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png

"이집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해시넷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잔글
1번째 줄: 1번째 줄:
== 지도 ==
+
[[파일:이집트 위치.png|썸네일|300픽셀|'''이집트'''(아랍어: مِصْر 미스르, 이집트 아랍어: مَصْر 마스르, 콥트어: Ⲭⲏⲙⲓ 키미, 영어: Egypt) 위치]]
 +
[[파일:카이로의 전경.jpg|썸네일|300픽셀|카이로의 전경]]
 +
[[파일:기자.jpg|썸네일|300픽셀|기자]]
 +
[[파일:기자의 피라미드.jpg|썸네일|300픽셀|기자의 피라미드]]
 +
[[파일:알렉산드리아.jpeg|썸네일|300픽셀|알렉산드리아]]
 +
[[파일:카이로의 이븐 툴룬 모스크.jpg|썸네일|300픽셀|카이로의 이븐 툴룬 모스크]]
 +
 
 +
'''이집트'''(아랍어: مِصْر 미스르, 이집트 아랍어: مَصْر 마스르, 콥트어: Ⲭⲏⲙⲓ 키미, 영어: Egypt)는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의 [[시나이반도]]에 결쳐 있는  아랍 국가이자 지중해와 홍해의 연안국이다. 정식 명칭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 이집트 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굼후리야트 마스르 알아라비야, 영어 :Arab Republic of Egypt)이다. 시나이 반도를 통해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을 접하며 [[중동]]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리비아]]와 [[수단]]의 접경국이다. 수도는 '''[[카이로]]'''이다.
 +
 
 +
1882년 [[영국]]이 수에즈 운하 보호를 이유로 이집트 정부를 장악하였다. 1922년 이집트 왕국으로서 부분적으로 독립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족운동과 반영국운동이 격화하면서 완전한 주권을 찾았다.
 +
 
 +
== 개요 ==
 +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에 의해 형성된 육교를 통해 아프리카 북동쪽과 아시아 남서쪽까지 걸쳐 있는 대륙 횡단 국가이다. 고대문명 발상지로, 16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으며 오늘날 아랍과 중동지역에서 정치적·문화적인 중심국가를 이룬다. 아랍에서는 '2개 해협' 또는 '국가'라는 뜻의 아랍어(語)인 '미스르(Misr)'라는 국명으로 부르며 현지 발음으로는 '마스르'라고도 한다.
 +
 
 +
이집트는 그 어떠한 국가들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약 5,000여 년 전부터 나일강가에서 문명이 태동하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30세기에 이르자 고대 이집트 문명은 문자, 농업, 도시화, 종교, 정부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대 타 지역에 비하여 압도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풍요로운 시대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이집트에 [[기자의 피라미드]]와 [[대스핑크스]]가 세워졌으며, [[멤피스]], [[테베]], [[카르나크]], [[왕가의 계곡]] 같은 위대한 유산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후 이집트 문명은 점차 쇠퇴를 거듭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로마인, 아랍인, 오스만인, 누비아인들이 연이어 이집트를 침투하며 지배하였다. 이집트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으나,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며 점차 [[무슬림]]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며 7세기 경에 이르자 확실한 이슬람 국가로 돌아섰다.
 +
 
 +
현대 이집트의 역사는 1922년 경, 이집트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는 독립 후 공화국을 세웠고, 1958년에는 시리아와 함께 아랍연합공화국을 세웠으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1961년에 소멸하였다. 이후 20세기 후반 내내 이집트는 극심한 종교적,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고,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에는 연이어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반복하며 가자 지구를 강제 점령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가자 지구에서 물러났고, 이스라엘을 공인하며 평화 분위기를 붇돋았다. 그러나 이집트는 현재까지도 정치적 불안정을 거듭하고 있는데,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나 지속된 테러 사태, 경제불황 등 지속되는 악재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현재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인권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
이집트의 국교는 [[이슬람교]]이며, 국어는 [[아랍어]]이다. 이집트는 1억 명이 넘는 인구로 북아프리카, 중동,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도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고 세계적으로도 13번째로 인구가 많다. 거의 대부분의 인구는 나일강 유역에 모여 살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나일 유역이 이집트 전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국토는 대부분이 척박한 사하라 사막에 속해있고,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다. 대략 절반의 인구가 도심지에 몰려 살고 있으며, 특히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삼각지의 대도시들에 산다.
 +
 
 +
이집트는 북아프리카, 중동, 아랍 세계에서 지역 강국 정도로 평가받는다. 중동에서 경제적으로도 규모가 큰 편이며 그 재원도 다양화되어 있으며, 그 잠재력이 상당하여 21세기에는 세계적으로도 발전이 주목되는 국가로 꼽히기도 한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거대한 경제규모를 보유하고 있으며, 명목 GDP로는 40번째, PPP로는 19번째로 거대한 경제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는 UN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랍연맹, 아프리카 연합, 이슬람협력기구의 창립국이기도 하다.
 +
 
