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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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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산맥은 남한과 북한을 연결하는 산맥이다.

철령고개[편집]

  • 철령은 높이 685m. 고개의 북쪽을 관북지방, 동쪽을 관동지방이라고 한다. 서울과 관북지방 사이, 회양과 고산, 안변을 연결하는 교통·군사상의 중요한 고개였다. 고산은 고개 북쪽, 회양은 고개 남쪽에 발달한 영하취락(嶺下聚落)이다. 1914년 추가령구조곡(楸哥嶺構造谷)을 따라 경원선이 부설되면서 이용 빈도가 감소하였다.
  • 철령에는 지금도 석성(石城)터가 남아 있고 부근에 고음폭포(鼓音瀑布) ·취적5경(吹笛五景) 등이 있다. 서쪽의 풍류산(風流山)과 동쪽의 장수봉(將帥峰)이 천하의 난관을 이루며 북한강과 안변 남대천(安邊南大川)의 수원이다. 1388년(우왕 14) 명나라가 철령 이북은 본래 원나라 땅이라 하며 요동(遼東) 관할하에 두겠다고 통보해오자, 고려에서는 이에 반대하고 철령뿐만 아니라 그 이북의 공산령(公山嶺)까지도 본래는 고려의 영토라 하여 요동정벌을 결의하였다.

철령위[편집]

  • 철령위(鐵嶺衛)는 1387년(우왕 13), 명나라의 요동도지휘사사(遼東都指揮使司)에 소속된 위소(衛所) 가운데 하나로, 명이 고려의 철령 이북 땅에 설치하고자 하였던 직할지이다. 1387년에 명나라에서 과거 원나라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 소속 인호(人戶)를 직접 관할하고자 철령위를 설치하였는데, 고려 측은 이를 해당 지역의 영토를 차지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하여 1388년에 요동을 공격하게 되었다.
  • 고려와 명나라는 명나라 측의 무리한 공물(貢物) 요구 등으로 오랫동안 갈등을 겪어 왔다. 명의 철령위 설치 시도는 양국 관계를 대규모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악화시켰으나, 결국 위화도회군으로 사태는 봉합되었다. 이 일련의 사건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명나라 역시 고려의 강경한 자세를 확인하고 철령위의 치소를 요동으로 옮기며 기존의 주장을 철회하였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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