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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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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
람보르기니(Lamborghini)

람보르기니 미우라(Lamborghini Miura)는 람보르기니(Lamborghini)가 1967년 제작한 최고속도 280km/h의 고성능 스포츠카다. 최초의 양산형 V12 미드십 차량이자 최초로 슈퍼카라는 명칭을 얻은 자동차이다. 또한 람보르기니가 공식적으로 분류한 람보르기니 최초의 기함이다. 미우라라는 이름은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가 직접 붙인 것으로 걸출한 투우소들를 길러낸 돈 안토니오 미우라라는 사육사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1] 그 이전까지는 단순히 P400으로만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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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편집]

1966년 출시된 미우라는 슈퍼카의 세계에서 미드십 구조를 최초로 유행시킨 기념비적인 모델이다.[2] 미우라가 출시된 당시 페라리(Ferrari)는 디자인으로 보나, 퍼포먼스로 보나 미우라에 비해서 한참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우라는 또한 최초로 쿼드-캠샤프트 V12 엔진을 장착한 슈퍼카였다.[3] 미우라는 196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차체가 땅에 붙어있는 듯한 아주 낮은 디자인은 마치 우주에서 온듯한 느낌이었으며, 미래에서 온 슈퍼카라는 아이덴티티를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차체 양옆에 위치한 거대한 사이드실은 새로운 섀시 디자인의 상징이었으며, 큰 사이드실과 센터터널이 사용된 스틸 모노코크 방식을 채택했다. 엔진이 운전자 뒤에 위치한 미드십 구조였으며, 엔진룸은 스틸 프레임으로 감쌌다. 엔진은 알로이블락과 헤드로 구성되었으며, 연소실은 미국 엔진에서 영감을 얻은 고전적인 반구형이었고 실린더밸브는 2개에 불과했으나 4개의 캠샤프트가 사용되었다. 이후에 출력을 385마력으로 올린 SV버전이 1971년 출시되었는데, 오일쇼크로 인해 2년 만에 단종되었다.[4]

출시배경[편집]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는 2차대전 당시 정비공으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온 페루치오는 트랙터를 생산하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 트랙토리체라는 회사를 만든다. 람보르기니의 모체가 된 기업이다. 트랙터 사업은 이내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쥘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페루치오는 사업에서 성공하자 여러 자동차를 사 모았다. 이중, 60년대 초 인기 스포츠카였던 페라리의 250 GT 모델도 있었다.[5] 페라리(Ferrari)는 당시 포뮬러원(F1) 경주대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나, 양산차에서는 클러치 결함이라는 고질병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트랙터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으로 이탈리아에서 명성을 쌓아가던 페루치오는 고객이자 엔지니어로서 자문을 전달해주기 위해 페라리의 창업자인 엔초 페라리(Enzo Ferrari)를 찾았다. 하지만 호의를 가지고 방문한 페루치오에게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와 수모였다. 레이스 대회에서 입지를 굳혀가며 자신감에 넘쳐있던 엔초 페라리는 페루치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6]

모욕을 당한 페루치오는 최고의 스포츠카를 직접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1963년 현재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볼로냐 인근에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장을 설립했다. 동시에 최정예 기술자들을 끌어 모았으며, 페루치오가 이들에게 주입한 절대 원칙은 페라리를 능가하는 자동차였다. 페루치오의 꿈은 1년 만에 첫 성과물을 낳았다. 토리노 모터쇼에서 350GTV를 내놓은 것이다. 후속 모델인 400GT까지 잇따라 성공시키며 트랙터 업체가 최고의 스포츠카를 제작하려는 것은 무모한 시도라고 비웃던 주위의 시선을 한낱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7]