 +
== 국가 상징 ==
 +
=== 국호 ===
 +
이집트의 정식 국호는 미스르 아랍 공화국(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이다. 이를 이집트의 공용어인 표준 아랍어로는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Jumhūriyyat Miṣr al-ʿArabiyya), 이집트 아랍어로는 곰호레이예트 마스르 엘아라베이야(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ه / Gomhoreyyet Maṣr el-ʿArabeyya)로 읽는다. 국호상의 '아랍'은 과거 아랍 연합 공화국의 흔적이다. 이집트 왕국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수립됐던 1953년 당시에는 이집트 공화국(جمهورية مصر)이었는데, 공화정 수립의 주역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는 강경한 아랍 민족주의자로 아랍 전역의 통합을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시리아 제2공화국을 가맹시킨 뒤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국호를 개칭했다. 나중에 시리아가 떨어져 나가면서 아랍 연합 공화국은 와해되지만 이집트는 계속 이 국호를 고수했다. 나세르가 죽은 뒤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다시 국호를 이집트로 환원하면서 나세르의 아랍 민족주의를 이어 1971년 9월 2일에 국호를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라 했다. 현 시리아의 정식 국호와 국기 역시 연합 공화국 당시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
 
 +
한국어권에서는 이집트로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영어에서 유래한 외래지명이고 아랍어 토착지명은 미스르(مِصْر / Miṣr) 혹은 마스르(مَصْر‎ / Maṣr)라 한다. 셈어파 언어에서 이 어근 므스르( م ص ر‎ / m-ṣ-r)는 '지협·해협', '구역', '대도시', '문명'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 중 대도시나 문명의 뜻으로 쓰였다면, 아주 옛날 이집트가 독보적인 문명으로 보였을 인근 셈족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풀이해볼 수 있겠지만 이는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한편 다른 셈어파 언어인 히브리어에서는 쌍수형 미츠라임(מִצְרָ֫יִם / Mitsráyim)의 형태로 쓰인다. 이것에 대해선 고대 이집트가 상이집트(나일강 상류), 하이집트(나일강 하류)로 나뉘어져 있던 것에 기인했으리라는 추정이 일반적이다.
 +
 
 +
고대 이집트어로는 '검다'는 뜻을 가진 켐(kem)의 여성형 명사형인 케메트(Kemet)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자음 뿐인 이집트 문자 𓆎𓅓𓏏𓊖(km.t)를 현대 학자들이 읽을 때 편의상 모음을 e로 읽는 관행에 따른 표기로 당대 이집트어 발음과 차이가 있다. 쐐기 문자 등과의 대조를 통해 신왕국 이전까지 [ˈkuːmat](쿠마트)로 조음했을 것이라 본다. 고대 이집트어의 직계 후손인 콥트어로는 케머(Ⲭⲏⲙⲓ [ˈkʰeːmə] 또는 Ⲕⲏⲙⲉ [ˈkeːmə])라고 부른다. 당시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범람하게 되면 상류에서 기름진 토양이 쓸려 내려왔는데 이 토양의 색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
 
 +
영어 명칭인 이집트(Egypt [ˈiː.d͡ʒɪpt])는 고대 그리스어 아이귑토스(Αἴγυπτος, 현대 그리스어로 에입토스·Αίγυπτος)의 라틴어 표기인 아이귑투스(Aegyptus, 교회 라틴어로 에집투스)가 중세 프랑스어 단어인 에집트(Egypte, 현대 프랑스어로 Égypte)의 형태를 거쳐 영국식 영어로 유입된 단어이다. 독일어로는 에귑텐(Ägypten·Aegypten)이라고 부른다. 이집트학계에서는 고전 이집트어로 '프타의 영혼, 카의 집'을 의미하는 ḥwt-kꜣ-ptḥ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한다. 지리학자 스트라본(Στράβων, 기원전 63/64년~기원후 24년경)은 이집트가 에게해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그리스 남쪽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그리스어 아이귑토스는 '에게해 아래'를 뜻하는 표현 아이가이우 휩티오스(Αἰγαίου ὑπτίως)가 한 단어로 축약된 것이라고 보았으나 이는 민간어원설로 여겨진다.
 +
 
 +
오래전의 가톨릭 성경에는 애급(埃及)이라는 이름으로도 나오는데, 이는 이집트의 한자 음차 표기이다. 출애급기(出埃及記)의 출애급 역시 이집트에서 나간다는 뜻이다. 개신교 성경에서는 표기가 변형된 애굽으로 사용돼 왔다. 1977년 출간된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제목인 출애굽기에 한해서 애굽, 본문 내용상에서는 에집트라는 표기가 사용됐다. 이후 2005년에 출간된 가톨릭 새번역 성경에서는 출애굽기가 탈출기로, 에집트는 표준어인 이집트로 수정됐다. 반면 개신교 성경에서는 여전히 애굽이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
 
 +
=== 국기 ===
 +
[[파일:이집트 국기.png|썸네일|300픽셀|이집트 국기]]
 +
[[파일:이집트 국장.png|썸네일|300픽셀|이집트 국장]]
 +
현재의 국기(1984~) 기존에 사용하던 쿠라이시의 매 문장을 폐기하고 1984년 살라흐 앗딘의 독수리 국장을 새 국장으로 제정하고, 새 국장이 새겨진 새 국기를 채택하여 지금 현재까지도 사용 중이다.
 +
 
