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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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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
스트라스부르 위치

스트라스부르(프랑스어: Strasbourg, 독일어: Straßburg, 알자스어: Strossburi)는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도시로서 라인강의 서쪽 강변에 있는 도시이다. 알자스(Alsace) 레지옹 청사 소재지임과 동시에 바랭주(Bas-Rhin) 정부 청사 소재지이다.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수도'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1]

개요[편집]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라인강을 건너면 독일 도시인 케흘이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독일 문화가 혼재되어있는 도시로, 수세기 동안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문화적 가교였고 특히 현재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스트라스부르 대학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의 공존을 이루었다. 또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이슬람 예배 장소인 스트라스부르 그랜드 모스크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제조업과 공학의 중요한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도로, 철도, 수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 항은 독일 두이스부르크에 이어 라인강에서 두 번째로 크고 낭트, 루앙, 보르도에 이어 프랑스에서 네 번째로 큰 민물 항이다. 유럽 전체에서 교통의 요지이며, 라인강과 론강, 마른강을 잇는 운하가 시의 동쪽에서 합류하여 큰 하항을 이루는 동시에 육상교통도 발달하였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는 음식, 언어, 문화 등에서 독일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라인강 항법중앙위원회, 국제인권연구소와 같은 많은 비유럽 국제기구들의 소재지로 파리 다음으로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이 많이 개최되는 프랑스 제2의 도시이다. 스트라스부르는 알자스의 주요 도시로서 전통적 역할 외에도 유럽의회, 유럽평의회, 유럽인권재판소 등을 포함한 많은 유럽의 기관 소재지이기도 하다. 제네바, 뉴욕과 함께 수도가 아닌 도시로서 국제기구의 본부가 들어서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이다. 스트라스부르는 국립극장, 국립도서관과 대학도서관, 국립라인오페라 등 잘 알려진 문화 기관들이 포진해 있어서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스트라스부르는 교육의 도시이다. 스트라스부르 내의 대학들은 과감히 세계로 문을 개방하였는데, 20%가 넘는 외국학생 비율과, 100개국 이상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la cathédrale Notre-Dame de Strasbourg)과 특색 있는 동(洞)인 쁘띠뜨 프랑스(le quartier de la Petite France)등을 포함한 도시의 중심부는 198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독일의 경계에 위치해있다. 이 경계선은 라인강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도시의 동쪽 경계를 형성한다. 라인강을 건너면 독일 도시인 케흘이 나온다. 스트라스부르의 역사적인 중심은 라인강과 평행하게 흐르는 일 강의 그랑딜(Grande Île)에 있다. 이 두 강의 자연적인 흐름은 스트라스부르 하류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 합류하지만, 현재는 여러 개의 인공 수로가 도시 내에 연결되어 있다. 도시는 해발 132~151m의 북부 라인 평야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보주산맥의 고지대가 약 20km, 동쪽으로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가 25km 각각 떨어져 있다. 라인 계곡의 이 구간은 남북 이동의 주요 축으로, 라인강 자체의 하천 교통량이 있으며, 주요 도로철도가 양안에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파리에서 동쪽으로 약 397km 떨어져 있다. 라인강의 하구는 북쪽으로 약 450km, 또는 강을 따라서는 650km에 위치해 있다. 한편 스위스의 도시 바젤에서는 남쪽으로 약 100km, 뱃길로는 약 150km 거리에 있다.

스트라스부르 기후는 내륙 깊숙이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해양성으로 분류되지만, 서프랑스와 남프랑스의 온화한 패턴과 관련해 어느 정도의 해양적 영향력을 지닌 ‘유사 대륙성’ 기후로 분류된다. 이 도시에는 따뜻하고 비교적 화창한 여름과, 시원하고 흐린 겨울이 찾아온다. 강수량은 봄 중반에서 여름 말기로 가면서 증가하지만 연중 대체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연간 총 631mm에 이른다. 평균적으로 눈은 1년에 30일 동안 내린다. 보주산맥과 슈바르츠발트 산맥이 바람을 가로막는 라인 계곡에 자리 잡은 스트라스부르는 지형적 위치 때문에 자연 대류가 잘 되지않아 가장 오염된 프랑스 도시 중 하나다. 하지만 라인강 양안에 있던 중공업 시설이 점진적으로 사라졌고 도시 내부와 주변의 효과적인 교통 통제 덕분에 대기 오염은 감소했다.[3]

역사[편집]

스트라스부르는 원래 켈트족 마을이었고, 로마인 지배 하에서는 아르젠토라툼(Argentoratum)이라는 수비대 마을이었다. 아르젠토라툼의 로마 수용소가 기원전 12년에 처음으로 언급됐는데, 스트라스부르는 그로부터 성장해 1988년 2,000번째 기념일을 축하했다.

기원전 12년 로마인들은 일강과 브휘슈강(Bruche) 인근을 선택하여 후방 방어를 위한 작은 요새들을 세웠다. 이 요새는 몇 차례 파괴되고 다시 지어지고를 반복한 후 4세기경 벽돌로 된 이중 성벽이 완성되었고, 일강과 브휘슈강으로 둘러싸인 이 요새가 중세 도시 발전의 기원이 되었다. 5세기 프랑크족에 의해 점령됐는데, 그들은 스트라테부르굼(Strateburgum)이라고 불렀고, 거기에서 현재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게르만어로 ‘도로의 건널목에서’라는 뜻이다. 842년 최초의 프랑스어 문헌인 〈스트라스부르 맹약〉이 만들어졌다.

