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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브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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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위치
칼라브리아주 위치

칼라브리아주(이탈리아어: Calabria)는 이탈리아 남서부에 지중해에 면한 주다. 이탈리아의 장화 모양의 앞굽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 [1]

개요[편집]

칼라브리아주의 면적은 15,080km²이며 인구는 1,947,000명 (2019년)이다. 서쪽으로는 시칠리아, 남쪽으로는 이오니아해에 면하고 북쪽에는 바실리카타주와 접한다. 중심 도시는 카탄차로다.

칼라브리아주의 실라 국립공원유럽에서 공기가 가장 맑은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유명 관광지로는 코센차가 있으며 중세시대의 성, 탑, 교회 등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적을 갖고 있다.

2000여 년의 시간 동안 칼라브리아주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탄생하여 이곳을 '성도의 땅'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주민 또한 가톨릭 신자다. 파올라의 성프란시스는 가장 유명한 성자이자, 수호성인이다.

이곳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있다. 약 2300년 동안 존재했던 유대인들은 칼라브리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돼지・양・염소와 채소・생선이 균형을 이룬 남부 이탈리아 지중해식 요리가 유명하다. 해산물이 풍부해 황새치, 정어리, 대구 등이 사용된다. 지역 특산품으로 카초카발로 치즈, 페코리노 치즈, 피그놀라타 등이 있다. 리소토(risotto, riso)가 가장 유명한 곳으로 대체적으로 해안가는 아드리아해의 해산물 위주, 내륙은 호박이나 아스파라거스, 개구리 다리를 써서 서로 풍미가 조금 다르다. 다만 지역 식습관이 육류 위주로 바뀌어 가면서 소시지 요리나 마늘 살라미 등도 즐겨 먹는다. 다른 전통 요리로는 소금에 절여서 만드는 생선 요리인 바칼라(Baccala)가 있다. 크로토네와 코센차에서 DOC(와인 등급 및 원산지 증명) 와인이 주로 생산된다.

파스타에 콩과 식물을 많이 넣어서 먹으며 대표적으로 Risi e bisi나 파스타에 파지올리가 있다. 베네토의 요리는 이국적인 향신료나 소스를 많이 쓰는 편이며 청어나 안초비 같은 생선을 말려서 먹는다.

고대 이 지역을 '술의 나라'라는 뜻의 '에노트리아'라고 불렀을 정도로 와인이 유명하다. 크로토네와 코센차에서 DOC 와인이 주로 생산된다. 중세시대의 성, 탑, 교회 등 역사-문화 유적이 풍부하다.

현재는 이탈리아어가 통용되지만 과거 그리스인이 주민의 대다수이던 역사를 반영하듯 그리스어 단어 역시 많이 남아있다.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훑어보면 이 지역이 자주 언급된다.[2][3]

자연환경[편집]

칼라브리아주는 이탈리아 남서부 끝에 있는 광역행정구역이다.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에서 앞코 부분에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 248km, 최대 폭 110km에 달한다. 영토의 48%는 산악 지대, 49%는 구릉지, 그리고 9%의 평야로 구성되어있다.

서쪽으로는 티레니아해, 동쪽으로는 이오니아해와 접하고 있다. 시칠리아 카포 펠로로와 칼라브리아 푼타 페조 사이, 육지의 가장 좁은 지점은 약 3.2km에 불과하며 메시나 해협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

칼라브리아주에는 폴리노, 라실라, 아스프로몬테를 포함한 3개의 산맥이 있다. 폴리노산맥은 매우 험준하며 다른 주와 경계선을 이룬다. 라실라 산맥은 해발 1,200m에 이르는 광활한 산악고원으로 주 중심부를 따라 약 2,000㎢에 걸쳐 펼쳐져있다. 최고봉은 해발 1,928m인 보테 도나토이며, 최대 40m에 이르는 큰 나무들이 즐비하다. 실라 국립공원은 유럽에서 공기가 가장 맑은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스프로몬테 산맥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탈리아 최남단에 위치한다.

이곳 기후는 산과 바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에는 평균 8°C, 여름에는 평균 30°C에 이른다. 티레니아해의 영향을 받아 서쪽에는 비가 많이 온다.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이 동해안을 건조시켜 동해안은 서해안에 비해 훨씬 따뜻하고 건조하다.

