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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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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
롤리 위치

롤리(Raleigh) 또는 랄리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주도이며, 웨이크군의 군청 소재지이다. 인구는 약 47만 명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샬럿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미국의 도시 가운데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중 하나이다. 참나무가 많아 "참나무의 도시"(City of Oak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500년대 후반 이 지역에 식민지 탐험을 위하여 여행을 왔던 영국의 탐험가인 월터 롤리(Walter Raleigh) 경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

개요[편집]

롤리는 피에몬테(Piemont)와 대서양 연안 평야 지역이 만나는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북동쪽 중앙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더럼과 함께 대도시권을 이룬다. 온화한 기후를 보이며 사계절이 뚜렷한 편으로 대서양에서 240km, 그레이트스모키산맥에서 304km 떨어져 있다. 백인 정착자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투스카로라 인디언들이 현재의 롤리 지역에 살고 있었다. 1792년 주정부가 그 대지를 주도로 선택한 후에 설립하였으며, 1500년대 후반 이 지역에 식민지 탐험을 위하여 여행을 왔던 영국의 탐험가인 월터 롤리 경의 이름을 따서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1794년 의회광장을 중심으로 거리가 형성되었고 1795년에 시가 되었다. 1840년 철도가 개통되면서 주변 농업지대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의 거래중심지로 발달하였고, 19세기 말에는 섬유공업이 발달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에 롤리의 인구가 늘기 시작하였는 데, 특히 1959년 시 서쪽 지역에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esearch Triangle Park)라는 세계적인 최첨단 연구단지가 들어서면서 문화, 과학, 교육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도시의 큰 생산품으로는 전자적 구성요소, 식품 가공, 섬유 등을 포함한다. 많은 주식 회사와 연방 중개인들은 도시에서 가장 큰 단지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에서 연구 시설을 운영한다. 롤리의 문화적 목적지로는 노스캐롤라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주립 미술, 역사, 자연과학 박물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1887), 세인트오거스틴대학(1867), 쇼대학교(1865), 메러디스대학(1891), 세인트메리스대학(1842), 피스대학(1857), 웨이크기술학교 등이 있고 스포츠팀으로는 NHL 아이스하키팀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가 있다. 17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의 출생지가 자리잡고 있다. 2023년 NBC에서 조사한 미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에 5등으로 선정되었다.[2]

역사[편집]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배스는 1705년부터 에덴턴이 그 역할을 맡기 전인 1722년까지 식민지의 첫 번째 명목상 수도였다. 1743년 새로운 수도인 뉴베른이 설립될 때까지 식민지에는 영구적인 정부 기관이 없었다.

뉴베른(New Bern)은 대서양에서 56km 떨어진 뉴스강(Neuse River)에 위치한 항구도시 로 미국 혁명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였다. 영국군이 도시를 포위했을 때, 그 장소는 더 이상 수도로 사용될 수 없었다. 롤리가 건설되던 1789년부터 1794년까지 주도는 파예트빌이었다.

롤리(Raleigh)는 중심 위치가 해안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기 때문에 1788년에 새로운 수도로 선정되었다. 1792년에 카운티 소재지이자 주도로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도시는 1792년 12월 31일에 통합되었고 1795년 1월 21일에 헌장이 승인되었다. 도시의 이름은 로아노크 섬의 "잃어버린 식민지" 로아노크의 후원자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전에 선택한 도시 부지에 알려진 도시 또는 마을이 존재하지 않았다. 롤리는 미국에서 주의 주도 역할을 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되고 건설된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원래 경계는 북쪽, 동쪽, 서쪽 및 남쪽의 시내 거리로 형성되었다. 두 개의 주축이 중앙의 사각형과 각 모서리의 추가 사각형에서 만나는 격자형인 이 계획은 토마스 홀메(Thomas Holme)의 1682년 필라델피아 계획에 기반을 두고 있다. 도시는 크랩트리, 모르데카이, 오크뷰, 파인홀, 풀렌, 스프링힐, 웨이크필드 등 다양한 농장의 땅에서 개발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 총회는 1794년 12월 롤리에서 처음으로 회의를 열고 7명의 임명된 위원으로 구성된 이사회 와 이를 통치할 경찰 의향(시장직으로 발전)이 포함된 헌장을 시에 부여했다. 1803년 이후, 시 위원들이 선출되었다.

