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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로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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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로앨토(Palo Alto)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군에 속한 도시이다. 팔로알토라고도 쓴다. 인구는 약 7만 명이며 실리콘밸리 북부에 있고 스탠퍼드대학교와 인접해 있으며, 휴렛 팩커드 등 여러 하이테크 기업들의 본사가 있다. 이름은 도시 북쪽 어귀에 있던 수령 1000년이 넘은 아메리카삼나무를 일컫던 스페인어로 '높은 나무'라는 엘팔로알토(El Palo Alto)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1]

개요[편집]

팰로앨토는 샌프란시스코 남동쪽 45㎞ 지점의 샌프란시스코만 서안에 있는 도시이다. 실리콘밸리의 중심에 위치한 만큼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도시이자 교육열이 높은 도시 중 하나로 취급 받는다. 1867년 마을이 형성되고 1885년에 스탠퍼드대학교 설립되었으며 1894년 시(市)가 되었다. 서부 연안지대의 도시화에 힘입어 1940년대부터 성장하기 시작했다. 1세대 기업으로서 실리콘밸리 발전의 포문을 연 휴렛 팩커드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첨단기술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가 조성된 이후 도시가 급성장하였고 우주항공, 정보통신, 전자 등 첨단기술 연구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스탠퍼드대학과 엮이는 경우가 많다. 스탠퍼드대학교 학교 마크에 있는 그 나무가 엘팔로알토(El Palo Alto)이다. 팔로알토에 소재한 연구소들과의 연구 교류도 활발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행정구역 상으로 스탠퍼드가 팔로알토시 안에 있는 것은 아니고, 바로 옆에 위치한 스탠퍼드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에 속하지만 팔로알토 생활권에 속하기 때문에 흔히 팔로알토에 있다고들 얘기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비싼 집값으로 유명한데 주변에 고액연봉직장이 즐비하고 실리콘밸리 경기가 좋아 인구 유입이 늘고 있는 점이 부동산 시세를 높이는 원인이다. 건, 팰리 등 전국구급 명문 공립고등학교들 또한 집값 상승의 요인 중 하나이며 칼트레인이 도심에 정차하여 인근 대도시들과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유명한 회화(繪畵) 컬렉션이 있는 토머스웰튼 스탠퍼드미술관과 기념교회, 후버도서관, 어린이박물관, 문화유산박물관 등이 있다.[2]

역사[편집]

유럽인들이 오기 전에, 올론족은 샌프란시스코반도에 살았고, 특히 푸이촌 올론(Puichon Ohlone)족은 팰로앨토 지역에 살았다. 현대 팰로앨토 지역은 몬터레이만을 찾기 위해 샌디에이고에서 출발한 64명의 남자와 200마리의 말의 탐험대인 가스파르 데 포르톨라(Gaspar de Portolá) 일행에 의해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일행은 그 만을 인식하지 지나쳐 북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그들이 현대의 태평양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스위니 능선(Sweeney Ridge)에 올라 11월 2일 샌프란시스코만을 보았다. 포르톨라는 최종적으로 1769년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엘 팔로 알토라고 알려진 키 큰 삼나무 옆에서 캠핑을 했다. 팔로알토는 1769년 포르톨라 탐험대에 의해 목격되고 이름을 붙인 샌프란시스퀴토 크릭(San Francisquito Creek) 기슭에 있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나무인 엘 팔로 알토(El Palo Alto)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777년에 후니페로 세라(Junipero Serra) 신부는 산타클라라 데 아시스 선교단(Mission Santa Clara de Asis) 을 설립했는데 그 북쪽 경계는 샌 프란시스퀴토 크릭(San Francisquito Creek)이고 그 땅에는 현대 팔로알토(Palo Alto)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지역은 멕시코 총독의 지배하에 있었고 최종적으로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1777년 11월 29일 지역 사절단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총독의 명령에 따라 푸에블로 데 산 호세 데 과달루페 (현재는 팔로알토에서 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산호세)가 설립되었다. 1821년에 끝난 멕시코 독립 전쟁으로 인해 멕시코는 독립 국가가 되었지만, 산호세는 1825년 5월 10일까지 뉴멕시코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멕시코는 선교 지역의 상당 부분을 매각하거나 부여했다.

멕시코-미국 전쟁 중에 미국은 1846년에 알타 캘리포니아를 점령했다. 하지만, 이것은 1848년 7월 4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합법화되지 않았다. 해당 지역의 멕시코 시민은 미국 시민이 될 것을 선택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경우 토지 보조금이 인정되었다. 메이필드는 1855년 엘 카미노 레알(El Camino Real)과 현재 팔로알토(Palo Alto) 남부에 있는 캘리포니아 애비뉴(California Avenue) 교차로 근처에 '짐 삼촌의 오두막'(Uncle Jim's Cabin)으로 알려진 역마차 정류장과 술집 주변에 형성되었다. 1863년 10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까지 가는 철도가 메이필드까지 건설되었고 샌프란시스코와 메이필드 사이에 운행은 1864년 1월에 시작되었다.

