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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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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문경새재는 조선 시대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던 사람들의 주요 통행로였던 영남대로에 있는 고개이다.

개요[편집]

  • 문경새재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에 있는 고개이다. 2007년 12월 17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개척한 관도로 영남에서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며 정상 높이 642m의 고개이다. 주흘산과 조령산이 이루는 험준한 지형은 국방상으로 중요한 요새이며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임진왜란 이후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3개의 관문과 부속성, 관방시설 등을 축조하였다. 새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설과 하늘재와 이우리재(이화령) 사이(새)에 있는 고개라는 설이 있다. 한편 옛 문헌을 인용하여 초점(草岾), 즉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라는 주장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으며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다녔던 과거길이 남아있다. 또한 주변에 여궁폭포, 용추계곡 등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원터, 교구정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들이 옛 모습을 지니고 있어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산42-8번지 일대 주변 3,768,307㎡의 구역이 2007년 12월 17일 명승으로 지정되었다.[1]
  • 문경새재는 조선의 옛길을 대표하는 관도(官途)로,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과거길에 나서는 선비들이 주로 이용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의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새들도 쉬어넘는 힘든 고개'라는 뜻의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태종 14년(1414)에 문경새재 계곡을 따라 제3관문(조령관)까지 650m의 고갯마루를 개척해 문경에서 괴산, 연풍을 잇는 대로(大路)가 개통되었다. 조선시대 영남대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 기능을 했다. 문경새재는 산성을 쌓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사적 제147호)과 국립 여관에 해당되는 원(院)터 등 주요 관방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정자, 주막터, 성황당 그리고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다.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조선 최고의 옛길이다. 문경새재 일대는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숲길 등 경관 가치가 뛰어나다.
  • 문경새재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문경새재도립공원에 있는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재이다. 1974년에 지방기념물 제18호, 1981년 6월 4일에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지난 1999년부터 학술연구용역 및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체계적으로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고 2007년 10월 18일 개장했다. 예로부터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였다. 문경새재 길은 부산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최단거리였다. 특히, 영남지방의 선비들은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질까 봐,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질까 봐 가지 않고, 문경새재를 통해서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고 한다. 예로부터 한강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뒤에 제 1관문 주흘관, 제 2관문 조곡관, 제 3관문 조령관의 3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관문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 출장을 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의를 제공했던 조령원터, 도적들이 숨어 있다가 지나는 사람들을 덮쳤다는 마당바위, 조선 시대 구 경상감사가 신 감사에게 업무를 인수인계해주던 교귀정이 있다. 또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산불됴심(산불조심)'이 적힌 표지석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어로 된 한글 비석 4점 가운데 국한문 혼용이 아닌 것은 이 비석이 유일하다.[2]
  • 문경새재는 백두대간을 넘어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를 연결하는 고갯길이며, 조선 시대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던 사람들의 주요 통행로로 영남대로에 자리하고 있다. 새재는 예로부터 백두대간 북쪽의 한강과 백두대간 남쪽의 낙동강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고개로 알려져 있다. 이 고갯길이 처음으로 개통된 것은 1413년이다. '새재'라는 이름은 다양하게 해석된다. 고개가 매우 높아서 날아가던 새도 넘어가기 힘들어 잠시 쉬어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고갯길을 따라 흐르는 초곡천 변에서부터 고개까지 억새가 많이 자란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하늘재와 이화령의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의미, 새롭게 만들어진 고개라는 뜻도 담겨 있다.

문경새재 문화재 설명[편집]

