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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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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과
마나과 위치

마나과(스페인어: Managua)는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며 인구는 약 106만 명이고 도시권 인구는 140만 명이다. 중앙아메리카에서 과테말라시티, 테구시갈파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지만 대도시 도시권으로 따지면 좀 많이 밀리는 편이다. 1852년에 수도로 선포되었다.[1]

개요[편집]

마나과는 니카라과의 수도이자 미나과주의 주도이며 지리적으로는 니카라과 서부 마나과호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바다와는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는다. 마나과는 오래전부터 원주민의 거주지였다. 마나과는 1819년에 설립되었다.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레온(León)과 그라나다(Granada)가 중심을 이루었으나, 독립 이후 두 경쟁 도시의 당파들의 내부적인 갈등으로 1852년 마나과가 영구적인 수도로 선택되었다. 마나과의 대부분은 지진과 화재로 파괴된 1931년 이후에 재건되었다. 1972년에 또 한 번의 재앙적인 지진이 발생한 후, 상업구역은 이전 도심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10㎞ 떨어진 곳에 재건되었다. 1978~1979년에는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Anastasio Somoza Debayle) 정부에 대한 총파업이 벌어졌고 특히 산디니스타 반군(Sandinista)이 장악한 빈민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니카라과의 가장 큰 도시로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가공육, 가구, 금속, 직물을 포함한 다양한 소규모 제조업 공장들과 정유공장이 있다. 도시는 태평양 항구 코린토, 레온, 그라나다와 철도고속도로로 연결된다. 인터 아메리카 하이웨이와 국제공항을 통해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 및 북아메리카 도시로 연결된다. 농목축업지대의 중심지로 커피, 면화, 사탕수수, 육우 등의 집산과 거래가 활발하고 식품가공, 섬유, 시멘트, 정유 등의 소비재 공업도 이루어진다. 1952년에 마나과 대학교가 니카라과 국립대학교에 통합며되었으며, 그 외에도 중앙아메리카 대학교, 니카라과 폴리테크니컬 대학교, 국립 공학 대학교, 아메리칸 대학교, 니카라과 레뎀토리스 가톨릭 대학교가 있다. 유명한 장소로는 니카라과의 유명한 시인 루벤 다리오의 기념비가 있는 다리오 공원, 국립 궁전, 20세기 대성당, 카를로스 폰세카 기념관(Carlos Fonseca), 민주주의 탑 등이 있다. 마나과 시 수호성인의 이름을 딴 ‘산토도밍고데구스만’ 축제가 유명하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마나과는 마나과호의 남쪽 해안에 위치해 있다. 한때 마나과 풍경의 하이라이트였던 호수는 1927년부터 화학 물질과 폐수의 투기로 오염되었다. 2009년 이래로 독일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여 호수 오염을 제거하기 위힌 하수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마나과의 도시 지역은 마나과호의 남쪽 해안에서 남쪽으로 약 544㎢에 걸쳐 있다. 호숫가는 해발 55m 고도에 있으며, 도시는 남쪽 마나과산맥을 향하면서 점점 더 높아진다. 지질학적으로 마나과는 단층선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지진학자들은 마나과가 매 50년 혹은 보다 빈번하게 심각한 지진을 경험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마나과는 도시 경계 내에 있는 네 개의 작은 분화구 호수나 석호를 특징으로 한다. 가장 중심에는 티스카파 라군(Tiscapa Lagoon) 자연보호구역이 있다.

마나과는 열대 기후, 다양한 지형, 풍부한 비옥한 토양, 풍부한 비와 수자원으로 인해 매우 다양한 식물군이 있다. 칠라마테(chilamates), 세이보(ceibos), 포초테(pochotes), 헤니사로스(genízaros), 티구일로테(tigüilotes), 왕실의 야자나무(royal palms), 피뉴엘라(piñuelas), 마드로뇨스(madroños), 니카라과의 국목 등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5월에서 11월 기간 동안, 마나과는 도시의 외관을 지배하는 많은 야자수, 덤불, 그리고 다른 식물과 나무들로 무성해진다.

마나과는 평균 기온이 28~32℃인 열대기후이다. 기온은 밤에 22.2°C에서 낮에는 30°C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마나과의 계절은 건기와 우기로 구분되는데, 우기는 5월 중순에서 11월 중순 사이인 반면, 건기는 11월 중순에서 5월 중순 또는 말 사이이다.[3]

역사[편집]

니카라과에는 기원전 12,000년 전부터 고대 아메리카인들이 살고 있었다. 마나과 호수에서는 2,100년된 아카우알린카(Acahualinca)의 고대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파테라섬(Zapatera)에서는 도자기와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 오메테페섬(Ometepe)에서는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식민시대 이전의 어촌마을이었던 마나과는 1819년에 설립되면서 마나과(Leal Villa de Santiago de Managua)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독립 이후, 스페인 식민지 기간 동안 중심을 이루었던 레온과 그라나다의 경쟁 도시들 가운데에서 논리적으로 타협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1852년에 공식적으로 이 나라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1852년과 1930년 사이에 마나과는 광범위한 도시화를 겪으면서 국가의 정치, 경제의 기반으로 성장했다. 도시는 여러 차례 자연재해로 인해 파괴되었는데, 1876년과 1885년에는 대홍수, 1931년에는 대지진, 1936년에는 대화재를 겪었다. 소모사 가르시아와 그의 가족(1936-1979)의 통치 하에 도시는 재건되었고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부 건물들이 세워졌고, 산업이 발달했으며 대학들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1972년 12월 23일 대지진의 발생으로 도심의 90%가 파괴되었고 19,12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하는 등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기반시설이 심각하게 손상되었으며, 주택, 정부 건물, 그리고 도로 전체가 파괴되었다. 수많은 이재민들이 발생했다.당시 모든 자원은 재난 구호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했다. 게다가 구호 자금의 일부를 할당한 소모사 정권의 부패로 말미암아 재건은 더욱 어려워졌다. 1979년 니카라과혁명으로 소모사 정권이 전복되고 10년간 지속된 1980년대 반혁명망명부대 콘트라와의 전쟁은 도시 경제를 더욱 황폐화시켰다. 거기에 1998년 허리케인 미치(Mitch)를 포함한 일련의 자연재해가 경제 회복을 더디게 만들었다.

