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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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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스웨덴어: Sverige 스베리예, 문화어: 스웨리예)은 북유럽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반부를 차지하는 입헌 군주국이며 수도는 스톡홀름이다. A.D.10세기에 최초의 통일 왕국이 성립된 이후 1397년부터 126년 간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칼마르(Kalmar) 동맹국을 결성, 주도권 다툼에 나서기도 했고 1849년부터 입헌군주제가 시작되었다.

개요

스웨덴은 북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역사적으로도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는 등 전통적으로 북유럽을 주도하는 국가다. 북유럽과 관련된 분석도 일반적으로 스웨덴을 가장 자세히 하는 편이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함께 바이킹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 접어들어 유럽에서는 스위스, 포르투갈, 아이슬란드와 같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행운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정식명칭은 스웨덴왕국[Kingdom of Sweden(영), Konungariket Sverige(스)]이다. 서쪽으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등뼈에 해당하는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국경선으로 하여 노르웨이와, 북동쪽으로는 보트니아만으로 흘러드는 토르네(Torne) 강을 경계로 핀란드와 접한다. 동쪽으로 보트니아만(灣) 및 발트해(海)를 너머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마주하며, 남쪽은 카테가트(Kattegat) 해협과 외레순(Øresund) 해협을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마주한다. 안정적이고 높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생활·문화 수준이 매우 높으며, 세계의 모범이 되어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갖추고 있다. 행정구역은 21개 주(lan)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 상징

국호

자국어 국호는 스베리예(Sverige)다.

오랜 과거에는 Sver(i)ghe, Sverike, Sværike 등으로 불렸는데, 스베아의(Svea) 나라(rike)라는 뜻이다. 즉 현재 국호를 해석해보면 스베아국 왕국이라는, 일종의 겹말. 스베아라는 말은 옛 게르만어로 '우리의 부족'을 뜻하는 Swihoniz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흔히 알려져 있는 '스웨덴'이란 말은 네덜란드어 '즈베던'(Zweden)을 영어화한 것으로 스위든(ˈswiː.dən)이라고 발음한다. 한때 영어에서는 스웨드란드(Swedeland)라는 표현도 썼다. 독일어로는 슈베덴(Schweden)이라고 한다.

핀란드어로는 루오치(Ruotsi)라고 한다. 루스에서 온 말로 러시아 국명의 기원인 루스와 같다. 스웨덴 웁살라 주 일대에 루스인들이 거주하고 있다보니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문으로는 음차하여 서전(瑞典)이라 부르며, 앞글자를 따서 서(瑞), 또는 서전국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외래어 표기가 정착된 현대의 한국에선 잘 쓰이지 않는다.

국기

스웨덴 국기
스웨덴 국장

스웨덴 국기(Sveriges flagga)는 1906년 6월 22일에 제정되었다.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스칸디나비아 십자가 그려져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국기 모양은 다른 북유럽 국가들의 국기와 유사하며, 이는 북유럽에서 가장 먼저 제작된 국기인 덴마크 국기(Dannebrogen)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157년, 국왕 에리크 9세가 핀란드 십자군을 위해 출병할 때 푸른 하늘에서 금빛의 십자를 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했으며, 덴마크로부터 독립한 후 구스타브 1세 바사에 의해 국기로 채택되었다. 파란 바탕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스웨덴의 푸른 하늘과 영해(領海)를, 노란 십자는 루터교회를 상징한다. 이케아의 로고 디자인과 매장 건물 외관에 사용된 파란색과 노란색도 스웨덴 국기의 배색에서 유래했다. 북한에서는 1965년까지는 서전이라고 쓰다가 이후로는 원어식대로 '스웨리예'라고 쓰고 있다.

국장

스웨덴의 국장은 1448년에 제정되었으며 현재의 국장은 1905년 11월 17일에 수정되었다.

왕관이 올려진 망토 가운데에는 방패가 그려져 있다. 방패 왼쪽 상단과 오른쪽 하단에는 스웨덴의 소형 국장이 그려져 있으며 방패 위에는 왕관이 올려져 있다. 방패 양쪽에는 두 마리의 사자가 그려져 있으며 방패 가운데에는 스웨덴 왕실의 문장이 그려져 있다.

국가

국가는 'Du gamla, Du fria(그대의 조상, 그대의 자유)'라고 하며, 리샤르드 뒤베크가 작사하였다. 왕실 국가로는 '왕의 노래(Kungssången, 쿵송엔)'라는 '스웨덴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Ur svenska hjärtans djup en gång, 우르 스벤스카 예르탄스 유프 엔 공)'를 사용하며 오토 린드블라드가 작사하였고 칼 빌헬름 아우구스트 스트란드베리가 작곡하였다.

지리

스웨덴 남부의 스카니아
Sandhamn 섬, 스톡홀름 군도.

북유럽에 위치한 스웨덴은 발트해와 보트니아 만 서쪽에 위치하여 긴 해안선을 따라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쪽 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서쪽에는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구분하는 범위인 스칸디나비아 산맥이 있다. 핀란드는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덴마크, 독일, 폴란드, 러시아,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해양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외레순트 다리를 통해 덴마크(남서부)와도 연결되어 있다. 노르웨이와의 국경(길이 1,619km )은 유럽에서 가장 긴 연속 국경이다.

스웨덴은 위도 55° 에서 70° N 사이, 대부분 경도 11° 에서 25° E 사이에 위치해 있다 (Stora Drammen 섬의 일부는 11° 바로 서쪽에 있음).

스웨덴은 면적이 449,964 km²로 세계에서 55번째로 큰 국가이며 유럽에서 5번째로 큰 국가, 북유럽에서 가장 큰 국가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낮은 고도는 Kristianstad 근처의 Hammarsjön 호수 만에 있으며 해발 -2.41m(-7.91ft) 아래에 있다. 가장 높은 지점은 해발 2,111m(6,926피트) 의 케브네카이세이다 .

지형과 지질

스웨덴의 지질 구조는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변성암 지반을 바탕으로, 유럽에서 보기 드문 화강암 산체인 거대한 스칸디나비아 산맥이 전국을 종단하고 있다. 이 풍부한 편으로 주요 수출국이나, 석탄은 부족하여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스웨덴 최남단의 스코네는 덴마크와 흡사한 낮은 지형으로 중생대층(中生代層)으로 되어 있으며, 빙기(氷期)의 퇴적층이 이를 뒤덮고 있다. 넓은 평야 사이에 돔 모양의 구릉이 나타나며 높이는 200m를 넘지 않는다. 북쪽의 스몰란드는 그보다 약간 높으며, 그 속에서 옛 산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최고점은 343m이다. 하천은 여기에서부터 방사상으로 흘러, 동·남·서쪽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로 유입된다.