1875년, 피터 쿠트(Peter Coutts)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 금융가 장 베티스트 폴린 카페론(Jean Baptiste Paulin Caperon)은 메이필드와 오늘날의 대학 테라스 3면 주변에 있는 4개의 다른 구획 토지를 구입했다. 쿠트는 그의 소유지를 에어셔 농장(Ayrshire Farm)으로 명명했다. 마타데로 크릭 근처에 있는 그의 허황된 50피트 높이의 벽돌 탑은 아마도 그의 소유지의 남쪽 모서리를 표시했을 것이다. 릴런드 스탠포드(Leland Stanford)는 1876년에 말 농장을 위해 그 지역의 땅을 사기 시작했다. 스탠포드는 1882년에 에어셔 농장을 구입했다.

1884년 릴런드 스탠포드와 그의 아내 제인은 15세에 질병 장티푸스로 사망하면서 외동아들인 릴랜드 스탠포드 주니어(Leland Stanford Jr.)를 잃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대학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1886년에 그들은 대학의 관문을 메이필드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을에서 술을 금지하는 것이다. 13개의 소란스러운 술집으로 유명한 메이필드는 그의 요청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1887년에 새로운 도시 부지를 위해 3.0km²의 사유지를 구입하고 남태평양 철도의 친구 티모시 홉킨스(Timothy Hopkins)의 도움으로 새로운 마을의 형성을 추진하도록 이끌었다. 홉킨스 트랙트(Hopkins Trac) 1994년 팔로알토의 100주년 기념 기간 동안 지역 유산 구역으로 선포되었다. 스탠포드 부부는 스탠포드대학교를 설립했다. 대학과 뉴타운 옆에 기차역이 있었으며 초기에 유니버시티 파크(University Park)라고 불렸으나 1894년에 팔로알토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스탠포드 가족의 지원으로 팰로알토는 메이필드 크기로 성장했다. 메이필드는 결국 1905년 1월에 시행된 술집을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1925년 7월 2일, 팔로알토의 유권자들은 메이필드의 합병을 승인했고, 두 공동체는 1925년 7월 6일 공식적으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 팰러앨토에는 두 개의 시내 지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니버시티 애비뉴(University Avenue)를 따라 있고 다른 하나는 캘리포니아 애비뉴(California Avenue)를 따라 있다

팔로알토는 1953년 스탠포드 쇼핑센터 지역을 포함한 더 많은 땅을 계속해서 합병했다. 스탠포드 연구 공원, 베이쇼어 북동쪽 엠바카데로 로드, 웨스트 베이쇼어, 샌안토니오 로드 지역도 1950년대에 합병되었다. 1959년과 1968년 사이에 푸트힐 고속도로 서쪽의 많은 토지가 합병되었다. 이것은 대부분 미개발 상태이고 푸트힐 공원(Foothills Park)과 아라스트라데로 보호구역(Arastradero Preserve)을 포함한다. 마지막 주요 합병은 1975년에 배런 공원(Barron Park)이었고 1979년에는 만과 접한 습지의 넓은 지역이 합병되었다.[3]

실리콘밸리[편집]

실리콘밸리(영어: Silicon Valley)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 남부를 이르는 말이다. 이 지역에 실리콘 칩 제조 회사들이 많이 모여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이름 붙여졌다. 현재는 온갖 종류의 첨단기술 회사들이 이 지역에서 사업을 벌이고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기술혁신의 상징이 되었다. 1인당 특허수, 엔지니어의 비율, 모험자본 투자 등의 면에서 미국내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은 하이테크 경제의 성공에 힘입어 매우 부유한 지역이 되었다. 경제적인 성공은 많은 다른 지역에 실리콘밸리와 유사한 명칭을 낳았는데 뉴욕의 실리콘앨리나 대한민국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가 그 예이다.[4]

실리콘밸리는 통상적으로 산호세부터 북쪽으로 레드우드 시티까지의 도시들(산타클라라, 서니베일, 쿠퍼티노, 마운틴 뷰, 팔로 알토, 멘로파크 등)에 더해 북부의 샌프란시스코까지를 칭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쪽으로 밀피타스와 프리몬트(Fremont)까지도 포함한다. 반도체에 쓰이는 규소(Silicon)와 샌프란시스코 만 동남쪽, 남쪽 길로이 방면으로 펼쳐진 산타클라라 계곡(valley)의 조어로, 1970년대부터 쓰였다.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지역 별로 산업상 특성이 상이한 편인데 크게 세 구역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우선 산타클라라와 산호세를 포함한 남부에는 반도체 중심의 하드웨어 계통 업체들이 밀집되어 있다. 여기서 스탠퍼드 대학교 중심의 중부로 올라가면 마운틴뷰의 Google,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쿠퍼티노의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의 비중이 늘어난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도래한 모바일 시대로 인해 실리콘밸리 북부인 샌프란시스코에는 2세대 IT 유니콘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하여 실리콘밸리의 범위가 Bay Area 지역 전체로 확장되었다.