 +
이집트의 국기는 위로부터 빨간색·하얀색·검은색 가로 줄무늬의 3색기이며 가운데에는 살라딘의 수리라고 부르는 금색 이집트의 국장이 새겨져 있다.
 +
 
 +
빨강은 혁명과 투쟁에 의한 피를, 하양은 평화와 밝은 미래를, 검정은 칼리프 시대의 영광과 지난날의 암흑 시대를 상징한다. 비율은 2:3이다.
 +
=== 국장 ===
 +
이집트의 국장은 1984년에 제정되었다. 현재의 국장은 1958년부터 1971년까지 사용된 아랍 연합 공화국의 국장의 가운데에 그려진 방패에 그려져 있었던 두 개의 초록색 별 디자인을 제거한 형태의 디자인이다.
 +
 
 +
살라딘의 수리라고 부르는 금색 독수리 모양의 디자인 가운데에는 이집트의 국기를 구성하는 색인 빨간색, 하얀색,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그려진 방패가 그려져 있다. 독수리의 발톱 아래에 있는 두루마리에는 이집트의 공식 명칭인 "이집트 아랍 공화국"("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Gumhūriyyat Miṣr al-ʿArabiyyah")이 아랍어로 쓰여져 있다.
 +
 
 +
아랍 공화국 연방 시절이었던 1971년부터 1984년까지는 쿠라이시의 매라고 부르는 금색 매 모양의 디자인을 한 국장을 사용하였다.
 +
 
 +
=== 국가 ===
 +
국가는 بلادي لك حبي و فؤادي (나의 조국, 나의 사랑과 마음은 그대를 위해)이다. 이 국가는 모하메드 유니스 알카디가 작사하고 사예드 다위시가 작곡했으며 1979년에 국가로 지정되었다.
 +
 