스몰란드의 북쪽은 스웨덴을 동서로 횡단하는 저지가 되고 이 저지는 구조성(構造性)의 것으로 요르디아기(期)에는 해진(海進)을 받았다. 제4기의 퇴적물로 덮여 있으며, 비옥하여 농업 생산력이 높은 지역이다. 이 저지에는 베네른호(5,585㎢)·베테른호(1,912㎢)·옐마렌호(480㎢)·멜라렌호(1,150㎢) 등 4개의 큰 호수가 있으며, 베네른호에서 유출하는 예타강과 베네른호·베테른호를 잇는 예타운하가 스톡홀름의 남쪽 130km 지점에 있는 쇠데르셰핑에까지 통한다. 두 수로(약 400km)에 의해 카테가트해와 발트해가 통하며, 이에 따라 스톡홀름과 예테보리가 서로 연결된다. 이 저지의 북쪽은 달라르나지방으로 삼림이 많고 철광석을 비롯하여 광물자원의 산출이 많다.

발트해에 면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해안평야는 후빙기(後氷期)에 융기한 지역으로 해성층(海成層)에 덮여 있으며, 농업지대로서의 가치가 크다. 스톡홀름 부근은 약 1,200개의 섬들이 미로와 같은 수로를 만들어 스웨덴식 다도해 경관을 보여준다. 발트해에 있는 고틀란드섬은 실루리아기(紀)의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서해안은 절벽을 이루나 모래사장으로 된 북쪽 해안은 사구(砂丘)가 발달해 있다. 고틀란드섬과 해안 가까이의 욀란드섬은 농목지로 이용된다.

스웨덴의 북부는 스칸디나비아산맥에 의한 서고동저형의 완만한 경사지이다. 스칸디나비아 산맥은 최고봉 셰브네카이세산(2,111m)을 비롯하여 2,000m 정도의 산이 몇 개 있을 뿐, 대체로 기복이 적은 산지로 칼레도니아조산운동이 있은 후 평탄해졌다가 융기한 것이다. 셰브네카이세산에는 권곡(圈谷)빙하가 현존하며, 빙기의 빙하지형이 산지 전체에 남아 있다. 하천은 산정상부에서 남동으로 흘러 보트니아만에 들어가지만, 스칸디나비아 빙상(氷床)이 후퇴할 때 남긴 퇴석으로 막힌 빙하호가 있다. 이 하천이 흐르는 방향은 지질시대 빙상·빙하의 유동방향을 나타내는데 급류로 된 부분도 많으며, 이 중 룰레강의 하르스프롱 폭포가 유명하다. 삼림한계선 너머에 산악지대가 형성되어 있고 중간부는 빽빽한 삼림지대이다. 하천은 발전 및 목재 수송에 이용된다.

기후와 식생

스웨덴의 기후는 해양성기후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가까운 보트니아만(灣)과 발트해(海)뿐만 아니라 먼 대서양의 영향도 강하게 받고 있다. 위도에 비하여 기온은 높으며, 기온의 연간 변화도 적다. 겨울은 길고 일조시간이 짧으며 추운 편이고, 여름은 짧고 일조시간이 길며 시원한 편이다. 여름의 평균기온은 남부 18℃, 북부 15℃이며, 겨울은 남부 -3℃, 북부 -10℃ 정도이다. 겨울의 온난하고 습한 서풍이 스칸디나비아산맥의 낮은 부분인 노르웨이 트론헤임을 넘어서면 북쪽은 춥고 남쪽은 따뜻하여 한역(寒域)이 갈라진다. 스톡홀름의 평균기온은 여름 15~17℃, 겨울 -1~-4℃이다. 강수량은 남부 600mm, 북부 300mm 정도이지만, 기온이 낮기 때문에 건조기후는 아니고 강수량은 여름에 많다. 고위도이기 때문에 여름의 일조시간이 길고, 최북단에서는 백야(白夜)가 나타난다.

식물의 생육기간은 남부에서 330일, 북부에서 130일 가량이다. 기후대를 나누면 남쪽에서부터 너도밤나무, 떡갈나무, 자작나무 순으로 식생지대가 전개되며, 고산지는 툰드라 기후지대이다. 북위 60° 이북은 전나무·소나무 등의 침엽수림이며, 이남은 이들과 함께 떡갈나무·너도밤나무가 섞이는 혼합림이다. 숲 속에는 늑대가 많았으나 19세기 개척시대에 산지로 쫓겨나고 그 대신 사슴이 우점종이 되었다.

역사

스웨덴의 역사는 1397년 형성된 칼마르 동맹에서의 탈퇴와 16세기 구스타브 1세 바사 왕에 의한 통일로 요약된다. 17세기에 스웨덴은 영토를 넓혀가며 스웨덴 제국을 형성했다. 이 시기에 점령했던 대부분의 영토는 18세기에 잃게 된다. 19세기 초에 핀란드와 스칸디나비아반도 밖에 있던 영토를 상실하였다. 1814년에 있던 마지막 전쟁 후로 스웨덴은 1905년까지 노르웨이와 동군연합을 결성한다. 1814년부터 스웨덴은 평화시에는 비동맹주의를 유지하고 전시에는 중립을 지키는 정책으로 평화를 유지하였다.

선사시대와 초기 스웨덴

이웃 나라 노르웨이처럼 스웨덴도 전 국토에 걸쳐 많은 암각화(스웨덴어로는 ristningar 또는 hällristningar라고 한다)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보후스랜(Bohuslän)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그림은 기원전 500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옘틀란드(Jämtland)의 그림이다. 그 그림들은 순록, 사슴, 곰, 물개와 같은 야생 동물을 나타내고 있다. 기원전 2300년부터 500년까지 가장 많은 그림들이 그려졌는데, 농사, 전쟁, 교역, 가축에 관한 그림들이 주로 그려졌다. 기원전 800년부터 500년까지는 성적 본능에 관한 그림이 보후스랜에서 발견되었다.