  •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 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의 역할을 했다.
  • 문경새재는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숲길 등 경관 가치가 뛰어나며, '옛길 걷기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 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 문화를 향유 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문경새재 책바위(聞慶-冊-)[편집]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에 있는 돌무더기로 여기에 소원을 빌면 장원급제 한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자녀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이 찾고 있다. 조령관에서 조곡관 방향으로 500여m 떨어진 지점에 있다.
  • 옛날 어느 부자집에 자식이 없어 하늘에 치성을 드려 어렵게 아들을 얻었으나 몸이 허약해 공부도, 일도 할 수 없었다. 이에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 끝에 유명한 도인을 만나 물으니, 집터를 둘러싼 돌담이 아들의 기운(氣運)을 누르고 있으니 아들이 직접 담을 헐어 그 돌을 문경새재 책바위 뒤에 쌓아놓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일렀다. 이 말을 듣고 아들은 돌담을 헐고 삼 년에 걸쳐 돌을 책바위까지 날랐더니 어느새 몸이 건강해졌으며, 공부도 열심히 하여 장원급제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오래전부터 과거를 보기 위해 이곳을 지나던 선비들이 책바위 앞에서 장원급제를 빌었다고 하며 지금도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어 가족의 건강과 자녀들의 성적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이 찾고 있다. 특히 입시철에는 자녀의 합격을 염원하는 부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문경자연생태박물관(聞慶自然生態博物館)[편집]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문경새재도립공원 내에 있는 생태자원 및 생물자원 전문 공립박물관이다. 문경새재 일원의 생태자원 및 생물자원을 연구하고 전시하고자 2007년 10월 18일 개관하였다. 기존 명칭은 문경새재 자연생태전시관이었으나 2015년 12월 29일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 후 문경자연생태박물관으로 변경하였다. 건물은 지상 2층으로, 건물 총면적 3,643㎡, 부지면적 63,057㎡의 규모이며,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1,300점 이상의 박제표본, 암석, 광물 영상, 모형 등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2층의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실 및 1층의 신재생에너지 전시관과 특별전시실이 있다.

문경새재자연생태공원(聞慶-自然生態公園)[편집]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 도립공원 일원에 있는 자연생태공원이다. 자연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으며 다양한 생물종을 보유한 문경새재 일원의 생물자원을 연구하고 전시하기 위해 2007년 10월 18일 문을 열었다. 탐방객들이 자연관찰과 생태체험이 가능하도록 39,452㎡의 부지에 식물자원을 서식지별로 분류하여 습생초지원, 생태습지, 생태연못, 건생초지원, 야생화원 등을 조성하였다. 교목, 관목, 화초류 등 175종 206,895본의 식물이 있다.
  • 문경새재 도립공원 입구에 있는 자연생태전시관은 3,643㎡, 2층 건물에 전시공간을 마련하여 신재생에너지와 문경의 생태자원 및 자연환경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별도로 63,057㎡의 부지를 마련하여 풍력발전시설과 태양광발전시설, 자연채광시설 등이 어떤 원리로 전기를 생산하고 사용 가능하게 되는지를 체험할 수 있게 하였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하초리 243번지, 문경새재 도립공원 안에 있다.

문경새재계곡(聞慶─溪谷)[편집]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일원의 문경새재도립공원에서 흐르는 계곡이다.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제1관문(주흘관), 제2관문(조곡관), 제3관문(조령관)을 따라 죽 이어지는 계곡이다. 계곡에는 높이 20m의 3단 폭포인 조곡폭포를 비롯해 팔왕폭포(용추폭포), 조곡약수, 꾸구리바위 등이 있다.

문경새재도립공원(聞慶─道立公園)[편집]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上草里) 일원의 새재를 중심으로 지정된 도립공원이다. 면적은 5.3㎢이다. 1981년 6월 4일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풀이 우거진 고개[草岾]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로 했다는 설과 새로[新] 생긴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로 지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 문화유적으로는 조령산불됴심표석(경북문화재자료 226), 옥소권섭영정(문화재자료 349), 조령원터, 동화원터, 혜국사, 용화사지, 보제사지, 안정암지, 은선암지, 충렬사, 교귀정, 대궐터, 군막터 등이 있다. 또 하늘재·이화령·주흘산·조령산(1,026m)·부봉(916m), 여궁폭포·용추폭포·조곡폭포, 기름틀바위·마당바위, 조령약수·조곡약수 등 산봉과 폭포, 계곡과 기암, 약수 등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초곡천(草谷川)[편집]

  • 경상북도 문경시 북부에 있는 새재 계곡을 흐르는 하천으로 지방 2급 하천이다. 경상북도 문경시의 도립공원인 문경새재의 계곡을 흐르는 하천으로 지방 2급 하천이다.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주흘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흐르다가 조령천과 합류한다. 유로연장 12.4㎞이며 유역면적은 50.19㎢이다.
  • 낙동강수계이며 낙동강의 제2지류인 조령천에 이어지는 제3지류이다. 도립공원이며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된 문경새재에 있어 각종 생명 관찰학습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궁폭포(女宮瀑布)[편집]