 +
== 지리 ==
 
{{이집트 행정 지도|800}}
 
{{이집트 행정 지도|800}}
 
{{지도|이집트}}
 
{{지도|이집트}}
 +
[[파일:이집트의 나일강.jpg|썸네일|300픽셀|이집트의 나일강]]
 +
이집트는 지중해와 인근하여 [[가자 지구]]를 통하여 [[팔레스타인]]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이스라엘]]이 있다. 동쪽으로는 [[아카바만]]과 [[홍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수단]], 서쪽으로는 [[리비아]]가 있다. 아카바 만을 건너서는 [[요르단]]이 있으며, 홍해를 사이에 두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마주보고 있다. 또한 지중해를 건너서는 [[그리스]], [[터키]], [[키프로스]] 등과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
 +
이집트는 면적이 100만1450 km²로, 전 세계에서 38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이는 중앙 아메리카 전역과 비슷한 넓이이며, 스페인의 2배, 영국의 4.1배, 미국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를 합한 크기와 비슷하다.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10배, 한반도의 4.5배 정도의 크기이다.
 +
 +
그렇지만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 때문이 인구는 좁은 나일강 계곡과 삼각주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의 약 99%가 국토 면적의 5.5%에 집중되어 있다.
 +
 +
이집트는 서쪽에는 리비아, 남쪽에는 수단, 동쪽에는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두 대륙 사이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는 수에즈 지협이 있으며, 이곳 수에즈 운하를 통해 홍해를 사이로 지중해와 인도양을 연결한다.
 +
 +
나일강 유역 외에 이집트 국토 경관의 대부분은 사막이다. 바람 때문에 높이 30m가 넘는 사구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집트는 사하라 사막과 리비아 사막의 일부에 속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이들 사막은 "붉은 땅"으로 불렸으며, 서쪽의 위협에서 파라오의 고대 왕국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
 +
최저 해면하 134m의 카타라 저지와 거기에서 칼가를 통과하여 아스완에까지 이르는 대상 저지를 제하면 국토의 대부분이 표고 200m 이상의 대지 또는 산지이다. 시나이반도에서 홍해 연안에 이르는 산지는 아프리카 지구대(地溝帶)에 연해 있다. 북서부에는 리비아 고원, 남서부에는 케빌 고원이 있다.
 +
 +
이집트의 도시로는 고대부터 대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 [[아스완]], [[아시우트]], 수도 [[카이로]], [[엘 마할라]], [[엘 쿠브라]], 쿠푸의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후르가다]], [[룩소르]], [[콤 옴보]], [[포트 사파가]], [[포트 사이드]], [[샴 엘 셰이크]], 운하가 있는 [[수에즈]], [[자가지그]], [[알 미냐]]가 있다. 오아시스로는 [[바하리야]], [[엘 다클라]], [[파라프라]], [[엘 카르가]], [[시와]]가 있다. 보호 지역으로는 라스 모하메드 국립공원, 자라니크 보호구역, 시와가 있다.
 +
 +
=== 지형 ===
 +
이집트의 지형은 국토의 면적에 비해 단순하다. 나일강 하곡(河谷)과 그 유역의 삼각주평야, 수에즈 운하 연안, 이곳을 제외한 넓은 사막지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나일강 하곡과 삼각주평야를 형성하는 나일강은 상류의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靑)나일과 아프리카 중동부 빅토리아호(湖)에서 발원한 백(白)나일에 합류하여 6,671km를 흘러 지중해로 유입하는 대하천이다. 아스완 이하의 사막지대를 통과하는 외래하천(外來河川)으로 그 지류의 대부분이 이집트 국내에 있다. 이 하천의 상류부는 여러 군데의 급경사를 이루면서 흐른다.
 +
 +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는 양측에 사막으로 된 절벽을 끼고 너비 3~25km의 좁은 지역의 충적지 가운데를 띠[帶] 모양의 하천이 흘러간다. 카이로에서 그 하류 일대에 걸쳐 약 2만 4000㎢의 면적을 가진 대삼각주평야가 전개된다. 이 삼각주평야는 이 하천이 운반·퇴적한 물질로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퇴적층이 매우 두꺼운데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시추결과는 163m에도 기저(基底)의 암반에 달하지 못했다. 이 삼각주평야와 나일강 하곡평야는 곡창지대를 이루는 인구조밀지역이다.
 +
 +
하천 유수량의 조절이 어려웠던 옛날에는 하천 유수량의 연변화(年變化)가 하안의 충적지에서 살고 있는 이집트인들에게 많은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1년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그 위협은 사라졌다. 아스완 남쪽으로 인공호인 나세르호가 생겨 이 인공호의 물을 이용하여 사막지방의 관개를 통한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다. 나일강은 농경을 하는 농부뿐 아니라 이집트인들의 생명선이 되는 젖줄이다. 나일강 동쪽에 마자 고원과 갈랠라·키블리아 산지 등이 발달해 있다.
 +
 +
이 곳은 결정질(結晶質)의 암석과 석회암으로 된 단조로운 고원과 대지가 남쪽의 에티오피아 고원으로 연이어 발달해 있다. 이 고원의 남부에 하마타 산지(1,977m)가 남서쪽을 향해서 점차로 높아져 해발고도 1,900m 정도에 이른다. 홍해안 쪽은 바다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해안을 따라서 가느다란 해안평야가 발달해 있다. 홍해의 수에즈만(灣)과 아카바만 사이에 삼각형 모양의 시나이 반도가 있다. 이 반도는 남으로 갈수록 높아져서 카트리나산(2,637m)에 이르러 최고점이 된다.
 +
 +
사막과 암산으로 된 불모의 지역이기는 하나 석유자원의 매장으로 이집트 경제에 큰 역할을 한다. 시나이 반도와 본토 사이의 수에즈 지협의 저지대에는 한무리의 호소들이 발달해 있다. 수에즈 운하는 이 호소들을 연결해서 굴착하여 만든 것이다. 나일강의 서쪽은 인간이 살기에는 어려운 사막이다. 파이윰 저지·카타라 저지 등에 분포한 오아시스들을 제외하면 거의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하다.
 +
 +
이들 저지에서는 석회암의 틈을 따라서 곳곳에 지하수가 용출하여 오아시스를 형성한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물 이외에도 샘을 파서 오아시스 관개농업에 이용한다. 집약적인 농경지가 발달하여 인구밀도가 높다. 바하리야·파라피라·다흘라·하르가·시와 등 5개의 오아시스가 유명하며 1600년경부터 이집트인에 의해 농경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
 +
=== 기후 ===
 +
[[파일:하얀 사막, 파라프라.jpg|썸네일|300픽셀|하얀 사막, 파라프라]]
 +
이집트의 기후는 대부분의 지역이 건조기후에 속한다. 북회귀선이 이 나라의 남부를 지나고, 북부의 지중해연안은 대체로 북위 31°30'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나일강 계곡과 지중해 연안의 좁은 해안지방을 제외하면 전국이 사막기후가 된다. 내륙으로 갈수록 건조가 심해지고 기온이 높아진다. 서부나 남부지방에서는 수년간 비가 오지 않은 지역도 있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겨울에 약간의 비가 내리는 지중해성기후를 나타내며 기온도 1년을 여름과 겨울의 두 계절로 나누고 있다. 4~10월은 고온이며 공기가 건조한 하계(夏季)이고, 11~3월의 동계(冬季)에는 낮에는 덥고 야간에는 서늘하다.
 +
 +
또한 환절기에는 남쪽에서 저기압이 진행되어 모래를 동반한 열풍이 내습해온다. 이것이 유명한 캄신이라는 바람이며 때로는 40℃ 이상의 고온을 몰고오는 남서의 열풍이다. 동계에는 지중해 방면에서 불어오는 북풍이 비를 다소 내리며 그 영향은 대체로 나일강 삼각주와 해안의 좁은 범위에 미치는 데 불과하다. 연강수량 100mm 이상이 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거의 비가 없는 지대로서 나일강의 혜택으로 관개 용수의 편의를 얻을 수 없는 곳은 곧 불모의 사막인 것이다. 기온의 교차가 매우 심하고 여름에는 사막에서 낮에 50℃ 이상의 극단적인 고온현상이 나타난다.
 +
 +
== 참고자료 ==
 +
* 〈[https://namu.wiki/w/%EC%9D%B4%EC%A7%91%ED%8A%B8 이집트]〉, 《나무위키》
 +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7%91%ED%8A%B8# 이집트]〉, 《위키백과》
 +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7%91%ED%8A%B8%EC%9D%98_%EA%B5%AD%EA%B8%B0 이집트의 국기]〉, 《위키백과》
 +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7%91%ED%8A%B8%EC%9D%98_%EA%B5%AD%EC%9E%A5 이집트의 국장]〉, 《위키백과》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4914&cid=40942&categoryId=34206 이집트]〉, 《두산백과》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79134&cid=40942&categoryId=33142 이집트의 지형]〉, 《두산백과》
 +
*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79135&cid=40942&categoryId=33139 이집트의 기후]〉, 《두산백과》
 +
 +
== 같이 보기 ==
 +
* [[카이로]]
 +
* [[알렉산드리아]]
 +
* [[아스완]]
 +
* [[아시우트]]
 +
* [[기자]]
 +
* [[룩소르]]
 +
* [[이스라엘]]
 +
* [[가지지구]]
  
