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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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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학 자일상용차 회장
자일대우상용차㈜(Zyle Daewoo Commercial Vehicle Co., Ltd.)

백성학은 한국의 사업가이며 영안모자그룹의 회장이고 OBS(경인TV) 이사회 의장이며 숭의학원 전 이사장이다. 6.25 전쟁 시절에 전쟁고아로 지내다가 19세 되는 1959년 2월에 영안모자 상사를 차렸으며 수십년간의 노력을 거쳐 영안그룹을 육성하였다. 영안그룹은 산하에 클라크, 자일대우상용차㈜, OBS 경인TV 등 7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2019년부터 경영권을 세 아들에게 맡기고 백학재단을 통한 봉사활동을 추진하면서 만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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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백성학은 1940년 4월 18일에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단장시(牡丹江市) 무링현(穆稜縣) 싱위앤진(兴源镇)에서 신흥백화점을 운영하던 백동원(白東元)과 김숙녀(金琡女)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조부 백운휘(白雲輝) 장로는 3·1운동 당시 신의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되었다가 탈옥(脫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1944년 7월에 장티푸스로 아버지를 잃고 1945년 10월에 할아버지를 따라 평안북도 용암포로 갔으며 할아버지는 그 곳에서 벽돌공장 등의 6개 사업체를 운영하였다. 1946년에 북한 공산당 정권으로부터 가정신분을 부르조아로 분류받아 자산을 몰수당했으며 1949년에 용암포 일대에 장티푸스가 유행되면서 그 해 가을에 함경도 원산으로 이주하였다. 인민학교 3학년 재학 중인 1950년에 6.25전쟁이 폭발하였으며 원산광석교회 신도들이 남쪽으로 피란가는 것을 전송해주다가 사고로 인해 원치 않게 남쪽으로 가게 되었다.

전쟁고아가 되면서 생존으로 부대를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심부름도 하였고 그러다가 부상도 입으면서 1955년 2월까지 지냈고 그 뒤에 서울에서 남학생 모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마룻바닥을 쓰는 일들을 하였다. 18살 때 공장 하나와 판매점포를 관리하는 자리까지 올랐으며 19살 때(1959년 2월) 조그마한 가게를 임대하여 청계천 4가 개천가에 노점 형태의 모자점을 차리고 자립을 하였다.

수년간의 노력을 거쳐 1964년에 영안모자는 모자 생산업체로 성장하였으며 같은 해 가을에 한국 의상업계 처음으로 대중광고를 시작하였다. 1965년 지금의 코트라(KOTRA)가 수출 진흥으로 조직한 산업박람회를 계기로 일본에 수출을 시작하였으며 1967년에 미국시장도 개척하였다. 1972년에 미국시장에 영안 브랜드를 런칭하였으며 1975년에 미국법인 에더위스트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경영을 시작하였다. 1967년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 말까지 한국에 5개 공장을 설립하였으며 1978년 12월 기준으로 연간 수출액은 1000만 달러를 초과하고 고용하는 종업원 수도 1,500명 수준을 이루었다. 1980년에 진입하면서 한국 인건비의 부담과 수출쿼터의 피면으로 해외진출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1985년 코스타리카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경험을 모색하면서 안정화를 이룬 뒤에 1988년에 스리랑카, 1989년에는 방글라데시에 해외공장을 설립하였다.

코스타리카에서 모자 사업을 추진하다가 1992년에 현지 버스업체 마우코와 손을 잡고 버스 사업에 진출하였으며 1995년에 마우코의 지분을 인수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2003년에 한국의 대우버스와 미국의 클라크지게차가 매물로 나왔으며 이 때 마우코를 통해 자동차와 중공업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진 백성학은 인수전에 뛰어들어 대우버스와 클라크지게차를 인수하였다. 이 시기에 영안은 매출 1조 클럽에 들어섰다.

대우버스와 클라크지게차는 인수 후 3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였으며 대우버스는 세계 80여개 나라를 대상으로 버스를 공급하면서 영안모자 계열사 가운데 가장 많은 실적을 내는 회사로 탈바꿈하였다.