1808년 미래의 미국 17대 대통령인 앤드루 존슨(Andrew Johnson)이 롤리의 캐소 인에서 태어났다. 도시의 첫 번째 상수도 공급망은 1818년에 완공되었지만 시스템 고장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1819년 롤리의 첫 번째 자원봉사 소방 회사가 설립되었고, 1821년에는 전업 소방 회사가 설립되었다. 1817년, 노스캐롤라이나 성공회 교구가 설립되었고 롤리에 본부를 두었다.

1831년에 화재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의사당이 파괴되었다. 2년 후, 주에서 첫 번째 철도를 통해 채석된 편마암이 운반되면서 재건이 시작되었다. 롤리는 1840년에 새로운 주 의사당과 새로운 철도 회사의 완공을 축하했다. 1853년, 최초의 주 박람회가 롤리 근처에서 열렸다. 1857년에 평화대학인 롤리에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는 1861년 5월 20일 미국 남북전쟁 동안 연합에서 탈퇴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제불론 베어드 밴스(Zebulon Baird Vance) 주지사는 북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도시 주변에 흉벽 건설을 명령했다.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 밴스 주지사는 윌리엄 셔먼 연방 장군의 군대가 도시에 접근하자 포로를 피하기 위해 그의 피난을 준비했다. 밴스는 떠나기 전 그레이엄과 스웨인 전 주지사를 만나 롤리를 위한 항복서 초안을 작성했다. 그들의 의도는 북군이 다른 도시들에 가한 파괴로부터 롤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레이엄과 스웨인은 1865년 4월 12일 아침에 진격하는 연방군을 만나기 위해 출발했고, 그날 저녁에 돌아올 예정이었다. 저녁이 밝았지만 그레이엄과 스웨인은 기차 지연과 셔먼에 의한 일시적인 나포로 인해 돌아오지 않았다. 밴스 주지사는 그레이엄과 셔먼이 돌아오지 못한 다음날 저녁 윌리엄 H. 해리슨 시장에게 항복 권한을 주는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4월 13일 아침, 해리슨 시장 등은 휴 저드슨 킬패트릭 장군을 만나 항복을 제안하기 위해 남부 웨이크 카운티 지역으로 갔다. 롤리의 오랜 거주자인 케네스 레이너는 저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포함한 제안서를 전달했다. 킬패트릭은 항복을 받아들이고 롤리를 파괴로부터 보호하기로 동의했다. 킬패트릭의 기병대는 롤리를 점령하고 주 의사당에서 깃대를 제거하고 돔 위에 미국 국기를 달았다. 셔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총독의 저택에 본부를 설립했다. 그 도시는 전쟁 중에 큰 파괴를 면했다. 남군 기병대가 서쪽으로 후퇴하자 북군 병사들이 뒤따르면서 근처 모리스빌 전투가 벌어졌다.

전후 기간과 재건의 경제 및 사회 문제로 인해 국가 경제는 여전히 농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도시는 향후 수십 년 동안 거의 성장하지 않았다.

미국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대학인 쇼 대학교는 1865년에 수업을 시작했고 1875년에 인가를 받았다. 대학의 에스티 홀(Estey Hall)은 흑인 여성의 고등 교육을 위해 건설된 최초의 건물이었으며, 레너드 메디컬 센터(Leonard Medical Center)는 최초의 4년제 의료 기관이었다.