역사[편집]

마그나 그라이키아의 일부로서 고대부터 그리스인들이 대거 정착하였고 지금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신전 유적이 그 흔적이다. 시칠리아의 아가토클레스와 에피로스의 피로스 대왕의 침공을 받기도 하였는데, 결국은 로마의 지배 하에 놓였다.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이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에게 압승하자 지역 주민들 대다수가 한니발 편을 들었고, 전쟁 말엽 한니발이 점점 불리해진 후에는 그의 본거지 역할을 수행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땅을 떠나기 직전 자신의 업적을 신전에 새긴 것도 칼라브리아의 크로톤에서였으며, 최후의 자마 전투에서 전멸한 한니발의 정예 상당수가 이 지역 원주민인 브루티 인들이었을 정도. 전쟁 이후 다시 로마의 지배 아래 놓였다. 서기 410년에는 로마를 약탈하고 북아프리카 원정을 준비하던 서고트족의 알라리크가 말라리아에 걸려 코센티아 (코센차)에서 사망하기도 하였다. 한편, 동고트 왕국 시대의 로마인 관료 카시오도루스도 이 지역 출신이다.

칼라브리아는 6세기 중반부터 1070년경까지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아 정교회의 흔적도 남아있다. 동로마 제국의 나머지 부분과 달리 칼라브리아는 별다른 침공이나 내전을 겪지 않았다. 9세기-10세기에 아랍인들이 가끔 약탈한 정도가 전부일 뿐이었다. (그에 반하여 타란토 만 건너의 아풀리아에는 바리 토후국이 세워지기도 하였다)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며 칼라브리아에는 스틸로를 중삼으로 비잔티움 성당과 수도원이 세워졌다.

11세기 말엽, 칼라브리아는 아풀리아, 시라쿠사 일대와 함께 시칠리아 왕국의 지배에 가장 완강히 저항한 지역 중 하나였다. 비록 결국은 진압되고 정교회 성당들은 가톨릭 성당이 되었지만, 칼라브리아는 시칠리아와 함께 북유럽과 레반트 간의 중계 교통로가 되며 십자군 전쟁기에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15세기 이후 스페인의 아라곤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레고리력을 만든 과학자 루이지가 이곳 출신으로 고장을 빛냈다. 이후 나폴리 왕국, 양시칠리아 왕국의 영토로 있다가 1861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이 앞바다에서 칼라브리아 해전이 일어났다. 이 전투는 전함 간 최장거리 명중탄을 낸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1970년 7월 주도(州都)를 카탄차로로 하는 결정이 내려지자 레조칼라브리아에서는 반란(Moti di Reggio)이 일어나 7개월이나 계속되다 진압되었다.

산업 및 문화[편집]

칼라브리아주의 경제는 서비스업 29%, 부동산 21%, 무역・관광・교통통신 20%, 건설 6%, 농업 4%로 구성되어 있다. 산업은 식품과 섬유업, 석유화학 산업 등이 발달했다.

중세시대의 성, 탑, 교회 등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적을 갖고 있다. 몬테파오네, 디아만테, 카리아티, 시데노, 트로페아 등 해변 휴양지들이 많고, 자연보호 구역과 스키장 등 여름과 겨울 휴가철에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칼라브리아주는 이탈리아 내에서 시칠리아 다음으로 유기농 농가가 많다. 트로페아의 붉은 파는 이 지역의 주요 특산품 중 하나로 티레니아 해안에서 재배된다. 올리브유 생산량이 전국에서 둘째로 많고 카롤레아, 오글리아롤라, 사라세나 등 다양한 올리브 품종을 수확한다. 베르가모 오렌지는 18세기부터 레지오 인근 해안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다. 칼라브리아산 베르가모 향유(작은 오렌지 껍질에서 짠 기름)는 세계최고 품질이다. 또 포르시니 버섯의 최대 생산지이기도 하다.

교통[편집]

칼라브리아주의 항구는 레지오와 지오이아 타우로에 있다. 레지오 항구는 길이가 1,530m에 이르며, 5개의 하역 부두가 있고 지오이아 타우로 항은 7개의 하역부두가 있다. 이 항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유럽에서 7번째로 크다. 레지오과 라미지아 테르메 시립지역에 2개의 공항이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칼라브리아주〉, 《위키백과》
  2. 유럽지명사전 :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 《네이버 지식백과》
  3. 칼라브리아〉,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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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서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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