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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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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국기

라이베리아(영어: Liberia) 또는 라이베리아 공화국(영어: Republic of Liberia)은 1847년에 세워진 아프리카의 첫 공화국이다. 기니만(灣) 서단에 위치하는 비교적 역사가 오랜 독립국으로서, 시에라리온, 기니, 코트디부아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해방 흑인을 위해 설립된 이 나라는 인종국민주의를 채택해 흑인이 아닌 사람은 이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없다. 주요 수출품은 철광석·다이아몬드·천연고무·커피·코코아 등이며, 철광석과 다이아몬드는 풍부하여 총수출의 76%를 차지한다. 과거부터 사회적, 경제적으로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선박세가 싸기 때문에 외국의 편의 치적선(便宜置積船)이 많아 선박 보유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라이베리아의 정식 명칭은 라이베리아 공화국(Republic of Liberia)이다. 라이베리아라는 이름은 해방, 자유를 뜻하는 라틴어 '리베르'(Liber)에서 비롯되었다.

개요[편집]

  • 수도: 몬로비아
  • 면적: 111,369km²
  • 인구: 5,180,208명 (2021년)
  • 공용어: 영어
  • 정치체제: 공화제, 단일국가, 대통령중심제
  • 대통령: 조지 웨아

역사[편집]

건국 및 발전[편집]

라이베리아의 건국은 노예 신분이 아닌 미국 흑인(해방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미국 식민 협회(ACS)의 정책에서 유래한다. 이는 링컨노예 해방 선언이 있기 전 19세기 초부터 자유주의적 노예제 폐지 운동의 일환으로 주장된 것으로서, 퀘이커교도는 흑인 자유를 위해, 노예 소유자들은 증가하는 흑인 반란의 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이를 지지했다.

미국식민협회가 주도한 흑인 이주는 1822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서아프리카 지역의 열대 질병으로 인해 초기 정착자의 과반수가 사망할 정도로 위험이 컸음에도 미국과 캐리비안 제도의 많은 해방흑인들이 자유를 찾아 라이베리아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1867년까지 최소 1만 3천 명 이상의 이민자가 있었다.

이 기간에 미국 식민 협회는 해안 지역의 원주민 족장들로부터 땅을 사들여 라이베리아 식민지를 세움으로서 국토가 될 땅을 마련하였다. 1847년 7월 26일에는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이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여러 법제도는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미국과의 교역으로 초기에는 빠른 발전을 이루기도 했으나 19세기 말부터 경제난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4년 8월 5일에는 독일 제국에 선전 포고하여 파리 강화회담에 참석하고 국제 연맹의 창설국에 이름을 올리는 등 독립국의 국제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건국 초기부터 미국에서 교육받은 미국계 라이베리아인들(Americo-Liberians)은 기득권을 형성하여 해안 지역의 정치·경제적 우위를 확고히 하는 한편 라이베리아 원주민들에 대해서는 차별 대우를 유지하였다. 1929년에는 국제연맹으로부터 현대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 조사가 이루어지며 찰스 D. B. 킹 대통령 내각이 사퇴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부터는 근대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는데, 미국이 독일 견제를 위해 라이베리아에 대규모 물자, 인프라 지원을 한 것도 영향이 컸다. 특히 1944년 취임한 윌리엄 터브먼 대통령은 외국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여러 개혁을 펼치며 아프리카 전체 2위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라이베리아의 전성기를 열었다. 또한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제국주의 철폐 운동을 주도하며 여러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원주민 흑인에 대한 국가적 차별과 일당독재 체제가 지속되고 있었다.

1971년 터브먼이 임기 중에 사망하자 부통령이던 윌리엄 톨버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는 최초로 야당을 합법화하며 일당독재 체제를 끝내는 한편 친서방 정책을 버리고 공산권 국가에 접근하는 등 여러 변혁을 시도했다. 심각한 빈곤을 타파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폈으나 실패하며 신임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군사반란과 정치 혼란[편집]

그러던 중 1980년 톨버트가 야당을 반란 혐의로 다시 해산하여 일당독재를 되돌릴 기미가 보이자 원주민인 크란족(Krahn) 출신의 군인 새뮤얼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을 살해하고 트루 휘그당 소속이던 정치인들을 처형한 후 정권을 잡았다. 그는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 주도의 라이베리아로 바꾸겠다며 지지를 결집하여 군정 통치를 시작했고, 초기에 친미 정책을 되돌리며 미국의 원조를 받기도 하였으나, 곧 부패와 정책 실패로 경제난이 심화되고 원조도 끊겨갔다. 1985년에는 공약대로 선거를 실시하였으나 여러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고, 이후 정치적 반대자들을 숙청하거나 민족학살을 벌이며 독재의 길을 굳혀갔다.

1989년 군벌이던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애국전선(NPFL)이 주변국의 지원을 받아 도 정권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제1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전개되었고, 곧 1990년 몬로비아를 정악한 반란군이 도 대통령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 속에 다른 반란세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수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끝에 1997년 내전이 종료되고 찰스 테일러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테일러 정권은 주변국의 반인도적인 반군을 지원하거나 부정한 인력착취와 밀수를 행하며 이익을 챙겼고, 국제적으로 테러지원국가로 여겨지며 고립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혼란 속에 1999년 북서부에서 테일러 정권에 반대하는 LURD가 봉기하면서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되었고, 2003년에는 동남부에서 또다른 반란군 MODEL이 발생하였다. 결국 동년 6월에 아크라에서 세력간 회담이 열렸고 테일러는 축출된 이후 인도에 반하는 죄 혐의에 대한 유죄를 선고받았다.

21세기[편집]

2003년 11월부터 UN이 주둔하여 치안과 사회 안정을 돕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2005년에는 최초로 온전하게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되었다. 2014년에는 기니발 에볼라바이러스 유행으로 2,000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2015년에 종식이 선언되었다. 2017년에는 운동선수 출신의 조지 웨아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심각한 경제난과 치안 문제로 사회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지리[편집]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라이베리아는 북대서양과 접하며, 해안평원으로 이뤄져 있다. 북동쪽에는 낮은 산맥과 평원이 나타나며, 동부의 가장 높은 곳은 해발 1,440m인 위테베 산(Mount Wuteve)이다. 북서쪽 지방에는 서아프리카 산맥과, 기니 고원이 분포한다. 인근에 님바 산(해발 1,752m)이 있는데, 기니코트디부아르와 접하고 있다.

전형적인 적도 지역의 기후가 나타나며 일년 내내 덥다. 다만 5월에서 10월까지 많은 비가 내리며, 11월에서 3월까지는 겨울과 같다. 하마탄 열풍이 불어서 모래가 많이 날리기에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주민[편집]

주민은 대부분이 아프리카계의 선주민이며, 주된 부족으로서 크펠레족, 바사족, 크루족, 고라족 등 16의 부족이 있다. 또, 미국이나 서인도 제도에서 해방된 노예들의 자손인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이 2.5%로 건국 초기에는 이들이 정치적 주도권을 잡았다. 카리브 제국이나 콩고에서 온 콩고인도 2.5% 정도 있다.

영어가 공용어로서(1986년 헌법) 실제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영어의 변종을 라이베리아 영어라고 한다. 그 외에 31개에 달하는 여러 부족 언어도 쓰이지만 부족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많지 않다.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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