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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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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군도

추자군도(楸子群島)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북부 해상에 산재한 군도이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등 여러 섬이 흩어져 있다.

개요[편집]

  • 추자군도는 한반도 본토와 제주특별자치도 사이의 제주해협상에 있는 42개의 이다. 떼섬이라고도 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다. 상추자도(上楸子島)·하추자도(下楸子島)·횡간도(橫干島)·추포도(秋浦島)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북서∼남동 방향으로 다섯 줄로 나열되어 있다. 섬 둘레가 1㎞ 이상 되는 비교적 큰 무인도로는 청도(靑島:면적 0.34㎢, 해안선 길이 2.5㎞)·흑검도(黑劍島:면적 0.2㎢, 해안선 길이 1.5㎞)·직구도(直龜島:면적 0.19㎢, 해안선 길이 1.5㎞) 등이 있다. 부근 수역은 난류한류의 교차지역으로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국제낚시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갯바위낚시터가 유명하다. 연중 어로작업이 활발하여 멸치·고등어·전갱이·삼치·방어·갈치 등 많은 어획량을 올리며, 그중에서도 멸치잡이를 주로 하여 추자도의 멸치젓은 이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기후는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가장 추운 달인 1월 평균기온도 3℃로 감귤 재배가 가능하다. [1]
  • 추자군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추자로(추자면)에 위치해 있다. 목포에서 직선거리 93km, 제주에서는 53km 북쪽에 위치한 이 섬은 추자도라 부르기 보다는 추자군도로 부름이 타당할 만큼 49개에 이르는 대소 부속 도서들을 거느리고 있는 갯바위 일급지역이다. 이 추자도는 본섬인 상. 하추자도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추자도는 수심이 깊고, 먼바다에 떨어져 앉은 원도에 해당하므로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심한 파도로 배낚시는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갯바위낚시가 기본이 된다. 추자도의 낚시 포인트는 전 섬 모두에 해당된다. 그만큼 크고 작은 각 섬마다 포인트가 형성되어 있고 낚시가 시도되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거의 전 지역이 낚시터로 개발되어 있다. 따라서 낚시터 선정에 있어서는 물때만 맞춘다면 각자 개개인의 경험과 판단에 따라 어느 곳에서의 낚시든 무난하다. 또한 새말, 목개, 염섬, 공여, 오동여 등지도 좋다. 돌돔 낚시는 절명여, 다이아몬드, 사자뒤꼬리, 직구도, 수평섬 등지에서 이루어진다.
  • 추자군도는 추자군도(楸子群島)는 제주시에서 가장 북쪽 제주해협에 위치한 군도로,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속한다. 주 섬인 상추자도와 하추자도가 추자대교로 서로 연결되어 있고, 횡간도, 추포도를 포함한 4개의 유인도,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추자군도는 황해와 남해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어족이 풍부하고 어장이 잘 발달되어 있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 및 어업 관련 산업에 종사한다. 주요 어종으로는 조기·멸치·삼치·방어 등이 있으며, 멸치젓의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주 섬인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는 총길이 212m의 추자대교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면사무소는 상추자도의 대서리에 있다. 추자도는 예로부터 영산포에서 제주도를 오가던 배들의 피항지로, 고려 공민왕 23년(1374년)에 최영 장군이 목호의 난을 평정하러 영산포에서 제주도를 오가는 과정에서 풍랑을 피하고 함선을 정비하기 위해 추자도에 머물렀다. 상추자도에는 최영 장군의 사당이 있다.[2]
  • 추자군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에 있는 군도이다. 동경 126°15′∼126°24′, 북위 33°53′∼34°00′에 위치한다. 제주시에서 북쪽으로 약 45㎞ 지점에 있다. 추자군도는 상추자도·하추자도·추포도(秋浦島)·횡간도(橫干島) 등 4개의 유인도와 직구도(直龜島)·푸랭이섬 등 38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유인도(有人島) 면적은 약 6.2㎢이고, 무인도(無人島) 면적은 약 0.89㎢이다. 우두일출(牛頭日出), 직구낙조(直龜落照) 등 추자십경이 유명하다. 원래 후풍도(候風島)라 불렸는데, 추자나무 숲이 무성해서 추자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896년에 전라남도 완도군에 편입되었고, 1910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제주군에 편입되었다. 1964년에 북제주군에 소속되었다가 2006년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이 되었다. 군도는 대체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길게 배열되어 있고,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성 산지(최고 높이 155m)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주로 암석 해안으로 해식애가 발달해 있다. 상추자도는 해안의 대부분이 급경사를 이루는데 반해 하추자도는 완만한 편이다. 지질은 제주도의 다른 부속 섬들과 달리 중생대 백악기의 불국사화강암과 경상계 유천층군으로 되어있다. 토양은 중성 혹은 염기성암으로 적황색토와 암쇄토 및 배수가 양호한 식양질 내지 사양질 토양으로 되어 있다. 1월 평균기온은 3.0℃, 8월 평균기온은 27.3℃, 연강수량은 1,105㎜이다. [3]

수덕도[편집]

  • 수덕도(愁德島)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을 이루는 추자군도(楸子群島)에 속한 무인도이다. 수덕이섬 또는 사자섬이라고도 하는데, 사자섬은 사자가 엎드리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해협상의 추자군도를 구성하는 하추자도(下楸子島)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인도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추자면 신양1리에 속한다. 추자군도를 구성하는 많은 부속 섬 가운데 가장 웅장한 아름다운 섬이다. 섬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 면의 해안 절벽에는 분홍색 내지는 붉은색을 띤 수직 절리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주변 바다에는 감성돔, 돌돔, 참돔, 농어, 부시리 등 다양한 어류가 서식해 일 년 내내 많은 낚시꾼들이 찾는, 추자군도를 대표하는 바다 낚시터로 유명하다. 2009년 7월 제주시가 기존의 관광 명소 이외에 제주시 일대의 대표적인 장소 31곳을 선정해 발표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이다.