자신감을 얻은 람보르기니는 성능과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페라리를 앞서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데, 바로 미우라의 출시다. 미우라는 페루치오가 직접 명명한 것으로, 투우 중 최고 종자라는 뜻이다. 미우라라는 정식 명칭이 붙기 전의 차 이름은 P400이었다. P는 Posteriore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뒷쪽을 뜻한다. 엔진을 뒤에 놨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애초 P400은 페루치오의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페루치오는 고성능 스포츠카보다는 좀더 대중성 높은 GT(Grand Touring·그랜드 투어링)카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나 람보르기니의 젊은 엔지니어들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제시했고, 페루치오 역시 람보르기니의 이미지와 광고 효과를 고려해 프로젝트 추진을 승낙하게 된다.[8]

P400(프로토타입) 제작의 선봉에는 람보르기니의 쟝 파울로 달라라(Gian Paolo Dallara)와 파울로 스탄자니(Paolo Stanzani), 밥 월레이스(Bob Wallace) 등 엔지니어들이 나섰다. 이들은 레이싱 자동차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공공도로용 스포츠카를 원했다. 즉, 트랙에서도 경쟁차를 이길 수 있고 공공 도로에서도 몰고 다닐 수 있는 마니아들을 위한 자동차를 상상한 것이다. 엔진이 가로로 중앙에 배치된 P400의 경사 진 차대는 1965년 토리노 모터쇼에서 공개됐다. 호평 속에 이듬해 P400이라는 이름 대신 프로토타입에 바디를 완성시킨 미우라 P400이 등장했다. 미드십 엔진으로 기동성을 높인, 공공도로 주행이 가능한 스포츠카가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람보르기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투우 뱃지도 이때부터 본격 사용하게 됐다.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된 미우라 P400은 4.0ℓ V12 엔진에 최고속도 280㎞/h, 최대출력 350마력의 고성능을 자랑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6.2초를 찍었다.[9]

람보르기니는 미우라를 내놓으면서 이전까지 없었던 영역인 슈퍼카라는 영역을 개척했다. 그리고 그동안 GT스포츠카를 제작하고 있었던 페라리와의 성능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며, 마침내 페라리보다 더 빠른 차를 만든다는 창업의 목표를 성취했다. 그리고 미우라는 오늘날까지 투우 소의 이름을 빌려 쓰고, 리어미드십 V12 엔진을 장착하는 등, 람보르기니 플래그십 슈퍼카의 전통을 세운 모델이 된다. 지금까지도 미우라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탁월한 엔진 성능이다.[10] 미우라는 배기량 4.0리터와 60도의 뱅크각을 갖는 V12 엔진은 P400, P400S, P400SV 모델에서 각각 최대 출력 350마력, 370마력, 385마력을 내는 4개의 40 IDL 3L 웨버 컨뷰레이터를 탑재했다. 이러한 성능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양산차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기에 충분했다. 미우라는 출시 직후부터 영화 감독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가 되었다.[11] 미우라는 총 43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종종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렇게 람보르기니는 성능으로 페라리를 이긴 미우라를 통해,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슈퍼카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1980~1990년대 수많은 스포츠카 제조사들이 사라지고 있었던 가운데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12]

생산역사[편집]

P400[편집]

미우라 P400

미우라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전에는 P400이라고 불렀다. P는 Posteriore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이탈리아어로 뒷쪽을 뜻한다. 엔진을 뒤에 놨다는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400GT에 사용했던 4.0L 람보르기니 V12 엔진이 장착되어 있는데, 가로로 배치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출력은 260kW이었다. P400은 1966년과 1969년, 3년 동안 총 275대가 생산됐다. 275대 중에서 96대는 나중에 SV(SuperVeloce, 슈퍼벨로체)로 만들어졌는데, SV로 만들어진 96대의 경우 일반적인 다른 차들처럼 엔진과 기어박스 사이에 주유구가 설치되어 있다. 차동장치가 제한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엔진과 기어박스에 적절한 오일을 넣기 위함이었는데, 엔진과 기어박스에 기름칠이 필요할 경우 신호를 알려주는 장비가 있었고 이 장비가 미니(Mini)에 사용되고 있던 장비였다. 람보르기니는 프레임도어강철로, 차체의 앞쪽과 뒷쪽 겉표면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었다고 밝혔으나, 후에 람보르기니에서 발표한 것과 다르게, 125대의 미우라가 0.9 밀리미터 두께의 강철로 제작되어 차량이 갭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13]