일강과 라인강 사이에 있는 북부 라인강 평야의 비옥한 이 지역은 이미 중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842년 서프랑크의 왕인 찰스 2세와 동프랑크의 왕 루이 2세가 이곳에서 ‘스트라스부르의 서약’을 맺었는데, 이는 고대 프랑스어로 쓰인 문서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스트라스부르는 추기경에 의해 통치됐는데, 그들의 통치는 873년과 982년에 더 강화되었다. 1262년 신성로마제국의 자유도시가 되었고 1322년에 세워진 시청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하였다. 이 시기 도시 확장과 함께 도시의 중심지가 현재의 구텐베르크 광장 쪽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14세기 말에는 도시의 서쪽과 북서쪽 외진 지역까지 새 성벽으로 보호하고자 성벽과 세 개의 게이트를 세웠고 이것이 현재의 포부르 나시오날(faubourg National), 포부르 드 피에르(faubourg de Pierre), 포르트 사베른느(porte Saverne)이다. 중세시기 마지막 도시 확장은 도시의 남동쪽, 지금의 크르트노(The Krutenau) 지구까지였다. 이 시기에 도시 미관상의 이유로 많은 수도원, 교회 및 묘지들이 철거되기도 하였다.

16세기 중반부터 도시는 시의 변두리 지역을 방어하고 수비 시스템을 구축하며 늘어나는 행정업무와 교역량을 감당하기 위해 새 건물들을 건축하는 등 도시를 전반적으로 정비하게 되었다. 15세기 말부터 도시 면적은 202헥타르에 달하게 되었고 이는 1871년까지 유지되었다.

스트라스부르의 주민은 개혁 이후 주로 개신교였으나, 30년전쟁(1618~1648년)의 종교적 갈등을 피해갔다. 1681년에 루이 14세의 군대에 의해 알자스가 정복된 후 프랑스 도시가 됐다. 프랑스 합병 이후 스트라스부르는 라인강 근처라는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전략적 거점으로 기능하였다. 1732~1743년에는 로앙 성(Palais Rohan)이 건축되었고 이 이후 여러 주택과 별장들에 고전주의 양식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혁명(1787~1799년)까지 특권을 유지했다. 1792년 프랑스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군인 루제 드 릴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라인 육군의 군가를 작곡했는데, 그 곡은 이후 ‘라 마르세예즈’로 알려졌다. 1833년 개통된 론-라인 운하(Canal du Rhône au Rhin)는 도시의 근대화를 가속화했다.

보불전쟁(1870~1871년)에서 독일군은 50일간의 포위 공격 끝에 스트라스부르를 점령하고 합병했다. 이 도시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1981년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1940년 알자스 지방이 독일에 합병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4년 동안 독일군 점령 하에서 알자스로렌 지방의 주도가 되었다. 1944년 알자스 지방은 다시 프랑스에 속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역사를 간직한 도시이자 국경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 유럽연합 주요 기관의 소재지로서 번영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는 1979년 유럽의회가 개원하면서 국제적인 지위를 얻었다. 2016년 스트라스부르는 그랑테스트지방의 바랭주 주도로 승격되었다.[4]

경제[편집]

스트라스부르는 무두질, 제분업, 금속업, 양조업 등이 오랫동안 이 도시에 존재해 왔지만 도시의 위치 때문에 1950년대가 되어서야 주요 산업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경제활동에는 식품 가공, 기계 및 전기공학, 제약, 전자, 플라스틱 제조 등이 포함된다. 또한 항구 구역에는 대형 자동차 조립 공장이 있다. 항만 자체는 라인강에서 가장 큰 곳 중 하나이며 석유, 농산물, 건축자재의 운송을 담당하고 있다.

교통[편집]

열차가 시내 중심부의 스트라스부르역에서 동쪽으로 독일의 오펜부르크와 칼스루헤까지, 서쪽으로 메츠와 파리를 거쳐 남쪽으로 바젤까지 운행된다. 스트라스부르는 2007년 TGV Est (파리~스트라스부르)의 1단계, 2012년 TGV 랭론(스트라스부르~리옹)의 2단계, 2016년 7월 TGV Est의 2단계 등 최근 TGV 네트워크와의 연결로 인해 연계성이 향상되었다.

스트라스부르에는 자체 공항이 있어 유럽 및 북아프리카의 주요 지역뿐만 아니라 프랑스 국내 각 지역으로도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994년에 개통된 미래형 스트라스부르 전차가 있으며, 총 길이 55.8km의 6개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500km가 넘는 자전거 도로가 있어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면 편리하다.[5]

관광[편집]

로마 직속의 주교관할구이며, 고딕 양식의 노트르담 대성당, 18세기 건립된 이래 현재는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로앙 추기경의 저택, 기타 중세풍의 가옥 등이 있다. 1988년 대성당 중심의 역사 도심인 그랑딜이 ‘스트라스부르 옛 시가지(Strasbour-Grand-Île)’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이후 1871~1918년까지 독일이 설계하고 건축한 신시가지 노이슈타트(Neustadt)도 2017년에 확장되어 포함되었다.

그 외에도 장미창, 황제의 창 등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스트라스부르 노트르담대성당, 쁘띠프랑스(Petite France), 보방댐(Barrage Vauban)과 전망대, 구텐베르크광장, 쿠베르교(Pont Couverts), 끌레베르 광장(Place Kléber), 로앙성, 오랑주리 공원(Parc de l'Orangerie) 등이 주요 명소이다.

지도[편집]

서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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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스트라스부르〉, 《위키백과》
  2. 스트라스부르(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스트라스부르(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4. 스트라스부르〉, 《요다위키》
  5. 스트라스부르〉,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국가
서유럽 도시
서유럽 지리
지중해
서유럽 문화
서유럽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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