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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아테아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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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보라섬(위), 타하섬(가운데), 라이아테아섬(아래)
라이아테아섬 위치
라이아테아섬 지도

라이아테아섬(Raiatea, 타히티어: Ra'iātea)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소시에테제도에서 타히티섬에 이어 2번째로 큰 이다. 타히티어로 라이아테아라는 이름은 밝은 하늘을 의미한다. 섬의 전통적인 이름은 마오리족의 고향 하와이키(Havai'i) 이다. 남동쪽 해안에 기원후 1000년 쯤에 설립된 역사적인 타푸타푸아테아 마라에가 있으며 2017년 7월 9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1]

개요[편집]

라이아테아섬은 남태평양에 있는 화산섬으로 타히티섬과 함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라이아테아섬은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으로 남태평양에서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겨지는 섬이다. 섬은 고대 폴리네시아의 동쪽 섬들의 중심지로 널리 간주되었으며 지도자들이 모여 신성한 의식을 올렸던 마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면적은 238km², 주도(主都)는 우투로아이고 투마루산(1,017m)을 정점으로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경관이 아름답다. 폴리네시아의 항해사 투파이아는 1725년 라이아테아섬에서 태어나 탐험가 제임스 쿡과 함께 배를 몰았다. 쿡은 1769년 라이아테아섬을 방문하였고 1773~1774년에 또다시 방문하였고 그는 이 섬의 이름을 울리테아(Ulitea)로 지었다. 라이아테아섬은 타히티섬과 함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우투로아에는 관광객을 위한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다. 라이아테아섬은 북쪽에 위치한 타하섬과 3km의 해협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타하섬과 라이아테아섬은 동일한 석호를 공유한다. 이 섬은 일찍이 중부 폴리네시아의 종교적 중심지로서 독자적인 신학(神學)을 발전시켰으며, 마오리족은 이곳을 배움의 땅으로 여겨왔다. 오포아 근처에는 순례자들의 예배장소인 마라에(marae)가 있다. 소규모의 경공업이 이루어지며 코프라(말린 야자열매), 케이폭(핀야나무 솜), 오렌지, 바닐라 등이 생산된다.[2]

역사[편집]

고대[편집]

라이아테아섬은 고대에 폴리네시아 문화의 신성한 이름이자 하와이 이름과 관련된 하와이키(Havai'i)라고 불렸다. 최근의 발견에 따르면 소사이어티제도는 마르케사족과 거의 비슷한 기원전 200년경에 사모아와 통가로부터 식민지화 되었다. 마르케사족과 함께 그들은 폴리네시아의 심장부를 형성했고 따라서 하와이, 뉴질랜드, 망가레바섬 정착의 발판을 마련했다. 라이아테아의 지리학적 특성에 따라 계곡이 바위 능선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로 개방되어 9개의 독립적인 부족 공국이 생겨났으며 이들은 차례로 개별 씨족으로 세분되었다. 이것은 엄격하게 계층화된 사회적 패턴으로 이어졌고 사회는 여러 개별 사회적 수준으로 나뉘었다. 맨 위에는 아리키(ariki) 또는 아리이(ari'i)가 있었는데, 이들은 건국 조상의 혈통으로 지도력에 대한 주장을 정당화했다. 그들은 지주였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정치 및 종교 지도자였다. 소사이어티 제도에서는 그들은 종교적, 문화적 영향력을 크게 행사했다. 오로 신에게 바쳐진 타푸타푸타피테아(Taputapuatea)의 거대한 신전은 섬들의 가장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였다. 그의 숭배는 타아로(Taaroa)와 타네(Tane)와 같은 다른 전통적인 신들을 대체했고 다른 마레는 타푸타푸타피테아의 보조 신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종교, 귀족, 전쟁성, 축제성이 혼합된 종파가 형성되었고, 모든 섬에서 존경을 받았고, 종파의 존재와 금기시되는 성격만으로 부족 전쟁의 휴전을 이루었다.

근대[편집]

라이아테아섬은 1769년 7월 20일 제임스 쿡(James Cook)이 첫 항해 중에 유럽에서 발견했다. 타히티섬에서 온 그는 엔데버호와 함께 폴리네시아인들에게 신성한 아바모아 리프(Avamo'a Reef) 항로를 통과하여 오포아 만(Opoa Bay)에 정박하고 마래 타푸타피테아 강(Marae Taputapuatea) 근처에 상륙했다. 그는 유니언 잭을 들어올리고 짧은 의식을 통해 영국 왕실을 위해 섬을 점령했다. 스페인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찰스 3세 왕은 남태평양 탐험을 명령했다. 칠레 총독 이자 페루 총독 마누엘 다마트 이 데 주니엔트(Manuel d'Amat i de Junyent, 1704–1782)는 1772년 라이아테아에 도착한 호위함 엘 아길라(El Águila)와 함께 도밍고 데 보이네체아(Domingo de Boenechea)를 보냈다. 그는 섬을 프린세사(Princesa)라고 불렀고 스페인을 위해 섬을 차지했고 합병은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이웃한 타히티는 18세기 후반에 이미 유럽 세력의 영향을 받고 있었고 1842년에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지만 라이아테아의 씨족은 합병 노력에 맹렬히 저항했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사들은 점점 더 큰 영향력을 얻었고 이로 인해 전통 신앙과 기독교 신앙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 종교 전쟁이 일어났다.