스웨덴이 국가로서 정확히 몇 년에 세워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스웨덴은 고대 웁살라(Uppsala)에 있던 가장 강했던 스베아 왕국(Svea Rike; 스베아 리케)이 발전되어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스베아 왕국의 존재는 100년경에 타키투스에 의해 이미 알려졌다. 서쪽과 동쪽에 있던 예아트스(Geats)도 또한 국가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1000년경에 처음으로 스베아와 예타 왕국(Göta Riken; 예타 리켄)에 기록된 왕인 올오프 회트코눙(Olof Skötkonung)이 등장하지만 재위 기간과 권력의 실재여부가 불명확하다. 12세기에 스웨덴은 여전히 에릭가(Erik clan)과 스베르케르가(Sverker clan)사이에 왕위 다툼을 하고 있었다.

결국에 그 왕위 다툼은 제3의 세력이 에릭가와 결혼하여 폴쿵 왕가(Folkunga dynasty)를 세우면서 마무리 되었다. 이 왕가는 칼마르 동맹이 결성되기 전까지 실질적인 국가로 존재하였고, 흑사병이 퍼지면서 결정적으로 쇠퇴하게 된다. 비가톨릭국가에서 가톨릭국가로의 전환은 복잡하고 점진적이고 때때로는 폭력적인 과정이었다.

초기에는 스칸디나비아와 색슨족 사이의 데인법에 의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수도승이 와서 포교 활동을 하였다. 독일의 영향력은 안스가르에 의한 포교 시도 때문에 초기에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특히 노르만 정복 이후로, 스웨덴 지역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스웨덴과 루스 귀족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동방 정교회의 영향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거의 없었다.

구스타브 1세 바사.

이렇게 통합된 기간 동안 스웨덴은 현재 핀란드의 중심인 타바스틀란드(Tavastland)로의 초기 십자군 정복에 의해 이미 핀란드를 포함하고 있었다.

흑사병과 스웨덴 내부 권력 분쟁 후에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 1세가 북유럽의 국가들을 1397년에 스웨덴 귀족들의 동의 하에 칼마르 동맹이란 이름 하에 통합한다. 하지만 통합으로 인한 계속되는 국가와 동맹 사이의 경제 압박은 결국 15세기에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에 분쟁으로 연결되게 된다. 결국 동맹은 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긴 분쟁 속에서 16세기에 해체되게 된다.

1523년 스웨덴은 덴마크와의 스웨덴 해방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칼마르 동맹에서 독립했다. 이를 계기로 칼마르 동맹은 해체되었다. 구스타브 1세 바사 국왕은 스웨덴의 독립과 칼마르 동맹을 재구성하는 세력들을 부수기 위해 싸웠고 근대 스웨덴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동시에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를 끊고 종교 개혁을 받아들여 루터교를 국교로 정한다.

근대 스웨덴

17세기에 덴마크, 모스크바 그리고 폴란드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 승리한 스웨덴은 겨우 100만의 인구에도 불과하고 강대국으로 떠오른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는 종교적 이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그리고 유럽의 균형을 위해 30년 전쟁에 참전한다.

1645년의 브룀세브로(Brömsebro) 조약과 1658년의 로스킬데(Roskilde) 조약에 의해 스웨덴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중요한 지역을 획득한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후에 에스토니아, 리보니아, 그리고 북부 독일이 되게 되는 잉그리아,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배하게 된다.

모스크바, 작센-폴란드, 덴마크-노르웨이는 1700년에 동맹을 맺고 스웨덴 제국을 공격하였다. 스웨덴의 칼 12세는 비록 어렸지만 대북방 전쟁 초기에 나르바 전투에서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다. 모스크바를 공격하여 모스크바를 제압하는 계획은 그가 너무 야심찼다는 것을 증명한다. 폴타바 전투에서는 모스크바에 큰 패배를 당한 칼 12세는 1718년 노르웨이의 프레데릭스텐(Frederiksten) 요새 공성전 도중 총에 맞아 죽는다. 후에 맺어진 평화조약에서 프로이센과 잉글랜드-하노버가 합세한 동맹군은 스웨덴의 힘에 의한 지배를 종식시켰고 제한된 왕권과 의회 정치시대를 열게하였다.

의회 정치는 200년동안 유지되었다. 구스타브 3세에 의한 무혈 쿠데타는 스웨덴을 절대 왕정으로 복귀시켰다. 이런 지배는 나폴레옹 전쟁에 말려들 때까지 지속되었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해 스웨덴은 1809년에 핀란드를 러시아에 넘겨주게 된다.

노르웨이와의 통합과 스웨덴의 산업화

그 후에 프랑스 출신 장군 장바티스트 베르나도트(Jean-Baptiste Bernadotte)가 의회(Riksdag)에서 왕세자로 선출되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한다. 1813년 그의 군대는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연합군에 합류하여 본회베드(Bornhöved)에서 덴마크군을 격파한다. 키엘 조약에서 덴마크-노르웨이의 왕은 노르웨이 본토를 스웨덴 왕에게 넘겨주게된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독립을 선언하며 새로운 왕을 선출한다. 스웨덴은 키엘 조약을 따를 것을 주장하며 노르웨이를 침공한다. 짧은 전쟁 후에 모스 조약은 두 나라 사이의 동군연합을 승인한다. 이 연합은 1905년 노르웨이의 요구에 의해 평화롭게 해제된다. 칼 14세 요한의 즉위기간(1818-1844) 동안 부드럽지만 효율적인 산업화가 시작된다. 이 첫 발걸음은 시골의 대장간과 초기 섬유산업과 제재소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산업 혁명 기간 동안 스웨덴의 주요 농업활동은 차차 마을단위에서 개인 농장활동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경제와 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구의 그러한 성장을 보여주지 못한다. 대략 100만명의 스웨덴 사람들이 1850년과 1890년 사이에 미국과 캐나다로 이주한다. 19세기는 많은 반대 언론의 등장, 자유 기업에 의한 거래와 생산에서 길드 독점의 폐지, 조세제도와 선거제도의 개편, 국가 상비군의 설치, 그리고 3개의 주요 정당 - 민주당, 자유당, 보수당의 등장으로 대표된다.

