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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4일 (수) 01:48 판

스톡홀름(스웨덴어: Stockholm, 영어: Stockholm)은 스웨덴의 수도이자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 도시이다. 많은 섬을 끼고 있어 "북방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회토리예트(Hötorget)에 위치한 콘서트홀(Konserthuset)에서는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열린다.

개요

  • 행정 단위: 스웨덴의 수도
  • 면적: 118 km²
  • 인구: 960,061명 (2017년)
  • 언어: 스웨덴어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start.stockholm/

역사

‘스톡홀름’이라는 이름은 1252년 기록물에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Stock은 통나무라는 뜻이고 holm은 섬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이 지역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멜라렌 호(스웨덴어: Mälaren Laken) 상류에서 통나무를 동동 띄워 땅에 닿는 곳에 도시를 짓기로 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철광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멜라렌 호와 발트해 사이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스웨덴의 집권자 비르예르 얄(Birger Jarl)이 1250년경 한자 동맹[1]의 강자로 부상한 뤼베크와 교역 협정을 체결하고 관세 면제와 함께 그들이 스웨덴 법을 준수하고 스웨덴 주민으로 살아간다는 조건하에 정착권을 보장해 주었다.

1300년대에 스톡홀름은 한자 동맹의 세력권에 유입되었고, 독일계 상인들이 스톡홀름에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대표하게 되었다. 그들의 영향력은 덴마크의 코펜하겐, 노르웨이의 오슬로와 베르겐까지 확장되면서 북유럽 삼국이 덴마크 마가레테 여왕의 주도로 1397년에 칼마르 동맹(Kalmar Union)을 결성하여 연합체제 형태로 한자 동맹의 북방 진출에 공동으로 대처해나가자 1400년대에는 독일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칼마르 동맹 체제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던 덴마크의 횡포가 너무 심하여 스웨덴의 구스타프 1세 바사(Gustav I Vasa)는 농민병과 독일 뤼베크 시의 지원을 받아 덴마크 세력을 축출하고 스톡홀름을 탈환하여 1523년에 독립을 쟁취하였다. 1523년 구스타브 1세 바사(스웨덴어: Gustav Vasa) 왕이 즉위하며 중심 도시로서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하였고, 1600년까지 인구가 1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17세기 스웨덴이 북유럽의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1634년 공식적으로 스웨덴 왕국의 수도로 선정되었다. 무역법에 따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스웨덴의 상인들이 꼭 거쳐가야 하는 독점 무역의 핵심 무대가 되기도 했다.

18세기에는 흑사병과 대북방 전쟁으로 인해 도시 일부가 파괴되는 등 침체기를 맞았으나, 여전히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로서 제 역할을 다 하였다.

19세기에 들어 다시 경제적 중심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구가 크게 늘었지만 자체 출생보다는 주로 이민에 의한 것이었다. 도시 영역이 확장되기 시작하여 새로운 지역들이 거주지로 개발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노동집약적 공장들이 도시 내부에 생겨났으며 공업 중심의 도시가 되었다.

시가지 발달 과정

19세기 초까지 스톡홀름은 왕궁이 있는 구시가지 감라스탄(Gamla Stan)과 그 남쪽의 쇠데르말름(Södermalm), 북쪽의 쿵스홀름(Kungsholm) 및 노르말름(Norrmalm), 외스테르말름(Östermalm)의 한정된 지역에만 있는 작은 도시였다. 그러다가 19세기 말부터 공업 발달로 인해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도시가 팽창하기 시작하여, 유르고르덴(Djurgården) 지역이 개발에 포함됐다.

20세기 초(1900~1930)에는 영국런던 근교 개발 모델을 본따 '정원 도시'를 모토로 주로 개발이 이루어져, 시 외곽의 솔나 시(Solna), 순드뷔베리 시(Sundbyberg) 등에 방대한 양의 단독 주택 형식의 주거지가 생겨나게 되었다. 때를 맞추어 시민들의 통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트램과 철도가 함께 발달하였다. 1930년대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는 현대적 도시 건설을 모토로 개발되었는데, 이전에 비해 대량 생산된 형태의 공동 주택들이 많이 지어졌다. 또한 자동차가 새로운 교통 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며 시내 중심가를 관통하는 많은 간선 도로가 건설되었고, 이와 함께 대대적인 도심 재개발{세르옐스토르(Sergelstorg) 등}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지하철로 인해 교통수단의 지형도가 새롭게 바뀜으로써 근교 지역에는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상업 단지와 고층 주거가 위치하고 그 바깥에 저층 주택들이 넓게 분포하는 형태의 개발 모델이 각광을 받았다.

1970년대 이후 지나친 도심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로 대규모 개발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다. 가족 단위를 위한 표준화된 주택들이 건설되었다. 90년대 이후로는 전통적인 도시의 모습을 되찾아가면서 버려진 역들과 항구 등을 재활용하며 보다 환경친화적인 도시 쪽에 초점을 맞추어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70년대 이후 IT·전자 산업에 특화해 개발된 시스타 (Kista) 지역은 북유럽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며 많은 IT 기업들이 입주하였다.

지리

스칸디나비아 반도 동부 연안에 위치한 스톡홀름은 발트해와 스웨덴 내륙의 멜라렌 호 사이에 있다. 도시의 서부는 멜라렌 호와 이어지는 큰 강줄기를 끼고 있고, 동부는 다도해 해안 형태로 발트해와 만나고 있다.

기후

스톡홀름은 온대 활엽수혼합림(temperate broadleaf and mixed forest)에 속해 있는데 여름 평균 주간 최고기온은 20~25℃이고 최저기온은 13℃ 내외지만, 어떤 날은 30℃에 이를 수 있다. 30 °C 이상의 일수는 연평균 1.55일 동안만이다. 25 °C ~ 30 °C 사이의 온도를 볼수있는 일수는 특히 7월과 8월에 비교적 흔하다. 야간 최저기온이 20°C 이상인 날은 드물며, 더운 여름 밤은 17 - 20 °C 정도이다. 겨울은 대체로 흐린 날씨이다. 연평균 강우량은 531mm이며 12월과 1월에 강수량이 가장 많다.

도시의 북위도가 높아 낮의 길이는 한여름 전후 18시간 이상에서 12월 하순에는 6시간 내외로 크게 차이가 난다. 가장 높을땐 6월로 최고 18.5시간 정도라고 한다. 또한 가장 낮을때인 12월엔 6.5시간이다. 겨울에 6.5시간이지 사실 해가 온전히 떠있는 시간은 2~3시간 정도밖에 안된다.

인구

스톡홀름 지역은 스웨덴 전체 인구의 22%가 거주하며 국내총생산의 약 29%를 차지한다.

지도

각주

  1. 한자 동맹〉,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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