P400S[편집]

미우라 P400S

P400S 미우라 외에 미우라 S라는 이름이 있다. 미우라의 원래 섀시가 공개된 지 3년이 지난 1968년 11월 토리노 모터쇼에서 생산품이 첫 소개됐다. 파워윈도우가 새로 추가됐고, 외부 창문전조등 주위에 빛나는 크롬 색상이 곁들어졌다. 인라인 콘솔은 이전과 다른 높은 위치에 설치됐고 라커 스위치, 엔진 흡입구 등 많은 부분이 변했으며 두께가 2 밀리미터 더 두꺼워짐과 동시에 다른 방식의 캠축을 채택하는 등 많은 부분이 변경됐다. 짐공간이 조금이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에 트렁크패널은 금이 가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지는 등 미우라 P400과 많이 다른 차였다. 20마력의 출력이 더해져 엔진이 더 좋아졌다고 하며, 적게나마 조금 더 운전자에게 실용적인 수정사항들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글로브박스의 뚜껑에 잠금장치가 달렸고, 실내에 있는 담배 라이터가 뒤집혀서 설치됐으며, 앞창문의 와이퍼 스위치 설치, 차의 앞쪽과 뒷쪽에 뚜껑을 열 수 있는 손잡이 한 개가 부착됐다. 이 외에도 파워윈도우에어컨을 옵션(800달러)으로 제공했다. P400S 미우라는 1968년과 1971년 3월 사이에 총 338대가 제작됐다.[13]

P400SV[편집]

미우라 P400SV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미우라 P400SV이다. 미우라 SV라고도 부르는데, SV는 슈퍼벨로체(SuperVeloce)의 줄임말로, 영어로 표현하면 엄청 빠르다(Super-Fast)는 뜻이다. 미우라 SV는 다른 캠 타이밍과 조금 더 진보적이게 바뀐 카뷰레터가 부착되어 있다. 엔진의 출력은 15 마력이 늘어나 총 283kW이다. P400의 차체를 그대로 물려받은 마지막 96대의 P400이 P400SV로 만들어졌는데, 차동장치가 제한 범위에서 벗어날 경우를 대비해 기름통이 반으로 갈라져 있다. 기존 P400은 엔진과 기어박스 사이에 윤활 주유구가 있었지만, P400SV는 윤활 계통이 완전히 다른 곳에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때문에 기어박스와 엔진에 적절한 타입의 오일을 꾸준히 칠해줘야 했다.

그 값은 상당했지만 기어박스엔진은 장거리 운행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내구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엔진과 기어박스 쪽에 금속을 다시 깎아냄으로써 이런 내구성 문제를 상당히 많이 개선시켰다. 새로운 피렐리 타이어를 착용한 9인치 넓어진 새로운 뒷바퀴를 수용하기 위한 충분한 공간이 필요해 뒷쪽 펜더도 넓어졌으며, 후미등도 약간 변형됐다. 속눈썹이 사라진 전조등도 이전 모델 P400과 다르게 P400SV를 성공시킨 이유 중에 하나였다. 여기서 말하는 속눈썹은, 다른 미우라들은 모두 다 전조등과 차의 몸체 사이 틈에 검은색 커버가 있다. 이것을 속눈썹이라고 표현하며, 전조등이 앞으로 올라올 때 속눈썹은 전조등의 외부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P400SV에게는 속눈썹가 없었다.[13]

미우라 P400 조타

P400 조타[편집]

P400 조타는 피아(FIA) 레이싱 규정-J에 따르는 자동차를 만들려고 테스트뮬 전용으로 1970년에 만든 자동차이다. 이 차량은 오직 피아 레이싱 규정-J에 부합한 차를 만들기 위해 테스트용으로 딱 한 대만 만들었다. 후에 개인 구매자가 이 테스트용 자동차를 굉장히 비싼 값에 구매했다. 1971년 4월, 이탈리아 브레시아 인근의 도시 외곽순환도로에서 큰 교통사고가 발생했으며, 현장에서 P400 조타는 불에 타버려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 브레시아 인근의 도시 외곽순환도로는 아직 개통되지 않은 도로였다.[13]