 
{{국가|토막글}}
 
{{국가|토막글}}

2023년 2월 23일 (목) 17:46 판

이집트(아랍어: مِصْر 미스르, 이집트 아랍어: مَصْر 마스르, 콥트어: Ⲭⲏⲙⲓ 키미, 영어: Egypt) 위치
카이로의 전경
기자
기자의 피라미드
알렉산드리아
카이로의 이븐 툴룬 모스크

이집트(아랍어: مِصْر 미스르, 이집트 아랍어: مَصْر 마스르, 콥트어: Ⲭⲏⲙⲓ 키미, 영어: Egypt)는 북아프리카서아시아시나이반도에 결쳐 있는 아랍 국가이자 지중해와 홍해의 연안국이다. 정식 명칭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 이집트 아랍어: 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굼후리야트 마스르 알아라비야, 영어 :Arab Republic of Egypt)이다. 시나이 반도를 통해 가자 지구이스라엘을 접하며 중동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리비아수단의 접경국이다. 수도는 카이로이다.

1882년 영국이 수에즈 운하 보호를 이유로 이집트 정부를 장악하였다. 1922년 이집트 왕국으로서 부분적으로 독립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족운동과 반영국운동이 격화하면서 완전한 주권을 찾았다.

개요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에 의해 형성된 육교를 통해 아프리카 북동쪽과 아시아 남서쪽까지 걸쳐 있는 대륙 횡단 국가이다. 고대문명 발상지로, 16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으며 오늘날 아랍과 중동지역에서 정치적·문화적인 중심국가를 이룬다. 아랍에서는 '2개 해협' 또는 '국가'라는 뜻의 아랍어(語)인 '미스르(Misr)'라는 국명으로 부르며 현지 발음으로는 '마스르'라고도 한다.

이집트는 그 어떠한 국가들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약 5,000여 년 전부터 나일강가에서 문명이 태동하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30세기에 이르자 고대 이집트 문명은 문자, 농업, 도시화, 종교, 정부 등 모든 분야에서 동시대 타 지역에 비하여 압도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풍요로운 시대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 이집트에 기자의 피라미드대스핑크스가 세워졌으며, 멤피스, 테베, 카르나크, 왕가의 계곡 같은 위대한 유산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후 이집트 문명은 점차 쇠퇴를 거듭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로마인, 아랍인, 오스만인, 누비아인들이 연이어 이집트를 침투하며 지배하였다. 이집트는 초기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으나,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며 점차 무슬림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며 7세기 경에 이르자 확실한 이슬람 국가로 돌아섰다.

현대 이집트의 역사는 1922년 경, 이집트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는 독립 후 공화국을 세웠고, 1958년에는 시리아와 함께 아랍연합공화국을 세웠으나 불화를 견디지 못하고 1961년에 소멸하였다. 이후 20세기 후반 내내 이집트는 극심한 종교적, 정치적 혼란기를 겪었고,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에는 연이어 이스라엘과 무력 충돌을 반복하며 가자 지구를 강제 점령하기도 하였다. 1978년에는 캠프데이비드 협정으로 가자 지구에서 물러났고, 이스라엘을 공인하며 평화 분위기를 붇돋았다. 그러나 이집트는 현재까지도 정치적 불안정을 거듭하고 있는데, 2011년 아랍의 봄 사태나 지속된 테러 사태, 경제불황 등 지속되는 악재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계속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현재 대통령제 공화국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국민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으며 인권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집트의 국교는 이슬람교이며, 국어는 아랍어이다. 이집트는 1억 명이 넘는 인구로 북아프리카, 중동,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국가이며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도 나이지리아와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이고 세계적으로도 13번째로 인구가 많다. 거의 대부분의 인구는 나일강 유역에 모여 살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나일 유역이 이집트 전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국토는 대부분이 척박한 사하라 사막에 속해있고,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다. 대략 절반의 인구가 도심지에 몰려 살고 있으며, 특히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나일강 삼각지의 대도시들에 산다.