1867년 성공회 성직자들은 자유민 교육을 위해 세인트 어거스틴 대학을 설립했다. 1869년에 이 의회는 미국 최초의 맹인 및 청각 장애 흑인 학교를 롤리에 설립하는 것을 승인했다. 1874년 연방정부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남부 최초의 연방정부 프로젝트인 롤리에 연방빌딩을 지었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으로 알려진 노스캐롤라이나 농업 및 기계 예술 대학은 1887년 토지 보조 대학으로 설립되었다. 도시의 렉스 병원은 1889년에 문을 열었고 그 주의 첫 간호 학교를 포함했다. 지금은 메러디스 칼리지로 알려진 침례교 여자 대학이 1891년에 개교했고 1898년에는 사립 음악 음악원인 음악 아카데미가 설립되었다.

19세기 후반, 두 명의 흑인 하원의원이 1898년 마지막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제2선거구에서 선출되었다. 조지 헨리 화이트(George Henry White)는 흑인 시민의 시민권을 증진하고 새로운 차별법을 통해 흑인 투표를 줄이려는 백인 민주당원의 노력에 도전했다. 그와 그의 동맹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민주당을 다시 지배하게 만든 백인 우월주의 캠페인에 기초하여, 1900년에 주 의회는 유권자 등록 장벽을 높이는 참정권 수정안이 포함된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대부분의 흑인 시민과 많은 가난한 백인 시민의 선거권이 박탈되었다. 투표권 상실로 인해 흑인 남성(및 나중에는 여성)도 배심원이 되거나 지역, 주, 연방 등 모든 공직에서 근무할 자격이 박탈되었다. 롤리 및 기타 지역에서 떠오르는 흑인 중산층은 정치적으로 침묵하고 지역 통치에서 배제되었으며 공화당은 더 이상 주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했다.

1960년대 중반 연방 시민권 법안이 통과된 후에야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대다수 흑인 시민들은 다시 투표를 할 수 있고 배심원들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지방 사무소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에는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북부 산업도시로 대이주하면서 주를 떠났다. 1992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의회로 선출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없었다.[3]

교통[편집]

시청과 노스캐롤라이나 주 정부청사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중심으로 점점 외곽으로 도시 영역이 확장된 전형적인 구조로서, 미드타운과 도시 외곽을 둘러싼 2중의 원형으로 도시 순환 고속도로가 있다. 고가다리가 여기저기로 얽힌 댈러스-포트워스나 로스앤젤레스같이 미로를 연상케하는 곳과 비교하면 초행자도 파악하기 쉬운 구조다.

내부 순환 고속도로격인 I-440 은 60마일의 속도 제한, 외부 순환 고속도로인 I-540 은 70마일 속도 제한이다. 다운타운과 주택이 길 양쪽으로 있는 미드타운은 일반적으로 35마일, 주택이나 마을이 한 쪽 길에만 있는 시 외곽은 45마일 정도이다. 시티 내부 지역이나 순환 고속 모두 전반적으로 도로 상태가 깨끗하고 양호한 편이지만 가로등이 드문드문한 편이라 초행자들에게는 야간 운전시 압박이 있는 편이다.

대중교통은 버스가 유일하다. 롤리를 중심으로 운행하는 고롤리(GoRaleigh)와 광역권을 중심으로 도는 고트라이앵글(GoTriangle)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느 미국 중소도시가 그러하듯 사실상 없는 것 취급해도 좋을 수준이다.

철도 교통은 다운타운에 있는 롤리 유니온 역에서 이용 가능하다. 낡고 허름한 50년대 역사를 헐고 2018년에 새로 지어서 매우 깔끔하다. 연간 이용객이 15만명 밖에 안되지만 이래 봬도 미국의 여객철도가 꽤나 열악한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시에서도 고무되었는지 추후 시내버스와 그레이하운드를 결합한 교통 허브로 키울 계획이라고 한다.

롤리와 더램 경게선 근처에 랄리-더럼 국제공항이 있지만, 말이 국제공항이지 아메리칸의 런던 노선과 델타의 파리 노선을 빼면 대부분이 국내선 위주다.[4]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편집]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주도 롤리(Raleigh)에 있는 주립 종합대학교이다. 주립 대학군(群)인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시스템(University of North Carolina system)에 속한다. 흔히 ‘NC 스테이트(NC State)’ ‘NCSU’라고 줄여서 부른다. 1887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의회가 랜드그랜트대학으로 설립하였고 1889년 노스캐롤라이나농업기계칼리지(North Carolina College of Agriculture and Mechanic Arts)라는 교명으로 개교했다. 1923년 공과대학을 신설한 데 이어 1923년부터 1934년까지 농업대학, 과학·경영대학, 교육대학, 섬유대학, 대학원을 각각 신설했다.