실리콘밸리는 길이 48km, 너비 16km의 띠 모양으로 전개되어 있다. 이 지대는 12~3월을 제외하고는 연중 비가 내리지 않아 전자산업에 가장 이상적인, 습기 없는 천연의 환경을 갖추었고, 가까운 곳에 스탠퍼드대학, 버클리대학, 샌타클래라대학 등 명문대학이 있어 우수한 인력확보가 쉬운 입지조건을 갖추었다. 또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전자회사 유치를 위한 초기의 세제상 특혜 등으로 인하여 세계 유수의 반도체산업이 한데 모인 첨단기술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반도체 생산뿐만 아니라, 반도체가 만들어내는 온갖 종류의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관련 기업도 약 80개사가 참여,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기술혁신, 벤처비즈니스, 벤처캐피털에 의해서 일대 산업복합체가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급성장한 대표적 기업으로는 페어차일드, 인텔 등의 반도체 관련기업이 있다. Adobe, 인텔, AMD, NVIDIA, GlobalFoundries,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퀄컴 등의 반도체IT 계통 기업들이 대부분 산타클라라에 모여있다. 이후 쿠퍼티노의 Apple, 마운틴뷰의 Google, 멘로파크의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실리콘밸리가 차츰 확장되어 이제는 샌프란시스코 같이 Bay Area 지역을 거의 통틀어 실리콘밸리라고 칭하게 되었다. 미국 첨단산업, 특히 IT 산업과 벤처기업들의 요람. IT 및 각종 첨단기술을 다루는 수많은 기업들과 연구소가 이곳에 터를 잡고 있다. 1939년 HP가 이 곳에서 창업된 이래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이 곳에서 명멸해 갔으며, 현재도 그러고 있다. 이 동네에서 성공한 기업이 엄청나게 많은 관계로 실리콘밸리 자체가 하나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폐업한 기업은 훨씬 많다. 한국 기업으로는 1983년의 현대전자를 비롯하여 삼성, 엘지 등의 전자회사가 진출하였으며, 한국인 운영의 군소 관련 업체만도 20여 개가 된다. 테슬라 본사와 공장이 위치하고 있으며, BMW, 메르세데스-벤츠, 포드, 제너럴 모터스, 닛산자동차, 토요타, 혼다, 볼보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최신 기술과의 결합 특히 자율주행 등의 개발을 위해 실리콘밸리에 연구소를 열고 있다. 구글도 자율주행차를 연구하는 자회사 웨이모를 가지고 있다.[5]

스탠퍼드대학교[편집]

스탠퍼드대학교(Stanford University)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스탠퍼드에 있는 사립 종합대학교이다. 정식 명칭은 ‘릴런드 스탠퍼드 주니어 대학교(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이다. 1885년 철도 건설업자이자 캘리포니아주지사와 상원의원을 지낸 릴런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1824∼1893)가 15세에 죽은 외아들을 기리기 위하여 ‘릴런드 스탠퍼드’로 설립하였으며 1891년 555명의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1906년의 샌프란시스코 지진으로 캠퍼스의 많은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재건하였다. 1940년대와 1950년대에 프레더릭 터먼(Frederick Terman)이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HP, 야후를 비롯한 여러 하이테크 회사를 창업하도록 독려하였고 그 결과 주 캠퍼스 주위에 실리콘밸리가 들어서는 데 기여했다. 연구 중심 사립대학으로 문리·공학·지구과학·교육·경영·법학·의학 7개 단과대학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제공한다. 학부과정에서는 물리학, 경제학, 공학, 철학, 영어, 심리학, 정치학, 대학원 과정에서는 영어, 경제, 역사, 정치학, 심리학, 사회학 부문의 수준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주 캠퍼스는 실리콘밸리 북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소도시 스탠퍼드에 있으며 팰러앨토 시계에 일부 포함된다. 메모리얼교회, 스탠퍼드영묘, 후버탑 같은 상징적 건물과 윌리엄 웨트모어 스토리(William Wetmore Story)의 조각작품 〈슬픔에 잠긴 천사〉, 로댕조각정원, 파푸아뉴기니조각정원이 유명하다. 해너-허니콤 하우스(1937), 루 헨리·허버트후버 하우스는 국가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주 캠퍼스에서 144km 떨어진 퍼시픽 그로브(Pacific Grove)에 홉킨스 해양연구소(Hopkins Marine Station:1892)가 있다. 부설시설로는 그린도서관·메이어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도서관, 부속병원, 캔토시각예술센터, 미술관, 후버전쟁·혁명·평화연구소, 선형가속기센터, 프리먼스폴리국제학연구소, 식품연구소 등이 있다. 졸업생 또는 교수로 노벨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사람은 마이클 스펜스(2001, 경제), 리처드 테일러(1990, 물리)가 있고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 작가 존 스타인벡과 많은 하이테크 회사들의 창업주 등을 배출하였다.[6]

지도[편집]

미국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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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팰로앨토〉, 《위키백과》
  2. 팰로앨토(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팔로알토(캘리포니아)〉, 《요다위키》
  4. 실리콘 밸리〉, 《위키백과》
  5. 실리콘밸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6. 스탠퍼드대학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국가
카리브제도 국가
북아메리카 도시 1
북아메리카 도시 2
북아메리카 지리
북아메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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