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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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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초기 공원인 탑골공원

공원(公園)은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가 공중의 보건・휴양・놀이 등을 위하여 마련한 정원, 유원지, 동산 등의 사회 시설을 말한다.[1]

공원의 기원[편집]

경기장도, 주차장도 파크다. 파크의 어원은 울타리 등의 경계로 둘러싸인 공간을 뜻한다

우리말로 공원이라고 번역되는 영어 단어 파크(park)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 그대로 공원을 뜻하기도 하고, 스포츠 경기장을 뜻하기도 하며, 주차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파크의 어원은 고대 서부 게르만어인 파룩(parruk)이다.

파룩은 울타리 등의 경계로 둘러싸인 공간을 뜻하는데, 특히 들을 묶어 두던 장소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가 현대로 이어져 주차장을 뜻하기도 하고, 관중석으로 둘러싸인 운동장을 뜻하기도 하는 단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파크가 왜 공원을 뜻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서구의 공원은 중세 영국 왕족 등 귀족들의 사냥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우세하다. 사슴, 토끼, 여우 등 사냥감을 넓은 울타리에 가두어 사냥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을 헌팅 파크(hunting park)라고 불렀는데, 울타리로 감싼 공간이기에 파크라 부르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런던의 유명한 하이드 파크는 1536년 헨리 8세가 사냥터로 만든 곳이다. 당시에는 귀족의 영지이기도 했거니와 계급이 유별했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은 제한되었다.

그러다가 근대로 넘어오면서 도시가 확대되어 여러 헌팅 파크 주변이 시가지로 개발되기 시작했고, 동시에 시민권이 성장하면서 일반에게 넓은 사냥터를 개방하여 공공공간(public space)으로 이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현대적 공원의 시초이다.

즉 헌팅 파크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이 된 시대 상황에 따라 파크에 공원이라는 개념이 포함된 것이다. 지금이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도시공원의 등장은 앙시앵 레짐의 붕괴와 현대 민주사회의 도래를 상징한다.

19세기, 급속한 산업화와 인구 성장으로 인한 극악한 도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서구에서는 도시 안에 크고 작은 공원들을 배치하였다. 뉴욕의 사례를 살펴보면 1821년에서 1855년 사이 인구가 네 배 이상 증가하였는데, 덕분에 시민들은 극심한 공해에 시달리게 되었으나 이를 완화할 오픈스페이스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시민들은 쾌적한 여가 공간의 확충을 요구하였고 시 당국은 1857년 315ha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였는데 이것이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의 시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현재 자유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만국공원이 1880년대에 인천 조계지를 차지하고 있던 열강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우리 정부에 의해 계획되고 설치된 최초의 공원은 1897년 옛 원각사 터에 건설된 탑골공원이다.

비록 공원 본연의 기능과 공공적 필요성이 아니라 신문물 도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지만, 탑골공원이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공원과 민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듯하다. 사람들을 모으는 공공공간의 의의일 것이다.

루카이투-시데리스와 바너지(A. Loukaitou-Sideris & T. Banerjee)는 공저 <어번 디자인 다운타운(Urban Design Downtown)>에서 공원 등 공공공간을 포함한 공공영역(public realm)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첫째, 정치적 활동과 정치적 표현을 위한 포럼의 기능이며, 둘째, 시민이 서로 융화되는 사회의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을 위한 중립 또는 공동의 장으로서의 기능이며, 셋째, 사회적 학습, 개인의 발전 그리고 정보 교류를 위한 활동 무대로서의 기능이다.

현대 도시계획에서 공원의 배치는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장은 10년 단위로 공원녹지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공원의 확충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도시지역 안에는 1인당 6 이상의 도시공원을 확보해야 하며, 구릉지 등 녹지지역을 제외한 도시공원이 1인당 3㎡ 이상이 되도록 관련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2]

공원의 종류[편집]

지리산 국립공원 모습

우리나라의 공원은 자연공원과 도시공원으로 분류되며 자연공원은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으로 이루어진다.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에 지정되며, 도립공원은 특별시, 광역시, 도 및 특별자치도에서, 군립공원은 시, 군 및 자치구의 자연생태계나 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에 지정된다.

1967년 12월 29일 지리산 일대 440.5가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2016년 현재 22개소의 국립공원이 지정 운용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리산, 계룡산, 설악산, 속리산, 한라산, 내장산, 가야산, 덕유산, 오대산, 주왕산, 북한산, 치악산, 월악산, 소백산, 월출산, 무등산, 태백산 등 17개의 산악육지공원과 태안해안, 다도해 해상, 변산반도, 한려해상 등 4개의 해상공원, 그리고 사적공원인 경주국립공원으로 이루어진다.

1970년 6월 금오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남한산성, 변산반도, 모악산 도립공원 등 22개 도립공원이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변산반도, 월출산, 치악산 도립공원이 각각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으며, 화양동계곡은 속리산국립공원에 병합되었다. 현재 도립공원은 19개로서 대체로 산악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총면적은 714.9㎢에 달한다.

군립공원은 1980년대부터 지정되기 시작하여 1981년에 처음으로 전라북도 순창의 강천산이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 이후로 1998년 현재 29개소가 지정되었다.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의 대부분이 산지이듯이 군립공원도 산지가 대부분이나 바위, 성(城), 계곡, 사찰, 온천, 조각 활동지역 등 매우 다채롭다. 전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과 전 국토 공원화 운동의 일환으로 1개군 1개소 군립공원 지정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도시공원은 그 기능 및 주제에 따라 생활권공원과 주제공원으로 분류된다.