이집트는 북아프리카, 중동, 아랍 세계에서 지역 강국 정도로 평가받는다. 중동에서 경제적으로도 규모가 큰 편이며 그 재원도 다양화되어 있으며, 그 잠재력이 상당하여 21세기에는 세계적으로도 발전이 주목되는 국가로 꼽히기도 한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거대한 경제규모를 보유하고 있으며, 명목 GDP로는 40번째, PPP로는 19번째로 거대한 경제를 가지고 있다. 이집트는 UN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랍연맹, 아프리카 연합, 이슬람협력기구의 창립국이기도 하다.

국가 상징

국호

이집트의 정식 국호는 미스르 아랍 공화국(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이다. 이를 이집트의 공용어인 표준 아랍어로는 줌후리야트 미스르 알아라비야(Jumhūriyyat Miṣr al-ʿArabiyya), 이집트 아랍어로는 곰호레이예트 마스르 엘아라베이야(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ه / Gomhoreyyet Maṣr el-ʿArabeyya)로 읽는다. 국호상의 '아랍'은 과거 아랍 연합 공화국의 흔적이다. 이집트 왕국이 붕괴되고 공화정이 수립됐던 1953년 당시에는 이집트 공화국(جمهورية مصر)이었는데, 공화정 수립의 주역이었던 가말 압델 나세르는 강경한 아랍 민족주의자로 아랍 전역의 통합을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시리아 제2공화국을 가맹시킨 뒤 아랍 연합 공화국으로 국호를 개칭했다. 나중에 시리아가 떨어져 나가면서 아랍 연합 공화국은 와해되지만 이집트는 계속 이 국호를 고수했다. 나세르가 죽은 뒤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다시 국호를 이집트로 환원하면서 나세르의 아랍 민족주의를 이어 1971년 9월 2일에 국호를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라 했다. 현 시리아의 정식 국호와 국기 역시 연합 공화국 당시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한국어권에서는 이집트로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영어에서 유래한 외래지명이고 아랍어 토착지명은 미스르(مِصْر / Miṣr) 혹은 마스르(مَصْر‎ / Maṣr)라 한다. 셈어파 언어에서 이 어근 므스르( م ص ر‎ / m-ṣ-r)는 '지협·해협', '구역', '대도시', '문명'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 중 대도시나 문명의 뜻으로 쓰였다면, 아주 옛날 이집트가 독보적인 문명으로 보였을 인근 셈족의 인식을 반영한다고 풀이해볼 수 있겠지만 이는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한편 다른 셈어파 언어인 히브리어에서는 쌍수형 미츠라임(מִצְרָ֫יִם / Mitsráyim)의 형태로 쓰인다. 이것에 대해선 고대 이집트가 상이집트(나일강 상류), 하이집트(나일강 하류)로 나뉘어져 있던 것에 기인했으리라는 추정이 일반적이다.

고대 이집트어로는 '검다'는 뜻을 가진 켐(kem)의 여성형 명사형인 케메트(Kemet)라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자음 뿐인 이집트 문자 𓆎𓅓𓏏𓊖(km.t)를 현대 학자들이 읽을 때 편의상 모음을 e로 읽는 관행에 따른 표기로 당대 이집트어 발음과 차이가 있다. 쐐기 문자 등과의 대조를 통해 신왕국 이전까지 [ˈkuːmat](쿠마트)로 조음했을 것이라 본다. 고대 이집트어의 직계 후손인 콥트어로는 케머(Ⲭⲏⲙⲓ [ˈkʰeːmə] 또는 Ⲕⲏⲙⲉ [ˈkeːmə])라고 부른다. 당시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범람하게 되면 상류에서 기름진 토양이 쓸려 내려왔는데 이 토양의 색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영어 명칭인 이집트(Egypt [ˈiː.d͡ʒɪpt])는 고대 그리스어 아이귑토스(Αἴγυπτος, 현대 그리스어로 에입토스·Αίγυπτος)의 라틴어 표기인 아이귑투스(Aegyptus, 교회 라틴어로 에집투스)가 중세 프랑스어 단어인 에집트(Egypte, 현대 프랑스어로 Égypte)의 형태를 거쳐 영국식 영어로 유입된 단어이다. 독일어로는 에귑텐(Ägypten·Aegypten)이라고 부른다. 이집트학계에서는 고전 이집트어로 '프타의 영혼, 카의 집'을 의미하는 ḥwt-kꜣ-ptḥ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한다. 지리학자 스트라본(Στράβων, 기원전 63/64년~기원후 24년경)은 이집트가 에게해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그리스 남쪽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그리스어 아이귑토스는 '에게해 아래'를 뜻하는 표현 아이가이우 휩티오스(Αἰγαίου ὑπτίως)가 한 단어로 축약된 것이라고 보았으나 이는 민간어원설로 여겨진다.