스웨덴이 중립을 지켰던 제1차 세계 대전 기간과 전후에 스웨덴은 전 세계에 걸친 철, 볼 베어링, 펄프, 성냥 수요로 인해 큰 이익을 본다. 전후의 번영은 현대 스웨덴의 주체성과도 같은 사회보장기금 마련에 큰 보탬이 된다. 1930년대의 소비에트와 독일의 확장주의에서 중립을 지키는 외교정책은 북유럽 공동 방어전선의 형성을 실패하게 했다. 스웨덴은 제2차 세계 대전동안에도 중립을 지켰고 현재까지도 비동맹주의를 유지하고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이웃나라가 차츰 전쟁에 말려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중립을 유지하였다. 스웨덴은 전쟁을 하는 양 쪽 모두를 지원하였다.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는 수많은 헝가리의 유대인들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스웨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NATO, WTO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의 지위를 고수하며 북유럽 국가들의 중립 정책, 노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를 선도했다. 하지만 친미국적 정책을 취해 소련으로부터 서방 세계의 북방 측 방벽 역할을 하였다. 나중에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비난하는 등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지만 최근 비밀 해제된 외교 문서들을 보면 NATO와 WP 간 전쟁이 일어나면 NATO측으로 참전하기로 미국과 합의하기는 했다. 스페츠나츠의 주요 실전 훈련용 침투 루트가 아프가니스탄, 체첸과 더불어 스웨덴 방면이었으며, 이 때문에 스웨덴 군의 평시 스페츠나츠와의 교전 비율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스페츠나츠가 하수구를 통해 스웨덴 왕궁 정문 앞까지 침투했다가 경비대에 발각되어 총격전 끝에 도주하기도 했을 정도다.

스웨덴은 복지 정책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하고 여러 선진적인 정책을 시행해서 매우 살만했고, 난민을 많이 받아들이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세금 부담이 과중해지면서 점차 장기집권하던 사민당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었고 1970년대 초반에 원자력 발전 건설 논란도 일어났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경제가 다소 침체되었고, 이것의 영향으로 잠깐 보수 3당의 연합 정권이 수립되었다. 그래도 이 시절에도 사회민주당은 원내 1당이었다. 사실 이 때의 스웨덴은 이미 소득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삶의 질도 상위권을 유지했기에 이전에 비해 비교적 안 좋은 상황이었지,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기존 정권의 지지가 높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오일 쇼크의 후유증을 차츰 극복하였고 자산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다시 침체를 겪었지만 침체가 장기화되지는 않았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다.

공산권 붕괴 후에는 중립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였고, 1995년 유럽연합에 가맹하였으나 NATO에는 가입하지 않고 유로화 사용도 거부하는 등 아직도 독자적인 정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22년 단행된 러시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라 5월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타진하는 중이다.

2010년대 들어서는 세계 금융위기같은 글로벌 경제 위기와 중동발 난민 급증으로 인한 불만이 복지국가로 유명한 스웨덴에서조차 극단 세력의 선거 약진을 불러왔다. 다만 상대적으로 부상했다는거지 절대치론 여전히 집권하긴 좀 무리고, 스웨덴 자체가 극우에 반감이 제법 많은 나라다 보니 그렇게 부상했던 정당은 이미지 실추를 걱정해서 내부적인 자정을 해 현재는 다른 국가의 극단 세력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한 정당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쓸려 나간 극단 세력의 인사들은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 이전보다 더 노골적인 극단성을 띄는 중이다. 다만 단독 집권은 요원해보인다.

2021년 6월 21일에 스웨덴 의회가 뢰벤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하면서 연립정부가 무너졌다.

스웨덴 동부 노르셰핑에서 극우단체의 이슬람 경전 꾸란 소각으로 폭동이 일어난지 4일만에 스웨덴 남부에서도 극우단체의 폭동이 이어져 40명이 부상했다.

정치

스웨덴 의회
현 스웨덴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 와 그의 배우자 실비아 왕비.

헌정

스웨덴은 입헌군주국으로 1973년에 즉위한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King Carl XVI Gustaf)이 국가수반이며 다. 국왕은 상징적인 의미만을 가진다. 스웨덴은 동시에 의회민주주의 체제로 총리가 행정수반으로 정부운영 권한을 가진다. 총리는 4년마다 실시되는 의회선거 이후 의회(Riksdag)에서 총리후보를 추천하고 역시 의회의 지명으로 임명된다. 이러한 정부구조로 스웨덴은 내각과 의회가 실질적인 정부운영 권한을 가진다.

스웨덴의 헌정질서는 정부운영법(Instrument of Government), 왕위계승법(The Act of Succession), 언론자유법(The Freedom of the Press Act) 그리고 표현의 자유법(The Fundamental Law on Freedom of Expression) 등 4개의 기본법과 의회법(Riksdag Act)에 기반을 둔다. 정부운영법은 시민의 권리와 정보취득 및 표현의 자유를 담아 이에 근거하여 정당구성과 종교 활동의 자유가 보장된다. 1810년에 제정된 왕위계승법은 왕가의 왕위계승 절차와 요건이 명시되어 있다. 1970년대까지 왕위계승은 남성으로 한정되었으나 1979년 의회의 결정으로 여성도 동등한 권한을 가진다. 1766년에 제정된 언론자유법과 가장 최근인 1991년에 제정된 표현의 자유법은 언론과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을 보장하는 기본법이다. 1974년에 제정된 의회의 지위에 관한 의회법은 4대 기본법은 아니지만 기본권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갖고 일부 조항은 기본법 수정보다 더욱 어렵다.

정당과 선거

스웨덴은 단원제 의회로 4년마다 실시되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349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전통적으로 스웨덴 의회는 사회민주당과 중도당 양당구조를 형성한 가운데 여타 3-4개의 군소정당이 의석을 구성하는데 최근 스웨덴민주당이 급격이 의석을 확대하였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민주당, 중도당(Moderates), 스웨덴민주당, 중앙당, 좌익당, 기독민주당, 자유당, 녹색당 등이 있다.