P400 SV/J[편집]

미우라 P400 SV/J

P400 SV/J는 P400 조타의 출시 소식을 들은 고객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이다. 람보르기니는 상당히 고가의 차량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P400 조타를 만든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P400 SV/J는 P400SV를 대체하는 업그레이드 버전이 됐다. SV/J의 뜻은 슈퍼벨로체/조타(SuperVeloce/Jota)의 약자이다. 출력이 높아진 엔진과 서스펜션 부품, 외관과 실내 등이 더 좋게 바뀌었다. 다섯 대만이 SV를 기반으로 공장에서 실제로 만들어졌으며 이중 유일하게 한 대만이 조타에 채택된 건식 윤활 시스템을 구비했다.

이중 차대번호 #4934의 미우라 SV/J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자동차이다. 이란의 마지막 샤 모함마드 레자 팔라비(Mohammad Reza Pahlavi)가 소유했다. 모함마드는 SV/J를 샤 백화점에 전시했었고 그가 소유한 다른 미우라 SV는 테헤란 왕궁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후 모함마드 레자 팔라비가 이란 혁명으로 망명길에 올랐을 때 이란 정부가 이 자동차를 소유했다. 그 후 1995년, 두바이에 SV/J가 팔려나갔다. 그러다가 1997년, 브룩스 옥션을 통해 미국의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49만 달러에 낙찰됐다. 당시까지 차대번호 #4934의 미우라 SV/J는 경매 역사상 가장 비싼 자동차였다. 이후 2002년, 니콜라스 케이지는 미우라 SV/J를 판매했다. 그 후, #4934 미우라 SV/J의 행방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섯 대 외에 한 대를 더 추가해 총 여섯 대의 SV/J가 1983년부터 1987년까지 미우라 P400S 섀시를 기반으로 더 만들어졌다. 이 중에 한 대는, 람보르기니의 소유주였던 밈란 브라더스(Mimran Brothers)가 진 클라우드 밈란(Jean Claude Mimran)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미우라가 단종되고 12년이 넘게 흐른 뒤에 또 만든 것이었다. 후에 미우라는 SV/J 성능으로 향상됐다. 물론 미우라를 생산하던 공장이 SV/J를 생산하던 실제 공장처럼 모방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후 다양한 자동차 정비소가 스위스와 일본, 미국에 설치됐다.[13]

로드스터[편집]

미우라 로드스터

미우라 로드스터는 유일하게 딱 한 대만 제작됐다. 실제로는 로드스터보다 타르가 모델에 가깝지만 지붕을 완전히 뗄 수 있는 기능은 없다. 베르토네가 전시를 목적으로 P400을 기반으로 딱 한 대를 제작해서 1968년, 브뤼셀 오토쇼에 출품했다. 이후 몇몇 오토쇼에서 자주 공개되다가 국제 납·아연 연구 기구(International Lead Zinc Research Organization)가 미우라 로드스터를 구매했으며, 아연 합금 제조 기술을 통해 전시용 자동차로 개조돼서 공개행사장에 출품될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국제 납·아연 연구 기구가 구매해서 자신들의 합금 제조 기술로 개조한 미우라 로드스터의 이름은 ZN75이다. 베르토네가 만든 미우라 로드스터는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이 외에 더 만들어진 미우라 로드스터의 경우 지붕이 완전히 제거됐다. 그리고 2006년, 뉴욕의 부동산 사업가 아담 고든(Adam Gordon)이 ZN75를 구매했다. 고든은 샌 디에고에 바빌프 모터카(Bobilff Motorcars)를 소유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에서 ZN75를 베르토네가 만든 미우라 로드스터로 되돌릴 것이라 밝혔다. 그리고 2008년 8월, 페블 비치 콩코스 엘레강스(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에서 고든이 다시 만든 미우라 로드스터가 공개됐다.[13]