1990년 국민야당연합이 집권하면서 마나과 재건이 본격화되었다. 새로운 주택 프로젝트와 학교가 건설되고, 공항이 확장되었으며, 거리 정비와 함께 새로운 건물들이 지어졌다. 2006년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이 다시 집권한 후 문맹 퇴치, 보건 및 재건 프로그램이 확대되었는데, 새로운 정부는 정부 건물, 갤러리, 박물관, 아파트 건물, 광장, 산책로, 기념물, 마나과 호수의 보트 투어 정비 등을 통해 과거의 활력을 회복시켜 나가고자 했다. 대지진 당시 이재민들의 피난 캠프로 사용되었던 도시 외곽지역에는 주거용 및 상업용 건물이 들어섰다.[4]

교통[편집]

마나과는 니카라과에서 가장 입지가 좋은 도시 중 하나다. 니카라과의 모든 주요 도로는 마나과로 연결되며, 대중교통 연결도 좋은 편이다. 마나과로 이어지는 4개의 주요 고속도로가 있는데,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는 북쪽에서 도시로 진입하여 마나과와 니카라과의 북부 및 중부 지역을 연결하기 때문에 흔히 ‘북부 고속도로’라고 불린다. 팬아메리칸 고속도로의 남부 부분인 남부 고속도로는 마나과를 카라조, 리바스 등의 남부 지역과 연결한다. 카레테라 아 마사야(Carretera A Masaya)는 마나과를 마사야 및 그라나다와 연결하며 카레테라 아 레온(Carretera A León)은 마나과와 레온을 연결한다. 고속도로 모두 교통체증이 거의 없는 등 상태가 양호하고, 인프라가 잘 유지되고 있다.

아우구스토 C. 산디노 국제공항은 니카라과에서 가장 크고 유일한 국제공항으로, 최근 스페인이 부분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면서 보수 공사를 진행했다. 이 공항은 엘살바도르 항공사인 타카(TACA) 항공사가 인수한 니카라과의 아비아시온 항공사의 허브 역할을 담당한다. 타카 지역 회원인 라 코스테냐는 블루필즈, 콘 아일랜드, 산 카를로스 등의 지역 목적지로 가는 항공편을 운영하고 있다.

마나과에는 36개의 버스 노선이 있으며, 도시 교통 규제 기관(IRTRAMMA)에 의해 규제되고 협동조합과 민간기업에 의해 개별적으로 운영된다. 차모로 정부 하에서 철도 시스템은 폐쇄되어 마나과에서 운행되는 철도는 없다.[5]

관광지[편집]

마나과의 주요 공공장소로는 국립문화궁전(National Palace of Culture), 루벤 다리오 국립극장(Rubén Darío National Theatre), 레볼루시온 광장(Plaza de la Revolución), 아카우알린카 박물관(Museum of Acahualinca) 등이 있다. 국립문화궁전은 1972년 지진의 피해를 입지 않은 마나과의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1935년에 후안 바우티스타 사카사 대통령(Juan Bautista Sacasa)에 의해 의뢰되어 세인트 제임스 대성당(St. James Cathedral.)을 지은 건축가 파블로 담바흐(Pablo Dambach)에 의해 지어졌다.

루벤 다리오 국립극장은 니카라과에서 가장 중요한 극장이며 중앙 아메리카에서 가장 현대적인 극장 중 하나이다. 국립 극장은 마나과의 90%를 파괴한 1972년 지진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건물 중 하나이다. 레볼루시온 광장((Plaza de la Revolución)은 공화국 광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나과 호숫가에 위치한 역사적 중심지이다. 혁명 광장 내에는 많은 역사적인 기념물들이 있으며, 일부는 국가적인 영웅들과 시인들에게 헌정되었다. 교육자, 자선가, 작가, 사회 운동가이자 아메리카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었던 호세파 톨레도 데 아궤리 교수(Josefa Toledo de Aguerri)의 흉상도 있다.

중앙 공원 건너편 북쪽에는 니카라과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스페인어권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인 중 한 명에게 헌정된 루벤 다리오 공원과 기념비가 있다. 과테말라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Miguel Ángel Asturias)에게 헌정된 공원도 있다. 또한 2,100년 전에 만들어진 고대 미국의 화석화된 발자국인 아카우알린카의 고대 발자국이 전시되어있는 아카우아린카(Museo Sitio Huellas de Acahualinca)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는 발자국 화석 이외에도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인 매머드 발자국, 콜럼버스 이전의 도구, 레온 비에호(León Viejo)의 두개골, 그리고 다른 고고학적 유물 등이 전시되어있다.

지도[편집]

카리브해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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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마나과〉, 《위키백과》
  2. 마나과(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마나과의 자연환경〉, 《네이버 지식백과》
  4. 매니과〉, 《요다위키》
  5. 마나과〉,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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