영안모자는 2012년에 버스판매회사 자일대우자동차판매을 인수하고 버스판매와 렌트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04년과 2010년에 쌍용자동차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지만 접전 끝에 중국 상하이자동차와 인도 마힌드라 그룹을 이기지 못했다.

이 외에도 1999년에 삼풍백화점 붕괴로 어려움을 겪던 이준 삼풍백화점 회장으로부터 숭의학원을 인수하고 교육사업에 진출하였다. 2006년에 OBS 경인TV 사업권을 인수하고 미디어 사업에 진출하였다. 1972년부터 소와 말을 키우는 원주목장을 운영하기 시작해 포천목장, 금곡목장, 제주 양지목장까지 확장하였으며 2010년에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와나링에도 목장을 세웠다.

2019년에 경영권을 내놓고 세 아들에게 경영을 맡겼으며 그 뒤로는 백학재단을 통한 봉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영안모자가 세계 모자업계 1위 기업으로 자리잡으면서 백성학은 '세계의 모자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1][2][3][4]

거론 사건[편집]

□ 자일상용차 인력정리 사건

자일자동차는 2020년 8월에 필수인원 4명을 제외한 전체 노동자들에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386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회사가 부당해고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1년 5월 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자일상용차는 2020년에 전년 23억원 영업손실 대비 3.1배가량 확대된 72억원의 영업손실을 보았으며 같은 기간에 매출액도 전년 3,265억원에서 61% 감소한 1,273억원에 그쳤다. 실적의 급감은 코로나 19사태의 영향으로 관광과 대중교통 등 버스소요의 침체에서 이루어졌다. 지난해 자일대우의 단기차입금은 1,948억원으로 전년(1,076억원) 대비 81.0%나 증가했으며 같은 기간에 유동자산은 756억원, 유동부채는 2,695억원 등으로 유동비율이 356.5%에 달했다. 완성차 업계를 비롯한 제조업계에서 유동비율이 200%를 넘을 경우 재무상태가 불안정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을 고려할 때, 자일대우의 재무 상황은 경영악화 상태에 처해있다.

자일상용차는 2020년 3월에 적자누적을 사유로 울산공장을 폐쇠하고 해외법인인 베트남공장에서 버스를 생산해 국내에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2020년 7월 중순부터 2021년 4월 8일까지 10개월간 휴업중이다. 더 큰 문제는 위기를 극복할 대책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2020년에 국내 고객사가 이미 발주한 558대 중 208대를 베트남공장 생산차량으로 계약을 변경하도록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노조는 5월 본사 관할 인천지법 부천지원에 이를 막아달라는 가처분신청을 냈고, 법원은 7월 "단체협약에 따른 노사합의 없이 부품 국외반출, 울산공장 수주·생산 전면중단, 국외공장 생산 버스의 국내 역수입·판매 등을 모두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외에도 노조는 자일상용차의 폐업을 저지하기 위해 울산 시민단체와 정당들을 모아 울산시정부를 대상으로 "울산시에서 자일대우상용차 매각을 돕고 폐업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구체적으로 대우버스의 투명 공개 매각을 위한 노·사·민·정 협의기구를 구성하고 상용차부문 미래차 전략산업 육성 로드맵 수립 등이 요구내역이다.[5][6]

각주[편집]

  1. 박수호 기자, 〈(창간 35주년 기획) 당대 매출 1조클럽 기업가-(17)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모자로 시작해 버스·지게차까지〉, 《매일경제》, 2014-10-27
  2. 이동현, 〈원산출신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의 미군병사와의 인연〉, 《네이버블로그》, 2019-07-03
  3. 전수용 기자, 〈여든 앞둔 모자王, 그는 오늘도 찢어진 500원 지폐를 꺼내본다〉, 《조선비즈》, 2019-12-10
  4. 임주연 기자, 〈(Who Is ?)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비즈니스포스트》, 2017-08-24
  5. 박향주 금속노조 기자, 〈"울산시, 대우버스 매각 도와 노동자 지켜라"〉, 《노동과세계》, 2021-05-14
  6. 최동훈 기자, 〈3년연속 적자 자일대우상용차, 회복 가능할까〉, 《이코노믹리뷰》, 2021-05-07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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