생활권공원은 도시생활권의 기반공원 성격으로 설치 관리되는 공원으로서 소공원, 어린이공원, 근린공원으로 나뉜다. 소공원은 소규모 토지를 이용하여 도시민의 휴식 및 정서함양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치되며, 어린이공원은 어린이의 보건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치하는 공원이며, 근린공원은 근린거주자 또는 근린생활권으로 구성된 지역생활권 거주자의 보건, 휴양 및 정서생활의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공원이다.

주제공원은 생활권공원 외에 다양한 목적으로 설치되는 공원으로서 역사공원, 문화공원, 수변공원, 묘지공원, 체육공원 등으로 이루어진다. 역사공원은 도시의 역사적 장소나 시설물, 유적·유물 등을 활용하여 도시민의 휴식과 교육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공원을 말하며 문화공원은 도시의 각종 문화적 특징을 활용하여 도시민의 휴식과 교육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공원이며 수변공원은 도시의 하천변, 호수변 등 수변공간을 활용하여 도시민의 여가와 휴식을 목적으로 설치하는 공원이다. 그리고 묘지공원은 묘지이용자에게 휴식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역 안에 일정한 묘지와 공원시설을 혼합하여 설치하는 공원이며 체육공원은 주로 운동경기나 야외활동 등 체육활동을 통하여 건전한 신체와 정신을 배양함을 목적으로 설치된다.[3]

서울 자연명소 공원 TOP5[편집]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수려한 자연경관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고, 쾌적한 탐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78.5㎢,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공원 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도시지역에 대한 녹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수도권 주민들의 자연 휴식처로 애용되어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 명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다.

북한산국립공원은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바위봉우리 사이로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으며 1억 7천만년전에 형성되었다, 그 속에 1,3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숙종 37년(1711년)에 축성한 북한산성과 고려 때 창건한 중흥사(重興寺)・조선 중종 때 신월 선사가 창건한 화계사(華溪寺)・신라의 고찰 승가사(僧伽寺)・진관사(津寬寺)・망월사 등의 유적지가 있다.[4]

창덕궁

창덕궁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창덕궁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이라는 점과 한국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개성의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 지형에 맞추어 산자락에 지어졌다. 보통 궁궐은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되지만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생긴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궐의 기능을 배치하였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의도적으로 훼손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5]

한강공원

한강공원은 한강을 옛날과 같이 깨끗한 강으로 되살리자는 목표로 만든 공원이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만들어서, 한강의 서울지역 41.5km의 구간(하일동-개화동)이 평균 수심 2.5m, 강 너비 1km의 강으로 변했다. 아울러 강변에 시민 휴식공원, 축구장, 배구장, 농구장, 수영장, 게이트볼장, 체육시설, 자연학습장, 수상스키장, 수상택시 승차장, 요트장, 보트장, 낚시터, 주차장 등을 갖추어 시민들의 오락・휴양지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6]

남산공원

1940년 3월 12일 남산 일대가 공원으로 지정되어 1968년 9월 2일에 개원하였으며 1991년부터 8년간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으로 공원 내 부정적 시설 89동을 이전하고 중구 예장동, 회현동, 용산구 한남동 일대를 대대적으로 복원 정비하여 시민의 공원이 되었다. 현재 서울특별시에 소재한 공원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원이다.

남산공원은 크게 장충지구, 예장지구, 회현지구, 한남지구의 네 개의 지구로 나뉜다. 먼저 장충지구는 장충단이 있는 장충단공원 일대를, 예장지구는 와룡묘가 남아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 일대를, 회현지구는 과학교육원과 남산도서관, 안중근의사기념관 일대가 들어선 지역을, 한남지구는 남산 제모습 찾기 운동으로 주택 철거 후 야외식물원을 조성한 지역을 말한다. 이밖에도 분수대 2개소, 야생화공원, 남산전시관, 팔각정, 서울타워, 케이블카, 놀이터, 주차장 등의 시설이 포함된다.

남산공원의 식물로는 85과 552종, 초본 42과 187속 361종, 목본 43과 93속 191종이 있으며 주요 식물로는 신갈나무, 아까시나무, 팥배나무, 산벚나무, 소나무, 잣나무, 단풍나무 등이 있다. 남산공원의 야생동물도 7목 26과 61종에 달한다.

서울타워 전망대에서는 맑은 날에는 인천 앞바다까지 볼 수 있으며, 각종 시설은 자연탐구와 운동, 생활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휴식 등 도심 속의 정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7]

청계천

청계천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내부에 있는 지방하천으로, 한강 수계에 속하며 중랑천의 지류이다. 최장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백운동 계곡'이며, 남으로 흐르다가 청계광장 부근의 지하에서 삼청동천을 합치며 몸집을 키운다. 이곳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서울의 전통적인 도심지를 가로지르다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옆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든다.

발원지에서부터 잰 본류의 길이는 10.92km, 유역면적은 50.96km²나, 백운동 계곡 언저리를 제외한 상류 2.50km 구간은 일제강점기 이래 전면 복개되어 타 용도로 전용되는 등 사실상 하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현재는 서울 이곳저곳에서 취수한 물을 중류의 청계광장에서 하루에 40,000m³씩 인공적으로 방류하는 형태로 하천을 유지하고 있다.

발원지의 계곡은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청계광장에서 중랑천 합수머리까지의 중・하류 8.12km 구간은 서울시설공단의 관리하에 공원으로 쓰인다.[8]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공원〉, 《네이버국어사전》
  2. 강세진, 〈하이드파크, 센트럴파크, '공원'의 기원〉, 《오마이뉴스》, 2016-06-02
  3. 공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북한산〉, 《위키백과》
  5. 창덕궁〉, 《위키백과》
  6. 한강공원〉, 《위키백과》
  7. 남산〉, 《위키백과》
  8. 청계천〉,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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