오래전의 가톨릭 성경에는 애급(埃及)이라는 이름으로도 나오는데, 이는 이집트의 한자 음차 표기이다. 출애급기(出埃及記)의 출애급 역시 이집트에서 나간다는 뜻이다. 개신교 성경에서는 표기가 변형된 애굽으로 사용돼 왔다. 1977년 출간된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제목인 출애굽기에 한해서 애굽, 본문 내용상에서는 에집트라는 표기가 사용됐다. 이후 2005년에 출간된 가톨릭 새번역 성경에서는 출애굽기가 탈출기로, 에집트는 표준어인 이집트로 수정됐다. 반면 개신교 성경에서는 여전히 애굽이라는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

국기

이집트 국기
이집트 국장

현재의 국기(1984~) 기존에 사용하던 쿠라이시의 매 문장을 폐기하고 1984년 살라흐 앗딘의 독수리 국장을 새 국장으로 제정하고, 새 국장이 새겨진 새 국기를 채택하여 지금 현재까지도 사용 중이다.

이집트의 국기는 위로부터 빨간색·하얀색·검은색 가로 줄무늬의 3색기이며 가운데에는 살라딘의 수리라고 부르는 금색 이집트의 국장이 새겨져 있다.

빨강은 혁명과 투쟁에 의한 피를, 하양은 평화와 밝은 미래를, 검정은 칼리프 시대의 영광과 지난날의 암흑 시대를 상징한다. 비율은 2:3이다.

국장

이집트의 국장은 1984년에 제정되었다. 현재의 국장은 1958년부터 1971년까지 사용된 아랍 연합 공화국의 국장의 가운데에 그려진 방패에 그려져 있었던 두 개의 초록색 별 디자인을 제거한 형태의 디자인이다.

살라딘의 수리라고 부르는 금색 독수리 모양의 디자인 가운데에는 이집트의 국기를 구성하는 색인 빨간색, 하얀색,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그려진 방패가 그려져 있다. 독수리의 발톱 아래에 있는 두루마리에는 이집트의 공식 명칭인 "이집트 아랍 공화국"("جمهورية مصر العربية", "Gumhūriyyat Miṣr al-ʿArabiyyah")이 아랍어로 쓰여져 있다.

아랍 공화국 연방 시절이었던 1971년부터 1984년까지는 쿠라이시의 매라고 부르는 금색 매 모양의 디자인을 한 국장을 사용하였다.

국가

국가는 بلادي لك حبي و فؤادي (나의 조국, 나의 사랑과 마음은 그대를 위해)이다. 이 국가는 모하메드 유니스 알카디가 작사하고 사예드 다위시가 작곡했으며 1979년에 국가로 지정되었다.

지리

이집트의 나일강

이집트는 지중해와 인근하여 가자 지구를 통하여 팔레스타인과 접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이스라엘이 있다. 동쪽으로는 아카바만홍해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수단, 서쪽으로는 리비아가 있다. 아카바 만을 건너서는 요르단이 있으며, 홍해를 사이에 두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마주보고 있다. 또한 지중해를 건너서는 그리스, 터키, 키프로스 등과 마주하고 있기도 하다.

이집트는 면적이 100만1450 km²로, 전 세계에서 38번째로 넓은 나라이다. 이는 중앙 아메리카 전역과 비슷한 넓이이며, 스페인의 2배, 영국의 4.1배, 미국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를 합한 크기와 비슷하다.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10배, 한반도의 4.5배 정도의 크기이다.

그렇지만 이집트의 건조한 기후 때문이 인구는 좁은 나일강 계곡과 삼각주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의 약 99%가 국토 면적의 5.5%에 집중되어 있다.

이집트는 서쪽에는 리비아, 남쪽에는 수단, 동쪽에는 가자 지구와 이스라엘과 접하고 있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두 대륙 사이에 있어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에는 수에즈 지협이 있으며, 이곳 수에즈 운하를 통해 홍해를 사이로 지중해와 인도양을 연결한다.

나일강 유역 외에 이집트 국토 경관의 대부분은 사막이다. 바람 때문에 높이 30m가 넘는 사구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집트는 사하라 사막과 리비아 사막의 일부에 속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 이들 사막은 "붉은 땅"으로 불렸으며, 서쪽의 위협에서 파라오의 고대 왕국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최저 해면하 134m의 카타라 저지와 거기에서 칼가를 통과하여 아스완에까지 이르는 대상 저지를 제하면 국토의 대부분이 표고 200m 이상의 대지 또는 산지이다. 시나이반도에서 홍해 연안에 이르는 산지는 아프리카 지구대(地溝帶)에 연해 있다. 북서부에는 리비아 고원, 남서부에는 케빌 고원이 있다.

이집트의 도시로는 고대부터 대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 아스완, 아시우트, 수도 카이로, 엘 마할라, 엘 쿠브라, 쿠푸의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 후르가다, 룩소르, 콤 옴보, 포트 사파가, 포트 사이드, 샴 엘 셰이크, 운하가 있는 수에즈, 자가지그, 알 미냐가 있다. 오아시스로는 바하리야, 엘 다클라, 파라프라, 엘 카르가, 시와가 있다. 보호 지역으로는 라스 모하메드 국립공원, 자라니크 보호구역, 시와가 있다.