스웨덴의 선거연령은 18세로 투표전날 기준 18세가 되어야 투표권을 갖고, 의회와 지방자치 선거는 4년마다 그리고 유럽의회 선거는 5년마다 실행된다. 스웨덴에서 유권자는 약 700만 명 규모로 의회(Riksdag), 21개의 주(counties) 그리고 290개의 자치구(municipalities)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스웨덴에 거주하는 타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은 거주기간과 무관하게 유권자로 등록할 경우 주와 자치구 선거권을 가진다. 이러한 원칙은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에서 동일하게 적용된다. 비유럽연합 국가인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시민 역시 동일한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이외의 국가시민은 최소 3년 이상 스웨덴에 거주하고 유권자로 등록한 경우에 한해 주와 자치구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행정

스웨덴 행정구역

행정부는 총리와 22명의 장관으로 구성되며 의회에 책임을 지고 입법과 행정운영을 위해 의회와의 협력이 요구된다. 이외에 스웨덴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약 400여개의 산하기구 및 위원회가 구성되어 정부업무를 지원한다. 일반적인 중앙정부 운영은 약 4,500여명의 공무원과 집권내각에서 임명한 200여명의 관료로 구성된 총리실, 각 장관실과 행정부처를 통해 이루어진다. 총리실과 각 장관실에서 비서 및 정책자문관 등으로 활동하는 200여명의 임명직 관료는 내각이 교체되면 자동적으로 사임한다. 중앙정부의 주요 의사결정은 매주 개최되는 내각회의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내각회의의 결정이 유효하려면 최소 5명 이상의 장관이 참석해야 한다. 스웨덴은 유럽연합 회원국으로서 모든 정부부처는 유럽연합과 관련된 회합참석과 보고서 제출과 같은 공통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스웨덴은 21개의 주(counties)와 290개의 자치구(municipalities)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는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되어 구성된 주이사회(County Council)가 고도의 자치권을 행사한다. 스웨덴은 1992년에 제정된 스웨덴지방정부법(Swedish Local Government Act)에 따라 자치구 구성과 운영이 이루어진다. 각각의 자치구는 선거로 구성된 의회와 이사회를 두고 있으며 이사회에서 임명한 자치구운영위원회(Municipal Executive Board)가 행정업무를 진행한다.

한편 스웨덴에서 최초로 도입한 옴브즈만(ombudsmen)은 여러 국가와 유럽연합에서 벤치마킹 할 정도로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부운영을 상징하는 제도이다. 스웨덴의 옴브즈만 운영은 법무장관의 책임 하에 의회와 옴브즈만재판소(Ombudsmen for Justice)의 감독이 뒤따르는 구조이다. 스웨덴의 옴브즈만 제도는 중앙과 지방정부의 행정운영은 물론이고 소비자옴브즈만, 양성평등옴브즈만, 아동옴브즈만 등 다양한 부분에서도 활발히 적용되고 있다.

국방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유럽의 군사 강국이지만 근대에 들어 중립외교를 고수하며 2차 대전도 피해가 약 200여 년간 전쟁을 겪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항공기를 비롯해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유럽국가와 같이 자체의 군수산업을 보유한 국가이다. 스웨덴의 방위비 규모는 GDP 대비 1%를 다소 상회하며 냉전시기에는 중립국 지위를 자력으로 유지하기 위해 징집제를 바탕으로 방위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스웨덴은 탈냉전으로 안보위협이 감소하면서 2010년에는 징집제를 폐기하고 모병제로 전환하였으나,2015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으로 북동부 유럽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2017년에 다시 징집제를 부활하여 18-47세 남성은 병과에 따라 7-15개월간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육해공 3군으로 구성된 스웨덴군(Försvarsmakten)은 자국의 방위와 대외적으로는 평화유지를 위한 파병 기능을 수행한다. 반면에 테러대응과 국가 주요 인사와 시설물 보호 등 특수 임무는 스웨덴안보국(Swedish Security Service) 소관이다.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국제사회의 분쟁해결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로 콩고민주공화국, 사이프러스,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코소보, 레바논, 아프가니스탄과 차드 등에 자국군을 파병하고 있다. 1974년까지 공식적으로 스웨덴군의 사령관은 국왕이었으나 시대흐름을 반영하여 이후 군의 최고사령관((Överbefälhavaren)은 현역 군인이 맡는다. 따라서 국왕은 스웨덴군의 실질적 지휘권을 갖지 않는다.

스웨덴은 냉전시기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력 유지 차원에서 군수산업 육성과 함께 예비군 제도의 활성화로 1980년대 말 이전까지는 유사시 약 백만 명의 병력을 징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의 붕괴와 유럽에서 안보위협이 완화되면서 스웨덴은 2010년 7월 1일을 기해 지원병제로 전환하였다. 이에 따라 냉전이 한창인 1975년 약 45,000명 수준이었던 현역군은 모병제가 실행되는 2003년 15,000명까지 급감하게 되었다. 이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과 발트해에서 러시아군 확장에 위협을 느낀 스웨덴은 기존 모병제를 재검토하여 2017년 3월 부분적으로 징집제를 다시 도입하여 2018년 이후 약 60,000명 수준의 현역병을 유지하고 있다. 여성 역시 군 지원이 가능하다.

외교

스웨덴의 외교는 100여개에 달하는 해외의 대사관, 영사관, 대표부(delegation), 대표단(representation) 그리고 약 400여 명에 달하는 명예영사 등을 통해 진행된다. 스웨덴의 외교정책은 인접한 북유럽국가와의 긴밀한 협력에 집중되어있다. 스웨덴은 1952년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페로제도를 포함한 북유럽 6개국이 참여하는 북유럽이사회(Nordic Council)를 결성하여 연대와 공동의 가치 수호를 기치로 정치, 경제협력을 취하고 있다. 북유럽이사회는 유럽에서 연원이 깊은 국가 간 협력체로 특별히 비정치적 부분을 중심으로 협력이 활발하다.

스웨덴의 대외정책은 UN 등 주요 국제기구에서 자국의 이해관철과 국제적 이슈에서 여러 국가와의 공동대응에 초점을 둔다. 스웨덴은 1946년 UN 회원국이 되었고 1960년대 이래로 UN을 통해 분쟁 지역 내 평화적 협상과 해결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로 지목된다. 또한 스웨덴은 UN을 통한 여러 분쟁지역에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약 7만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였고 민간부분에서도 정부와 비정부간기구를 통해 분쟁해결에 활발히 개입하고 있다. 이외에도 스웨덴은 국제사회에서 인권외교가 가장 앞선 국가로 UN을 통해 군축, 고문과 사형제 폐지, 아동의 권리확대, 인종분리정책 철폐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였고 UN 산하기구에 많은 기여금을 내는 국가 중 하나이다.

1990년대 이후 스웨덴의 대외관계의 핵심 사안은 유럽연합에서의 자국의 이해 관철이다. 1980년대 말까지 냉전시기 스웨덴과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러시아와 인접한 지리적 요인으로 중립적 외교를 고수하여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다. 다만 스웨덴은 경제적 이해를 위해 1960년 5월에 영국의 주도로 유럽 7개국이 참여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에는 가입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탈냉전이 도래하면서 스웨덴은 중립국 지위를 버리고 1991년 7월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하여 1995년 2월 오스트리아와 핀란드와 함께 유럽연합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스웨덴은 유럽연합 가입과 함께 유럽자유무역연합에서는 자동으로 탈퇴하였다. 이후 스웨덴은 2001년 3월 쉥겐협정(Schengen Agreement)에 가입하여 자국을 포함하여 유럽 내 쉥겐지역 26개국과 국경을 개방하였다.