P400 SVJ 스파이더[편집]

미우라 P400 SVJ 스파이더

P400 SVJ 스파이더 역시 딱 한 대의 견본품이 만들어져 1981년 제네바 모터쇼에 실제로 전시됐다. 공장 경영권을 인수하자마자 CEO 자리에 오른 패트릭 밈란(Patrick Mimran)이 지휘하여 만들어진 모델이었다.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현재의 람보르기니가 사용하는 노란색이 칠해진 미우라 S가 공개됐다. 이후 스위스의 람보르기니 수입업체와 람보모터 AG가 람보르기니의 공장에서 제공받은 SV/J의 부품으로 1980년에 스파이더를 완벽하게 복원해냈다. 미우라 SV/J 스파이더는 펄 화이트로 칠해졌으며 1981년 공개됐다. 미우라 SV/J 스파이더는 조금 특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모델들과 다르게 커다란 스포일러가 부착됐으며 기존의 미우라보다 훨씬 넓은 광폭 휠을 장착하고 있었다.

이후 미우라 SV/J 스파이더는 몇몇 부분이 수정되며 진 위키(Jean Wicki)의 소유가 됐다. 진 위키는 봅슬레이 선수로, 1972년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며 스위스에서 가장 유명한 람보르기니 수집가이다. 그는 뒷쪽에 거대한 스포일러를 제거했으며, 전면부에 얇은 프론트 스포일러도 제거하였다. 이후 미우라 SV/J 스파이더의 생김새는 베를리네타 SV/J에 가까워졌고, 진 위키는 은색으로 다시 도색했다. 그 후, 람보르기니 전문 수집가가 프랑스에 있는 자동차 경주 트랙에서 이 자동차를 구매하여, 파리에서 동업자와 함께 차체 등을 복원해냈다. 그의 수집품목이었으나 결국, 파리의 한 자동차 수집가에게 팔려나갔다. 팔려나갈 당시 SV/J 스파이더는 전통적인 미우라의 색상인 라임-그린(lime-green) 색상이었다. 한편 개인이 수정한 다른 모델도 있는데, 딱 두 대가 존재하며 이들은 실제로 윗 뚜껑이 전혀 없는 미우라이다. 공식적으로 국제 모터쇼에서 등장했다.[13]

각주[편집]

  1. 자동차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② 람보르기니 편 : 자동차에 깃든 황소의 기운〉, 《폭스바겐그룹코리아》, 2023-09-20
  2. 람보르기니 미우라〉, 《나무위키》
  3. 람보르기니 서울, 〈미우라와 역사적인 엔지니어〉, 《네이버 블로그》, 2020-10-26
  4. 람보르기니 미우라 ( Lamborghini Miura )〉, 《네이버 지식백과 - 슈퍼카》
  5. 김도환, 〈람보르기니의 첫 시작〉, 《네이버 블로그》, 2012-11-09
  6. 리버랑도벨, 〈모든 슈퍼카의 시금석 / 미우라〉, 《네이버 블로그》, 2011-11-19
  7. 람보르기니 미우라 - 슈퍼카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차〉, 《네이버캐스트》
  8. car racing, 〈(클래식카) 6. 람보르기니의 야심작 ‘미우라’〉, 《개인블로그》, 2011-11-20
  9. 안광호 기자, 〈6. 람보르기니의 야심작 ‘미우라’〉, 《경항신문》, 2011-11-21
  10. 김정희 기자, 〈(카스토) V12 미드십 엔진이 탑재된 '람보르기니 미우라'〉, 《글로벌이코노믹》, 2022-06-19
  11. 세계 최초의 V12 미드십 엔진이 탑재된 람보르기니 양산차, 미우라 히스토리〉, 《라이드매거진》, 2022-06-03
  12. 모토야, 〈슈퍼카의 개척자, 람보르기니 미우라 이야기〉, 《모토야》, 2022-08-03
  13. 13.0 13.1 13.2 13.3 13.4 13.5 13.6 람보르기니 미우라〉,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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