추자군도의 역사[편집]

  • 추자군도는 행정구역상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해 있으나, 지리적으로 전라남도 완도군과 접해 있고 언어·문화적으로도 전라남도에 가깝다. 추자도는 고려 시대부터 한반도 육지부에서 나주, 해남, 강진을 거쳐 제주로 건너가기 위한 관문 역할을 한 곳이었다. 김방경(金方慶)이 삼별초를 진압하기 위해 추자도에 정박한 적이 있고, 다시 1374년에 최영(崔瑩)이 목호의 난 진압을 위해 제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추자도에 정박하여 추자도 어민들에게 그물 짜는 법을 알려주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최영 장군의 사당이 세워졌다.
  • 《원사》(元史)에는 지원(至元) 30년(고려 충렬왕 30년, 1293년)에 조서를 내려 탐라(제주도)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물길의 요충지마다 30곳의 수역(水驛)을 세우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가운데 한 곳이 추자도로써 조선 초기까지 당시 세운 수참(水站)의 흔적이 추자도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주 본섬에서 추자도로 고기잡이하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일본이나 중국에 표류하는 일도 적지 않았으며, 조선 후기 실학자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는 청 건륭 5년(1740년) 중국 강남의 소전현 백성이 바닷가에서 무역하다가 풍랑으로 표류해 조선의 추자도까지 떠내려가서 구조되어 돌아왔다는 《대청회전》(大淸會典)의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10년(1323년)에 군산도에 침입한 왜구가 추자도에 출몰해 노약자를 잡아간 것을 시작으로, 조선 성종 25년(1494년)에도 왜선 4척이 추자도에 출몰해 제주도에서 진상하던 공물을 약탈하기도 하였다.
  • 조선 시대에는 전라도 영암군의 월경지인 이진진(梨津鎭, 현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에 속하였다.[1] 1896년에 전라남도 완도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4월 1일에 전라남도 제주군에 편입되었고, 1946년 8월 1일 제주도와 함께 미군정의 군정법령 제94호(1946.7.2 공포)에 따라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1926년 추자도의 어업조합장 김상진이 식산은행 제주지점에서 차입한 4천 원으로 소금을 사서 시중가보다 비싸게 조합원들에게 팔고, 어민이 캔 천초를 이사 황석희 등 직원들과 짜고 강제로 매수하려 하였다. 이에 어민들이 저항하자 김상진은 추자경찰관 주재소에 연락해 이들을 구속시켰다.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예초리 어민 7백여 명이 5월 11일 추자도 어업조합의 부정을 규탄하면서 공동 판매 폐지와 조합장 처벌을 외치며 어업조합으로 난입하였다. 이에 김상진은 목포로 달아나고 추자도 주재소 경찰들이 공포탄을 쏘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 사건으로 21명이 검거되고, 김종만 등 7명이 옥고를 치렀다.(추자도 어민항쟁) 1932년 5월에도 일본 어부들의 유자망 어업으로 연안 어족들이 거의 고갈되다시피 하자 추자도 어민들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였고 많은 어민들이 구금되었으며, 당시 김봉수(영흥리), 박병석(영흥리) 외 11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추자군도의 생태[편집]

  • 추자군도의 경지면적은 밭 169.5㏊, 논 2.7㏊이다. 주민들은 농업보다 어업에 치중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콩·고구마 등이 있으며,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난대성 작물인 밀감이 생산된다. 부근 수역은 남해 어장의 중심지로 난류성 어족의 회유가 많아 연중 어로작업이 활발하다. 수산물로는 고등어·전갱이·삼치·방어·갈치 등이 어획되며, 멸치잡이와 겨울철 감성돔이 유명하다.
  • 바다낚시와 갯바위낚시의 보고로, 특히 겨울철 바다낚시 애호가들의 인기가 높다. 낚시터를 잇는 선편이 불편하므로 식수와 동굴이 있는 푸랭이섬이나 물이 빠지면 상추자도로 건너올 수 있는 다무래미섬을 많이 찾는다. 또한, 푸랭이섬에는 새똥으로 자생하는 산무와 달래가 많다. 교통은 제주와 목포·완도에서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는 1995년에 새로 준공된 추자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추자초등학교, 추자초등학교 신양분교장, 추자중학교가 있다.

추자군도의 관광[편집]

  • 추자도의 주요 산업은 수산업이며 특히 예로부터 멸치잡이로 유명했다. 그리고 바다낚시로 인기가 높고 벵어돔, 돌돔, 참돔, 전갱이 등 고급 어종들이 많이 잡힌다. 경지면적은 밭 169.5ha, 논 2.7ha에 불과하며 보리·고구마·콩 등을 생산하며 대부분의 곡물과 생필품은 제주도와 전라남도 목포와 완도 등에서 가져온다. 상추자도 대서리(大西里)에 항만(상추자도항)이 건설되어 있고, 하추자도에는 산양항과 묵리항이 있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하는 추자대교(楸子大橋)가 가설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사수도 해조류(흑비둘기, 슴새)가 있다. 하추자도에는 조선시대 신유박해(1801년) 당시 가톨릭 순교자인 황사영(알렉시오)의 아들 황경한(黃景漢)의 묘가 있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추자군도(楸子群島)〉, 《두산백과》
  2. 추자군도〉, 《위키백과》
  3. 추자군도 (楸子群島)〉,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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