스웨덴은 유럽연합에서 통상, 인권 및 환경정책 등에 깊은 이해를 가지고 활동하며 특히 환경과 기후변화정책에서는 스웨덴이 여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연합하여 유럽연합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외교를 위해 스웨덴은 인구규모에 비해 많은 약 1,200여 명의 국내관료를 유럽연합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를 비롯해 여러 유럽연합 기구에 파견하고 있다.

그러나 스웨덴은 유럽연합 가입 이후에도 복지국가 시스템과 경제정책 자율성 제약을 이유로 유로존 가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스웨덴은 여전히 유로화 대신 자국화폐인 크로나(Krona)를 사용하고 있다. 2003년 9월 스웨덴은 유로존 가입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였으나 55.9%가 유로존 가입을 반대하여 현재까지도 비유로존 국가로 남아있다.

대한관계

스웨덴은 1950년 한국 전쟁 시 서울부산에 야전병원단을 파견하여 현재의 국립중앙의료원의 전신이 되었다. 스웨덴은 한국전쟁 종료와 함께 1953년부터 현재까지 중립국 감시위원회(NNASC)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있다. 한국과 스웨덴은 1959년 3월 11일 공관급 외교관계로 공식 수교하였으며 주영국대사가 스웨덴대사를 겸임하였다. 이후 1963년 7월에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이 개설되었고 1973년 7월에는 서울에 주한 스웨덴대사관이 개설되었다. 스톡홀름에 위치한 주스웨덴 한국대사관 청사는 1993년 4월 한국정부에서 매입하여 이전한 것이다. 2016년 12월 기준 스웨덴의 한인교포는 3,100여 명이다.

한국과 스웨덴의 무역규모는 2016년 약 24억 달러, 2017년 약 27억 달러 규모로 양측 간 무역수지는 1-2억 달러 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스웨덴은 한국에 승용차, 화물차, 원동기, 의약품 및 기타 철강제품을 수출하며 약 70여 개의 스웨덴 기업이 한국에 진출해 있다. 반면에 한국은 승용차, 자동차 부품, 배터리, 합성수지 등을 스웨덴에 수출하는데 유럽현지공장을 통한 승용차, 타이어 및 가전제품 수출이 증가추이에 있다. 투자부분에서는 스웨덴의 한국에 대한 투자액이 2014년 누적신고액 기준 268건에 약 21억에 달하는 반면 한국의 스웨덴에 대한 투자는 2018년 누적신고액 기준 87건에 1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의 유럽에 대한 투자가 주로 중동부유럽 현지공장 운영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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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스웨덴은 세계적으로 국가 경쟁력이 높은 나라이다. 대표적인 경제강소국 중 하나로, 2017년 기준 스웨덴의 1인당 GDP는 $53,248이다.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대표 기업으로는 볼보, 에릭슨, 일렉트로룩스, 이케아, H&M 등이 있다. GDP 대비 R&D 지출도 높은 편이다.

유럽 연합에 가입한 국가이긴 하지만, 유로화를 쓰지 않고 자체 화폐인 크로나(Krona, 왕관을 뜻하는 crown에서 유래)를 쓴다. 화폐 단위 표기는 ':-'를 사용하며, 통화 기호는 SEK이다. 한때 유로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외무부장관이 유로 도입 반대 세력들의 테러로 살해당하는 등, 국민들의 반발 때문에 도입하지 않고 있다.

스웨덴은 북유럽 제1의 광공업국이다. 철광석의 생산이 세계 10위 안에 들며, 큰 수출품이 되고 있다. 대신 석탄이 별로 생산되지 않아 많이 수입하는 형편이다. 자동차, 기계, 철강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이 제품의 수출량이 큰 편이다.

무역 상대국은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영국, 미국 등이다.

산업

키루나 철광산(Kiirunavaara)

북유럽의 독일이라 할만큼 강력한 제조업 기반이 있다.

세계 최대의 지하 광산 중 하나인 키루나 철광산이 스웨덴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부터 양질의 철광석, 구리 생산으로 유명해 스웨덴제 도검은 스페인의 톨레도산 도검과 함께 유럽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았으며, 현재도 도검용 강재 등 고가의 특수 합금강 분야에서는 여전히 독일보다 우위이다. Uddeholm과 Sandvik 등의 기업이 특수강 분야에서 유명하다.

자동차, 항공기, 조선, 정밀기계, 전동공구와 엔진공구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자동차 메이커로 볼보, 스카니아, 코닉세그, 통신기기 업체 에릭슨, 전자제품 업체 일렉트로룩스, 전기톱&오토바이 업체 허스크바나, 광산&도로용 착암기&공기압축기 업체 아트라스콥코 등이 순수 스웨덴 기업이고 아폴로 프로젝트에 쓰이고 연정훈 카메라라고 불리는 광학회사인 핫셀블라드도 스웨덴 기업이다. 카메라와 관련된 조명 프로포토도 스웨덴 기업이다. 세계적인 제약업체 중 하나인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스웨덴 합작기업이다. 자국산 전투기와 자국산 IFV를 수출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는 최대 수출 품목은 이케아와 ABBA라고. 볼보 등 세계적인 중장비 회사도 있다. 배틀필드 시리즈의 제작사 다이스, 페이데이 시리즈의 제작사 오버킬 소프트웨어, 그라운드 컨트롤과 월드 인 컨플릭트의 제작사 매시브 엔터테인먼트, 대전략게임들을 만드는 Paradox Interactive, 마인크래프트를 만든 회사 Mojang AB도 스웨덴 회사.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노벨의 조국이고, 매년 노벨상 수상식이 열리는 곳이다.