지형

이집트의 지형은 국토의 면적에 비해 단순하다. 나일강 하곡(河谷)과 그 유역의 삼각주평야, 수에즈 운하 연안, 이곳을 제외한 넓은 사막지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나일강 하곡과 삼각주평야를 형성하는 나일강은 상류의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한 청(靑)나일과 아프리카 중동부 빅토리아호(湖)에서 발원한 백(白)나일에 합류하여 6,671km를 흘러 지중해로 유입하는 대하천이다. 아스완 이하의 사막지대를 통과하는 외래하천(外來河川)으로 그 지류의 대부분이 이집트 국내에 있다. 이 하천의 상류부는 여러 군데의 급경사를 이루면서 흐른다.

아스완에서 카이로까지는 양측에 사막으로 된 절벽을 끼고 너비 3~25km의 좁은 지역의 충적지 가운데를 띠[帶] 모양의 하천이 흘러간다. 카이로에서 그 하류 일대에 걸쳐 약 2만 4000㎢의 면적을 가진 대삼각주평야가 전개된다. 이 삼각주평야는 이 하천이 운반·퇴적한 물질로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퇴적층이 매우 두꺼운데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시추결과는 163m에도 기저(基底)의 암반에 달하지 못했다. 이 삼각주평야와 나일강 하곡평야는 곡창지대를 이루는 인구조밀지역이다.

하천 유수량의 조절이 어려웠던 옛날에는 하천 유수량의 연변화(年變化)가 하안의 충적지에서 살고 있는 이집트인들에게 많은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1년 아스완 하이댐의 건설로 그 위협은 사라졌다. 아스완 남쪽으로 인공호인 나세르호가 생겨 이 인공호의 물을 이용하여 사막지방의 관개를 통한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다. 나일강은 농경을 하는 농부뿐 아니라 이집트인들의 생명선이 되는 젖줄이다. 나일강 동쪽에 마자 고원과 갈랠라·키블리아 산지 등이 발달해 있다.

이 곳은 결정질(結晶質)의 암석과 석회암으로 된 단조로운 고원과 대지가 남쪽의 에티오피아 고원으로 연이어 발달해 있다. 이 고원의 남부에 하마타 산지(1,977m)가 남서쪽을 향해서 점차로 높아져 해발고도 1,900m 정도에 이른다. 홍해안 쪽은 바다 쪽으로 급경사를 이루고 해안을 따라서 가느다란 해안평야가 발달해 있다. 홍해의 수에즈만(灣)과 아카바만 사이에 삼각형 모양의 시나이 반도가 있다. 이 반도는 남으로 갈수록 높아져서 카트리나산(2,637m)에 이르러 최고점이 된다.

사막과 암산으로 된 불모의 지역이기는 하나 석유자원의 매장으로 이집트 경제에 큰 역할을 한다. 시나이 반도와 본토 사이의 수에즈 지협의 저지대에는 한무리의 호소들이 발달해 있다. 수에즈 운하는 이 호소들을 연결해서 굴착하여 만든 것이다. 나일강의 서쪽은 인간이 살기에는 어려운 사막이다. 파이윰 저지·카타라 저지 등에 분포한 오아시스들을 제외하면 거의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하다.

이들 저지에서는 석회암의 틈을 따라서 곳곳에 지하수가 용출하여 오아시스를 형성한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얻을 수 있는 물 이외에도 샘을 파서 오아시스 관개농업에 이용한다. 집약적인 농경지가 발달하여 인구밀도가 높다. 바하리야·파라피라·다흘라·하르가·시와 등 5개의 오아시스가 유명하며 1600년경부터 이집트인에 의해 농경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기후

하얀 사막, 파라프라

이집트의 기후는 대부분의 지역이 건조기후에 속한다. 북회귀선이 이 나라의 남부를 지나고, 북부의 지중해연안은 대체로 북위 31°30'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나일강 계곡과 지중해 연안의 좁은 해안지방을 제외하면 전국이 사막기후가 된다. 내륙으로 갈수록 건조가 심해지고 기온이 높아진다. 서부나 남부지방에서는 수년간 비가 오지 않은 지역도 있다. 지중해 연안에서는 겨울에 약간의 비가 내리는 지중해성기후를 나타내며 기온도 1년을 여름과 겨울의 두 계절로 나누고 있다. 4~10월은 고온이며 공기가 건조한 하계(夏季)이고, 11~3월의 동계(冬季)에는 낮에는 덥고 야간에는 서늘하다.

또한 환절기에는 남쪽에서 저기압이 진행되어 모래를 동반한 열풍이 내습해온다. 이것이 유명한 캄신이라는 바람이며 때로는 40℃ 이상의 고온을 몰고오는 남서의 열풍이다. 동계에는 지중해 방면에서 불어오는 북풍이 비를 다소 내리며 그 영향은 대체로 나일강 삼각주와 해안의 좁은 범위에 미치는 데 불과하다. 연강수량 100mm 이상이 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거의 비가 없는 지대로서 나일강의 혜택으로 관개 용수의 편의를 얻을 수 없는 곳은 곧 불모의 사막인 것이다. 기온의 교차가 매우 심하고 여름에는 사막에서 낮에 50℃ 이상의 극단적인 고온현상이 나타난다.

참고자료

같이 보기


  의견.png 이 이집트 문서는 국가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위키 문서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습니다. [편집]을 눌러 이 문서의 내용을 채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