  • 문경새재 내에 있는 폭포로 주흘산으로 오르는 혜국사 옛길에 있다.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을 지나서 주흘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따라 800여m를 오르다 보면 혜국사 못미처에 있다. 폭포는 보이지 않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 오르면 갑자기 높이 치솟은 절벽이 막아서며 약 20m의 높이에서 바위와 바위 사이 좁게 파인 홈으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좁고 길게 쏟아진다.
  • 밑에서 올려다보면 생긴 모양이 여인의 하반신과 흡사하여 여궁폭포라 이름 지었다고 하며 여심폭포라고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파랑소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목욕하던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폭포 주변의 멋진 노송들과 기암절벽의 풍치가 어우러져 수려한 경관을 이룬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산35 번지에 있다.

현감 홍로영 불망비(縣監 洪魯榮 不忘碑)[편집]

  • 문경현감을 지낸 홍로영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세운 비로 문경새재에 있는 비석 중 유일한 철비(鐵碑)이다. 문경새재 주흘관에서 조곡관 방향에 있는 선정비군 중 무쇠로 만든 철비(鐵碑)이다. 문경현감을 지낸 홍로영의 공적을 치하하기 위해 1826년(순조 26)에 건립한 것이다. 다른 비석들이 대부분 돌로 제작된 것인데 비해 주물기법으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철비(鐵碑)이다.
  • 개석(蓋石)과 비신(碑身)은 주물기법으로 제작되었으며 돌로 만든 대좌 위에 올려놓았다. 비문은 "현감홍후로영영세불망비(縣監洪侯魯榮永世不忘碑)"라고 양각(陽刻)하였다. 비신의 높이는 156㎝, 너비 68㎝, 두께 30㎝이며 대좌의 크기는 가로 130㎝, 세로 58㎝, 높이 30㎝이다. 홍로영은 1824년에서 1827년까지 문경현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문경을 지키다 순국한 신길원 현감을 배향한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문경새재의 관문[편집]

  • 문경새재에는 사적 147호로 지정된 3개의 조령 관문(鳥嶺 關門)이 있다. 관문은 국경이나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에 설치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검문하고 물품을 조사하던 곳이다.
  • 문경새재 초입에 있는 제1관문 주흘관(主屹關)은 조선조 숙종 34년(1708)에 축성되었으며 초곡성이라고도 한다. 영남은 조선 시대 때 경제적,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영남으로 통하는 문경새재 고갯길은 일본과 조선의 사신들이 왕래하는 정치 및 통상로이고 특히 군사적으로 중요하여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설관하고 축조한 관문 및 산성이 있는 곳이다.
  • 제2관문 조곡관(鳥谷關)은 3개의 관문 중 제일 먼저 설관, 축성된 관문이다. 임진왜란 중인 선조 27년(1594)에 당시 영의정인 서애 류성룡이 간하고 수문장인 충주 사람 신충원이 축성하였다 한다. 문경이 무너지면 충주가 무너지고 충주가 무너지면 도성(한양)을 지킬 수 없다는 군사 전략적인 이유로 급히 세운 곳이다. 원래 이름은 중성, 조동문, 주서문이라 하였다가 후에 조곡관이라 하였으며 주흘관과는 114년의 시차가 있다.
  •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은 주흘관과 같은 시기에 축성된 관문으로 경상도충청도, 영남지방과 기호지방,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의 경계 지점이며 영남지방이 조령의 남쪽이란 뜻이니 여기서부터 영남지방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리고 제1, 2관문은 남쪽 적을 방어하기 위해 남쪽으로, 제3관문은 북쪽 오랑캐를 방어하기 위해 북쪽으로 세워져 있다. 그래서 문경새재 관문과 조령산성 안은 하나의 요새로서 안전지대가 되는 곳이며 여차하여 나라에 환란이 있을 시 임금이 몽진하거나 파천할 수 있는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문경새재(Mungyeongsaejae Pass, 聞慶새재)〉, 《두산백과》
  2. 문경새재〉,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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