이것이 진정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묻고 싶다."라는 말과 동시에 "한국 기업인들이 어려움에 처한 지금의 상황 속에서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지혜를 모으려고 하는 이때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을 위한 일인지 답해야 할 것"이라며 조선일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일침을 가했다.[4]

가족사(家族史)[편집]

방용훈[편집]

2016년 9월, 코리아나호텔 사장 방용훈의 부인인 이미란 씨가 한강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방용훈의 자택 가사도우미로 일한 A 씨의 인터뷰와 함께 방용훈에 대한 의심과 의혹이 진해지고 있다. A 씨에 따르면 이미란 씨는 자식들에게 도둑년이라 불리는 등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갔고 1층에서 지인들과 파티가 있을 때도 이미란 씨는 통제된 지하실에서 고구마 2개, 달걀 2개로 겨우 허기를 채우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건 파티가 있을 때만 지하실에서 생활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자식들에 의해 지하실에 감금돼 지냈다는 것, 그리고 무차별한 폭행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제 시도가 실패해 살아남을 경우 남편이 어떤 가혹행위를 뒤에서 할지 죽기로 결심한 두려움보다 그게 더 무섭습니다."라고 적혀 있어 평소에 무차별한 폭행을 당한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5] 이외에도 방용훈은 故 장자연 사건과도 얽혀있으며 방용훈이 故 장자연과 만났다는 여러 정황이 드러났으나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에서 벗어난 바 있다.[6]

방정오[편집]

방상훈의 차남인 방정오의 딸이 2018년 10월 해고됐던 운전기사에게 무차별한 폭언을 가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당시 10세에 불과했던 방정오의 딸은 운전기사에게 "내가 오늘은 엄마한테 진짜 얘기를 해야겠어, 얘기해서 아저씨 잘릴 수도 있게 만들 거야", "아저씨는 해고야, 진짜 미쳤나 봐", "진짜 엄마한테 얘기해야 되겠다. 아저씨 진짜 해고될래요?" 등의 인격 모독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 결과 방정오는 딸의 폭언을 책임지고 TV조선의 대표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방정오는 "제 자식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점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를 꾸짖어달라"라는 동시에 "운전기사분께도 마음의 상처를 드린 데 대해 다시 사과드린다"라며 "저는 책임을 통감하여 TV조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라고 공개적인 사과와 사임을 발표하였다.[7] 이외에도 "방정오가 2008년 즈음 故 장자연 씨와 자주 만나고 연락을 했으며 장자연 씨가 자살을 선택하자 방정오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무마했다."라는 진술을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이 확보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며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8] 추가적으로 그의 아버지인 방상훈도 故 장자연 씨와 연관이 되어있으며 피의자 신분이지만 조선일보에서 기자들을 배석한 이른바 '황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9]

각주[편집]

  1. 1.0 1.1 1.2 출처 : 조선일보 공식 홈페이지 - http://www.chosun.com/
  2. 이규연 기자, 〈[Who Is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비즈니스포스트》, 2015-01-25
  3. 김수정 기자, 〈누가 조선일보 사옥에 '폐간하라' 빔을 쏘았나〉, 《노컷뉴스》, 2019-07-14
  4. 이완 기자, 문현숙 선임기자 〈고민정 청 대변인, <조선일보> 일본어판 제목 정면 비판〉, 《한겨레》, 2019-07-17
  5. 세계일보, 〈방용훈妻 이미란씨 죽음의 비밀, 자녀에게 폭언·폭행에 감금까지 당해〉, 《네이버 포스트》, 2019-03-06
  6. 인사이트, 〈故 장자연 사건으로 조명되는 '조선일보 사장' 동생 방용훈의 정체〉, 《네이버 포스트》, 2019-03-16
  7. 김도연 기자, 〈'자녀 폭언 논란' 방정오 TV조선 대표 사퇴〉, 《미디어오늘》, 2018-11-22
  8. 정환봉, 최우리 기자, 〈[단독] 방정오 지인 "방정오, 장자연씨와 자주 통화하고 만났다"〉, 《한겨레》, 2019-04-02
  9. 최우리, 정환봉 기자, 〈[단독] '장자연 사건 피의자' 조선일보 방상훈, 기자 배석 '황제 조사' 받았다〉, 《한겨레》, 2019-04-02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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