1931년 노스캐롤라이나의 채플힐 캠퍼스를 중심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그린즈버러여자대학(1891년 설립)이 단일 이사회가 운영하는 통합 종합대학교인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로 발족하였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시스템에는 대학본부가 있는 채플힐 캠퍼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외에 애슈빌 캠퍼스, 샬럿 캠퍼스, 그린즈버러 캠퍼스, 펨블로크 캠퍼스, 윌밍턴 캠퍼스 등 16개 대학교가 포함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크게 성장하였으며 1965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1991년에 섬유대학 건물 등이 신축된 센테니얼 캠퍼스로 이전했다. 듀크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대학과 함께 삼각 연구공조 대학을 형성한다. 농업·생명과학대학, 디자인대학, 교육대학, 공학대학, 인문·사회과학대학, 경영대학, 자연자원대학, 물리·수학대학, 섬유대학, 수의학대학, 1학년대학, 일반대학원에서 다양한 학부·대학원과정을 제공한다. 전통적으로 농업, 디자인, 공학, 섬유 분야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주 캠퍼스는 롤리의 번화가에 위치하며, 인근에 센테니얼 캠퍼스와 수의학단과대학 캠퍼스가 있다. 부속기관·시설로는 중앙도서관, 디자인·의학·천연자원·직물·수의학 각 분야의 도서관, 미술관, 농업·임업실습농장, 식물생장조절실, 섬유·직물가공시설, 전자현미경, 원자로, 안정동위원소, 종이관련산업실험소, 재료연구소, 통합제조시스템공학연구소, 일본센터, 정밀공학센터 등이 있다.[5]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편집]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esearch Triangle Park)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연구단지로, 롤리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더럼시의 듀크대학, 채펄힐시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세 대학을 연결한 삼각지대(트라이앵글)의 중심에 건설된 두뇌 집결지이다. 국립환경위생연구소와 리서치 트라이앵글연구소, IBM과 제너럴일렉트릭 등 대기업의 연구시설이 있어,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 밸리’와 쌍벽을 이루는 연구센터가 형성되었다. 롤리시(市)에 있는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더럼시의 듀크대학, 채펄힐시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세 대학을 연결한 삼각지대(트라이앵글)의 중심에 건설된 두뇌 집결지이다. 1958년 당시의 포지스 주지사가 주 밖으로 두뇌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고 장차 고도 공업화를 향한 초석으로 삼기 위해 발족시켜, 오늘날에는 국립환경위생연구소와 리서치 트라이앵글연구소 등 관민연구소, IBM과 제너럴일렉트릭 등 대기업의 연구시설이 있어,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실리콘 밸리’와 쌍벽을 이루는 연구센터가 형성되었다.

당초에는 미약하였으나, 1965년 IBM이 진출한 뒤 급속하게 확대되어 지금은 입주시설 47개소로, 주 최대 도시 샬럿을 크게 웃돌아, 연구단지로는 세계에서도 가장 성공한 예가 되었다. 비영리 민간조직인 리서치 트라이앵글재단이 관리하는데, 입주자는 최소 8에이커의 토지를 에이커당 4만 5000달러에 구입해야 하고 건물의 설계는 리서치 트라이앵글재단의 심사에 통과해야 하며, 건폐율은 15%로 제한되어 있다. 또 기본적으로 제조업은 조립에만 한정되어 있으며, 고용인원의 25% 이상이 연구개발에 종사해야 한다.[6]

지도[편집]

미국 행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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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롤리 (노스캐롤라이나주)〉, 《위키백과》
  2. 롤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롤리〉, 《요다위키》
  4. 롤리〉, 《나무위키》
  5.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6.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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