유럽인의 지원으로 타히티의 포마레 2세 왕은 자신이 전체 군도의 주권자임을 선언할 수 있었다. 1815년 11월 12일, 옛 신앙의 추종자들인 포마레의 적들은 페이피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했다. 1828년 마라에 타푸타푸아테아는 파괴되었다. 1831년에 이미 금지된 아리오이(Arioi)의 후계자인 마미이아(Mamaia) 분파는 다시 라이아테아에서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1832년에 마마이아는 마침내 패배하고 추방당했다. 선교사들이 돌아왔고 프랑스는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1842년 초에 아벨 오베르 뒤페티 투아르(Abel Aubert Dupetit-Thouars) 제독은 프랑스를 대신하여 소사이어티제도의 영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루이-필립 국왕은 당초 자신들을 주장한 영국과의 이해충돌을 우려해 뒤 쁘띠투아르에 의해 발표된 합병안에 서명하는 것을 주저했다. 타히티의 포마레 4세 여왕은 친영파였고 개신교 선교사들에게 더 애착을 가졌기 때문에 그녀는 1844년 이 모호한 상황에서 라이아테아로 끌려가 1847년까지 그곳에서 통치하도록 허용했다. 1880년에 프랑스는 라이아테아와 타하를 임시 보호령 으로 선포했다. 포마레 5세(Pōmare V)가 자신의 모든 권리를 프랑스에 양도한 후 소시에테제도는 마침내 1888년 3월에 합병되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러나 라이아테아에서는 반란이 계속 일어났고 1888년 부족장 테라우포 오(Teraupo'o)는 동부 해안의 아베라 계곡에 자리를 잡고 프랑스의 개입에 저항했다. 그가 포로가 되어 뉴칼레도니아로 추방된 것은 1897년이다. 그의 추종자 중 190명은 가족과 함께 우아 후카섬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타마토아 6세(Tamatoa VI)는 1884년부터 1888년까지 라이아테아를 통치한 마지막 군주였다.[3][4]

유네스코 세계유산[편집]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라이아테아섬(Raiatea)에 자리한 야외 사원인 타푸타푸아테아 마라에(Taputapuātea marae)는 2017년 7월 9일 저명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자연유산과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43번째 프랑스 문화 유적지이다. 타푸타푸아테아 유산은 라이아테아섬의 문화 경관과 바다 경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라이아테아섬은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광대한 태평양의 일부이자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인 폴리네시안 트라이앵글(Polynesian Triangle)의 한가운데에 있다. 유산의 중심은 정치, 예식, 장례, 종교 중심지인 타푸타푸아테아 마라에 단지이다. 마라에 단지는 반도의 끝, 육지와 바다 사이에 있으며 석호(潟湖)로 둘러싸여 있다. 마라에는 의식을 올리는 성스러운 사회적 공간으로 폴리네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성소이다. 소시에테 제도(Îles de la Société, Society Islands)의 마라에는 한쪽 끝에 아후(ahu)라는 직사각 형태의 제단이 있고 바닥이 포장된 네모반듯한 안뜰이 있다. 마라에는 형태가 다를지라도 기능은 매우 유사하다. 타푸타푸아테아 마라에 단지 한 가운데에는 오로(Oro) 신에게 봉헌된 마라에 타푸타푸아테아가 있다. 이곳은 살아 있는 자들의 세계인 테아오(Te Ao)와 조상 및 신들의 세계인 테 포(Te Po)가 서로 만나는 지점이다. 더불어 마라에 타푸타푸아테아는 정치권력 관계를 표현한다. 라이아테아 섬과 더 넓은 지역 곳곳에 있는 여러 마라에 중에서도 타푸타푸아테아 마라에가 더 중요한 이유는 타마토아 아리(Tamatoa ari’i, 족장들) 계파의 권력이 확장된 사실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타푸타푸아테아는 정치적 연합체의 핵심 지역으로 폴리네시아 대부분을 포함하는 2개의 광범한 지역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연합체는 여러 섬에서 온 족장과 전사, 제사장들이 타푸타푸아테아에 정기적으로 모이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현외장치가 있는 카누를 건조하는 방법, 항법 등은 이러한 관계망을 통해서 유지되는 중요한 기술이다. 타푸타푸아테아 마라에 단지의 양쪽으로는 전통적인 경관이 펼쳐져 있다. 마라에 단지는 석호를 둘러싼 암초를 향한 신성한 길인 ‘테 아바 모아(Te Ava Mo’a)‘를 조망하고 있다. 아타라 모투(Atāra motu)는 암초로 이루어진 작은 섬이며 바닷새들의 서식지이다. 바다를 건너 이곳에 당도한 사람들은 먼저 이 신성한 길로 안내된 뒤에 타푸타푸아테아에서 공식적으로 환대를 받는다. 육지 쪽에는 능선과 신성한 테아에타푸(Tea’etapu) 산으로 둘러싸인 우거진 오포아(’Ōpo’a) 숲, 호토푸우(Hotopu’u) 계곡이 있다. 계곡의 고지대에는 마라에 바에아라이(marae Vaeāra’i), 마라에 타우마리아리(marae Taumariari)와 같은 옛 마라에와 다랭이논, 거주지 고고 유적, 그리고 신과 조상의 전통과 관련된 요소 등이 있다. 계곡에는 여러 종의 식생이 혼재하는데 그 중 일부는 라이아테아섬의 고유종이고, 일부는 다른 폴리네시아 섬에서도 발견되며, 일부는 고대 폴리네시아 인들이 경작하려고 외부에서 들여온 식용 작물이다. 유산의 속성을 이루는 이 모든 요소들이 탁월한 유적을 이루고 있으며, 동시에 문화경관 및 바다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5]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라이아테아섬〉, 《위키백과》
  2. 라이아테아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라이테아〉, 《요다위키》
  4. "Raiatea", Wikipedia
  5. 타푸타푸아테아〉, 《유네스코와 유산》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폴리네시아 같이 보기[편집]

폴리네시아 국가와 섬 1
폴리네시아 국가와 섬 2
폴리네시아 국가와 섬 3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폴리네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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