동시에 자국 승용차 메이커 두 곳을 모두 딴 데 팔아먹은 것으로도 유명한 나라. 볼보사브 모두 굴지의 명차 메이커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 볼보는 중국에, 사브는 인도에 적을 둔 상태이며 사브 자동차는 NEVS로 이름을 바꾸었으므로 브랜드만 놓고 보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어차피 두 회사 모두 경영 및 마케팅 실패로 인한 사태였으므로 나라 탓을 할 건 아니지만, 한국 같았으면 나라가 뒤집힐 상황에서 스웨덴 정부가 어느 정도의 구제책을 세웠는지는 알 방도가 없다. 어차피 볼보는 트럭과 중장비만으로 만족하는 모양새이며, 사브는 전투기 장사가 잘되는지 자동차에 큰 욕심이 없는 듯. 하지만 군수산업의 특성상 사브라는 회사 자체의 운명이 어찌될지는 불투명하다. 볼보는 최근 볼보코리아에서 광고를 찍었으며, 이 광고는 텔레비전과 인터넷 등에서 나오고 있다.

쓰레기 재활용을 엄청 잘한다. 전체 쓰레기의 96%가 재활용과 전력발전용으로 쓰일 정도다. 하지만 쓰레기 발전시설이 너무 잘 되어있는 나머지 전력발전에 필요한 쓰레기량이 부족해 외국으로부터 쓰레기를 수입한다.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주며 받는 비용도 스웨덴의 수입원 중 하나다. 주로 인근 노르웨이나 핀란드, 덴마크 등으로부터 쓰레기를 수입하고있지만 쓰레기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타 유럽국가에서 쓰레기를 수입하기도 한다.

임산자원 또한 스칸디나비아 지역 특성상 양과 질에서 세계 수위권을 달리고 있는데, 풍부한 목재 공급능력을 바탕으로 한 펄프와 제지 산업은 스웨덴-핀란드에 기반을 둔 세계 제1의 펄프-제지 업체인 스토라엔소로 대표된다.

스웨덴 국토는 총 면적이 45,095,200 헥타르이다. 이는 전세계 육지면적의 0.3%를 차지하는 면적이다. 스웨덴의 국토 면적 순위는 56위다. 스웨덴의 약 50%는 삼림지대로 22,531,000 헥타르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중 호수와 하천이 9%이며 기타 산 등이 31%를 차지한다. 경작지가 국토에 비해서는 적다. 이렇게 스웨덴의 국토는 대부분이 불모지이다. 그나마 스웨덴의 경작지는 약 300만 헥타르지만 한국의 195만 헥타르보다는 많다. 주택지는 국토에서 17%를 차지하고 있다.산림청 국토비율 자료 스웨덴의 경작지는 국토의 8%를 차지하며 국토의 길이가 길어서 남북 간의 환경 차이가 심하다. 국토의 8%인 300만 헥타르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기후와 환경 때문이다. 특히 북극에 가까운 북부 지방의 끝은 경작일이 140일에 불과하다. 이는 보통의 북반구 국가나 아시아, 동남아시아 등과는 상당히 다른 조건이고 열악한 조건이다. 그나마 남부의 끝은 경작일수가 240일이다.

운송과 교통

외레순 대교(Ôresund bridge)

스웨덴은 전역이 24개 지역네트워크로 연결된 länstrafik으로 불리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구축되어 있어 여행자들이 버스와 기차를 단일 티켓으로 연계하여 이용할 수 있다. 스웨덴은 영토에 비해 인구가 적어 지하철 건설 필요성이 크지 않아 유일하게 스톡홀름에만 지하철이 운행되며 약 100여개의 역을 통과한다.

2002년 기준 스웨덴의 도로연장은 210,760km로 이중 1,439km의 고속도로를 포함하여 총 162,707km가 포장도로이다. 스웨덴의 철도 총 연장은 12,821km로 스톡홀름시는 공항과 고속철로 연결되어 있다. 스웨덴의 철도는 정부운영과 함께 부분적 민영화로 여러 민간회사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의 작은 노선의 경우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국영기업이 운영하고 있다.

2000년에 건설된 외레순 대교(Ôresund bridge)는 스웨덴 말뫼(Malmö)와 덴마크 코펜하겐(Copenhagen)간 16km를 잇는다. 유럽대륙과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도로이다. 해상대교로 일부 구간은 터널로 연결되고 자동차 도로와 철로로 구성되어 있다. 외레순 대교 건설 이전에는 스웨덴과 덴마크는 약 1시간이 소요되는 페리를 통해 왕래하였는데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하여 오래전부터 대교건설이 논의되어 왔다. 한편 19세기 초에 스톡홀름과 예테보리(Göteborg)간에 건설된 총 연장 613km에 달하는 예타운하(Göta Canal)는 오랜 기간 내륙해상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예타운하는 현대에 들어 교통 인프라의 역할보다는 여러 호수를 연결한 아름다운 풍광으로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다.

스웨덴의 항만과 공항 역시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예테보리, 할름스타드(Halmstad) 및 스톡홀롬 등 항구도시에는 현대적인 컨테이너 터미널을 갖추고 있다. 스웨덴 전역에는 51개의 다양한 규모의 공항이 운영되는데 이중 11개는 국영이다. 스웨덴은 1991년 국내항공시장 자유화조치를 단행하여 SAS, 말뫼항공(Malmö Aviation) 그리고 트랜스웨드(Transwede) 등 3개의 국내항공사가 여객과 화물운송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영항공사인 SAS는 스웨덴의 최대 항공사로 덴마크와 노르웨이정부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

인문사회

인구

스웨덴은 서유럽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구가 많이 증가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안정적으로 증가해 온 편이다. 인구가 1980년부터 1990년까지 느리게 증가했던 시기는 있었지만 정체한 적은 없었을 정도로 스웨덴의 인구는 계속 조금씩 늘어나 왔다. 2017년 1월 20일에 스웨덴 통계청은 스웨덴 인구가 1,000만 명을 넘겼다고 밝혔다.

스웨덴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민을 내보내는 나라였다가 제2차 세계 대전 후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로 바뀌었다. 2004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인구의 13.3%가 외국 태생이고 약 5분의 1이 이민자거나 그 자녀들일 만큼 이민자 출신이 많다. 이민자들의 출신지는 핀란드, 구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터키, 이란, 칠레, 그리고 기타 북유럽 국가 순이다. 스웨덴은 내전에 놓여있던 나라들로부터 피난민들을 많이 받아들였다.

이들은 스웨덴 사회에도 많이 진출했다. 예를 들어 1986년에 암살된 전 총리 올로프 팔메는 네덜란드의 후손이다. 그러나 2010년대 시리아 내전 등으로 유럽에 난민이 폭발적으로 유입되며 테러 및 범죄가 증가하는 것 아니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되자, 스웨덴도 상기한 스웨덴 민주당 같은 극우 성향의 정당들이 2010년대 들어 일정 세를 얻고 있다.

