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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어폰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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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어폰타인
뉴캐슬어폰타인 위치

뉴캐슬어폰타인(영어: Newcastle upon Tyne)은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타인위어주에 위치한 대학 도시이며, 줄여서 뉴캐슬이라고도 한다. 도시의 역사는 로마 제국의 요새에서 시작되는데, 11세기 스코틀랜드의 침략자들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새로운 성채를 지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도시 가운데 한 곳이다. 유럽 최대의 여행박람회가 열리고 '영국에서 가장 친근한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1]

개요[편집]

뉴캐슬어폰타인은 북해로 흘러들어가는 타인강 하구에서 13km 떨어진 상류지역에 위치하나 양항(良港)이 있어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로마시대에는 로마 군단의 북진기지로 이용되었으며, 지금도 당시의 성벽 흔적을 볼 수 있다. 13세기 이래 석탄 출하항이 되었으며, 17세기 이후 런던의 석탄 공급지로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대규모의 선박수리 독(dock)과 조선소가 있으며 유리, 제철, 제동(製銅), 납 등을 중심으로 하는 중화학공업이 발달하였다. 1963년 기존의 대학을 통합해서 뉴캐슬대학을 창설하였고, 1974년 4월 타인위어주에 편입되었다. 시내 중심가는 시티 센터(City Centre)라고 부른다. 1879년 2월 3일 뉴캐슬 모슬리 거리에는 백열등 불이 켜져 세계 최초로 전기 조명으로 불을 밝힌 도시가 됐다. 안전등 개발과 스티븐슨의 로켓, 조셉 스완의 전구, 찰스 파슨스의 증기 터빈 발명은 뉴캐슬과 주변 지역의 혁신을 유도하고 해양 운송의 혁명과 값싼 전기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번화가를 갖춘 대도시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를 지녀 대학생이 살기 좋은 도시로 꾸준히 선정되는 곳이며 대표적인 교육 기관으로는 러셀 그룹 소속의 명문대인 뉴캐슬 대학교와 비즈니스 스쿨과 디자인 스쿨로 저명한 노섬브리아 대학교가 있다. 뉴캐슬은 중세 시대의 도시 구조를 상당 부분 유지해오고 있다. 리버사이드 지역에는 체어스(Chares)라고 일컫는 차량이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이 다수 남아있다. 14세기 경 문헌에 처음 등장한 리버사이드의 계단과 성채 중심부는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샌드힐과 키사이드 지역에는 15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지어진 고전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도시의 중심가인 그레인저 타운에는 찰스 그레이와 1832년 개혁 법안을 기념하는 기념탑과 그를 둘러싼 244채의 등록문화재 건물이 있다. 혁신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어진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는 키사이드의 옛 구시가지와 게이츠헤드의 문화 시설을 연결한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세이지 게이츠헤드, 제분소에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발틱 현대미술관 등 많은 관광지까지 걸어서 닿을 수 있다. 뉴캐슬 맥주 축제는 4월에 열린고 유럽 최대의 연례 여행박람회인 '호핑스'는 매년 6월 뉴캐슬 타운 무어에서 개최된다. 영국 최대 자유 공동체 환경 축제인 뉴캐슬 커뮤니티 그린 페스티벌도 매년 6월 리즈 파크에서 열린다.[2][3]

지리 및 기후[편집]

뉴캐슬은 잉글랜드 동북부의 타인위어주에 속하며 역사적으로는 노섬벌랜드주의 일부였다. 도시는 타인강의 북서쪽 강둑에 자리잡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국경에서 남쪽으로 74km 떨어져 있다. 지질학적으로는 석탄기에 형성된 미들 페나인 협탄층 위에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뉴캐슬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중세적인 거리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 스튜어트 마코니는 뉴캐슬을 영국에서 가장 잘 생긴 도시로 묘사했고 독일 태생의 영국 건축학자인 니콜라우스 페브스너는 그레이 스트리트를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거리 중 하나로 꼽았다. 도심 북서쪽에는 리즈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1873년 노동자 3,000명이 청원해 설립됐다. 뉴캐슬의 또 다른 녹색 공간은 도심 북쪽에 있는 타운 무어다. 런던의 유명한 하이드 공원과 햄스테드 히스를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크다.

뉴캐슬은 영국에서 가장 건조한 도시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기록된 최고기온은 1990년 8월의 32.5 °C이며 최저기온은 1982년 1월의 −12.6 °C이다. 주변 지역에 비해 따뜻하지만 대체적으로 서늘하고 추운 날씨를 보인다. 뉴캐슬의 여름 일조 시간은 영국의 모든 주요 도시들 가운데 가장 길다. 도시의 위도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과 거의 같고 스웨덴 남부 지역과 비슷하다.

역사[편집]

기록에 따르면 현재의 뉴캐슬에 해당하는 지역은 로마의 요새 폰스 아엘리우스(Pons Aelius)였다. 타인강 주변에 형성된 이 요새는 기원후 2년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성인 아엘리우스(Aelius)에서 비롯된 요새의 이름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학자들은 하드리아누스가 그의 브리튼 원정에서 직접 이 지역을 방문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당시 폰스 아엘리우스의 인구는 약 2,000명이었다. 유적으로 남아있는 하드리아누스 방벽은 북쪽에 거주하던 픽트인으로부터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지어졌다. 410년, 고대 로마의 브리튼 철수 이후 뉴캐슬은 강력했던 노섬브리아 왕국으로 흡수되었다. 이 때의 이름은 몽크체스터(Monkchester)로 알려져 있다. 876년 벌어진 데인인과의 충돌은 타인 강 일대의 정착지를 폐허로 만들었다.

1080년, 윌리엄 2세는 지정학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목조 성채를 건설하였다. 이후 새로운 성이라는 의미의 뉴 캐슬(New Castle)혹은 노붐 카스텔룸(Novum Castellum)으로 불리게 되었다. 1087년, 목조 구조물은 돌로 만든 성으로 대체되었다. 1088년의 반란에서 윌리엄 1세의 이복형제였던 바이유 주교 오도(Odo of Bayeux)는 몽크체스터를 파괴하였다.[ 파괴된 성은 1172년 헨리 2세의 통치 기간 동안 재건되었다. 이때 형성된 도시의 모습은 현재까지 많은 부분에서 보인다.

뉴캐슬은 중세 잉글랜드의 북단을 방어하는 요새 기능을 하였다. 13세기에는 스코틀랜드인을 차단하기 위해 7.6m 높이의 석조 방벽이 건설되었다. 14세기 동안 뉴캐슬은 세 차례에 걸쳐 스코틀랜드 침입자들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1530년 영국 왕실은 타인사이드의 석탄을 뉴캐슬 키사이드로 운반하는데 규제를 가했다. 규제는 뉴캐슬 지역의 석탄 카르텔에게 사업을 독점할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었다. 이는 뉴캐슬이 주요 지역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1538년에는 '석탄 지고 뉴캐슬간다'라는 속담이 처음 문헌에 등장하였다.

1630년대에는 전체 인구 20,000명 중 약 7,000명 가량이 흑사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렇게 도시의 방어력이 극도로 약화된 시기에, 마침 잉글랜드의 찰스1세가 펼친 종교정책에 반발한 스코틀랜드가 침공하여 뉴캐슬을 점령하였다. 그 평화협상 중에 스코틀랜드가 찰스 1세를 제껴놓고 잉글랜드의 의회주의자들과 협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세력을 잡게 된 것이 저 유명한 장기의회(Long Parliament)이다. 18세기 뉴캐슬은 런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에 이어 영국에서 4번째로 큰 인쇄 산업 중심지였다. 또한 고급 플린트 유리의 생산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1882년 뉴캐슬은 도시(City)로 승격된다. 19세기 뉴캐슬의 주요 성장동력은 조선산업과 중공업이었으며, 산업혁명의 중심역할을 했다. 산업혁명은 뉴캐슬의 도시화를 촉진시키고 현대식 기반 시설의 건설과 많은 발명품의 탄생을 불러왔다. 1842년에 4km 길이의 빅토리아 터널이 완공되었고 1879년 2월에는 모슬리 가(Mosley Street)에 가로등이 등장했다. 광부들을 위한 대비 안전등(Davy lamp), 비-로(Be-Ro) 밀가루, 최초의 현대식 스팀 터빈 그리고 널리 알려진 로버트 스티븐슨증기 기관차가 뉴캐슬에서 탄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선박과 군비 생산에 집중하자 이 지역도 공습의 대상이 됐다. 독일의 공습으로 141명이 사망하고 587명이 부상했다.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20세기 후반에도 계속됐다. 1983년 뉴캐슬 군용차량박물관과 1986년 스티븐슨 철도박물관이 개관했다. 그러나 군용 차량 박물관은 2006년에 문을 닫았다. 1886년부터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본부를 둔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는 1893년에 풋볼 리그 회원이 되었다. 2019년 '영국에서 가장 친근한 도시'로 뉴캐슬이 선정됐다.[4]

교통[편집]

경량전철인 타인 위어 메트로가 도시와 주변부를 잇는다. 뉴캐슬은 물론이고 선덜랜드로도 갈 수 있다. 런던 지하철, 글래스고 지하철과 더불어 영국에서 셋 밖에 없는 지하철(Rapid Transit) 중 하나이다. 도시규모가 더 큰 버밍엄이나 맨체스터의 경량전철과 달리 노면 공용 구간이 없어 Rapid Transit으로 분류된 것이다. 1980년 개통한 이래 현재까지 두 가지 노선이 운영 중이다.

뉴캐슬 국제공항이 있지만 가까운 유럽 휴양지 및 중소도시만 갈 수 있다. 유럽 외 취항지로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캐나다 토론토 등이 있다. 한국에서 가려면 직항 노선은 없고 에미레이트항공, 영국항공, KLM 등이 제공하는 경유편을 타야 한다.

경제[편집]

뉴캐슬은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 탄광, 조선, 엔지니어링, 군수 및 제조업의 선도적인 중심지였다. 20세기 후반 뉴캐슬의 중공업은 비중이 낮아졌고 지금은 사무실, 서비스, 소매업 등이 중심 산업이다. 뉴캐슬 시티 센터에는 몇 개의 주요 쇼핑 지역이 있다. 가장 큰 곳은 영국 최대의 도심 쇼핑단지 중 하나인 엘든 스퀘어 쇼핑센터다.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존 루이스 매장 뿐만 아니라 데벤엄스 백화점을 통합했다.

존 루이스 매장은 이전에 베인브릿지로 알려져 있었다. 1838년 문을 연 뉴캐슬 베인브릿지 매장은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꼽히곤 한다. 도시의 주요 쇼핑거리는 노스넘버랜드 스트리트다. 2004년 임대료가 가장 비싼 쇼핑 거리로 선정되기도 했다. 교외 쇼핑 지역은 고스포스와 바이커가 있다.[5]

관광[편집]

뉴캐슬어폰타인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타인 강을 가로지르는 게이츠헤드 밀레니엄 브리지. 배가 아래로 지나갈 수 있게 다리가 움직이는 도개교다. 다른 도개교와 다르게 위아래로 기울어지는 점이 포인트. 관광객들을 위해 매일 12시 정각에 다리를 움직여준다. 제분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발틱 현대미술관은 현지 문화와 관련된 미술 및 사진 전시회를 연다.

시내 중심가에 홍차로 유명한 얼 그레이 (찰스 그레이 2세 백작) 동상이 있다. 동상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강변까지 이어지는 그레이 가가 있는데 현대화 이전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줄지어 선 모습이 상당히 아름답다. 2010년대에 복합 문화공간 Stack이 개장했다. 술을 파는 주점들과 레바논, 일본, 이탈리아식 테이크어웨이 전문 식당, 버블티 카페, 그리고 뉴캐슬의 특징을 살린 수공예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있다. 그리고 벌써부터 힙스터 시티 소리가 나온다. 해리포터의 촬영지인 안위크성과 더럼 대성당이 위치해있다.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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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뉴캐슬어폰타인〉, 《위키백과》
  2. 뉴캐슬어폰타인〉, 《나무위키》
  3. 뉴캐슬어폰타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뉴캐슬어폰타인〉, 《요다위키》
  5. 뉴캐슬어폰타인(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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