언어

스웨덴은 스웨덴어(svenska)를 공용어로 지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어는 같은 북게르만어군인 노르웨이어와 덴마크어와 유사하고 특히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노르웨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서로 상당한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노르웨이어와 유사하다. 반면, 말이 아니라 글은 노르웨이어(보크몰)가 아닌 덴마크어와 유사하다. 스웨덴 남부의 일부 지역은 덴마크어에 가까우며, 남북에 걸쳐 기다란 국토로 말미암아 지역에 따른 사투리의 차이가 꽤 있다. 북부의 사미인들이 쓰는 말은 1960년대까지도 억눌렸다. (이 점은 다른 스칸디나비아 나라들도 사실상 마찬가지다.) 역사적 이유로 이웃 핀란드의 주민 약 7%가 스웨덴어를 쓰며, 스웨덴어가 핀란드어와 더불어 공용어로 정해져 있다.

1999년부터 스웨덴은 공식적으로 5개의 소수 언어를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사미어, 메앤키엘리어(Meänkieli, 토르네달렌 핀란드어), 표준 핀란드어, 로마니어, 이디시어이다. 추가로 아랍어를 스웨덴의 공식언어로 인정할 지에 관해서는 아직 검토 중에 있다.

사미어는 스웨덴에서 7천명 정도가 사용하며 아리에플로그(Arjeplog), 옐리바레(Gällivare), 요크모크(Jokkmokk), 키루나(Kiruna) 시와 그 주변의 정부기관, 법정, 유치원, 양로원에서 쓸 수 있다. 사실상 마찬가지로 핀란드어와 메앤키엘리어는 옐리바레, 하파란다(Haparanda), 키루나, 파얄라(Pajala), 외베르토르네오(Övertorneå) 시와 그 주변에서 쓸 수 있다.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집중적인 영어교육을 통해 스웨덴인들은 영어를 아주 잘 구사한다.

종교

스톡홀름의 개신교 카타리나 교회.
1984년에 개원한 말뫼 모스크.

2018년 기준으로 인구의 67% 정도가 개신교 신자로 집계되었다. 이 중 61.2%는 루터회 국교회, 3.8%는 자유교회[27] 신자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이슬람계 이민자 및 난민의 영향으로 2018년 기준으로 스웨덴 인구의 8%정도가 무슬림이라고 한다. 이들 중 대다수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처럼 세속주의 성향의 무슬림이다.

종교개혁 이래 루터교회의 전통이 강했던 나라였다. 스웨덴어가 노르웨이어와 달리 일찍 표준 정서법이 정립된 것도 일찌감치 성경을 번역한 덕분이었다.

20세기 전반까지 루터교회 신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1960년대 이후 스웨덴이 급격히 세속화되자 1980년대 후반부터 신자수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자발적인 헌금이 아닌 자산격차 문단에 상기된 교회세 강요 문제도 젊은 층이 이탈하는 데 한몫 했다. 2003년에는 기존의 스웨덴 국교회가 정통교리와 성경에서 지나치게 벗어났다고 생각한 일부 성직자들이 '선교관구'(missionsprovinsen)란 이름으로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2010년 유로바로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8%에 불과하다고 집계되었으며, 전년도인 2009년에 실시된 갤럽 조사에서는 17%만이 교회가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응답했다. 한 마디로, 오늘날 스웨덴에서 루터회는 진지하게 종교로 믿기보다는, 문화적 기반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보면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스웨덴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편이다.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편이라서 스웨덴 내 다른 주민들과 갈등이 있다. 이들 외에도 태국에서 결혼 이민 혹은 태국 식당에 일하러 오는 사람들의 경우는 상좌부 불교를 믿고 있다.

중동에서 탄압받는 소수종파 만다야교 신도 및 아시리아 동방교회 소속 아시리아인들이 스웨덴으로 대거 망명하였다. 오늘날 만다야교 교계 내에서는 중심지를 아예 이라크에서 스웨덴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진지하게 나오고 있다고도 한다.

교육

스웨덴은 1842년 13세 이하 의무교육제도를 도입하였다. 스웨덴은 사민주의에 기초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한 국가로 특별히 모든 국민에게 높은 수준의 교육기회를 부여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스웨덴 교육에서 유치원은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개별 아동의 능력과 관심을 북돋우고, 남녀가 동일한 주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스웨덴의 의무교육은 4단계로 진행되어 유치원(förskola) 3년, 초등기초(lågstadiet) 3년, 초등중급(mellanstadiet) 3년 그리고 초등상급(högstadiet) 3년으로 구성되며 6-13세 아동에게는 방과 후 돌봄 서비스도 제공된다. 스웨덴의 5세 미만 아동은 시에서 운영하는 유치원(förskola)을 다닌다. 유치원은 학부모의 경제적 여력 및 고용상태를 고려하여 시에서 보조금 지원을 통해 운영된다. 이외에 소수 원주민인 사미족(Sami)을 위한 학교가 별도로 운영된다. 의무교육인 초등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중등교육과정인 김나지움(Gymnasium) 3년을 이수하는데 이는 의무사항은 아니다. 또한 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의 약 1/3은 대학과 대학원 등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한다.

웁살라 대학교 (1477년 설립)

스웨덴 국민은 중등교육기관에서부터 대학과 직업교육까지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모든 교육기관은 무료이며 시스템이 잘 갖춰있다. 따라서 스웨덴 국민은 유럽연합 내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시간이 긴 편이다. 스웨덴에는 50여 개의 대학이 있으며 이중 예테보리(Göteborg), 스톡홀름(Stockholm), 룬드(Lund), 웁살라(Uppsala) 대학 등이 가장 오래되고 유서 깊으며 세계적으로도 학문적 명성을 얻었다. 스웨덴의 대학은 8월말부터 1월 중순 그리고 1월 중순에서 6월초까지 2학기제로 운영되며 6월부터 8월까지 여름방학 기간 썸머스쿨이 열린다. 스웨덴 대학은 학생의 요구에 맞춘 실질적 교육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이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다른 장점은 학생들이 공정한 학업평가를 받고 학내에서 다양한 비공식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권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대표적인 인권선진국으로 인권과 기본권은 기본법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외교정책의 주요한 정책기조로 독일 및 프랑스 등과 함께 유럽연합 내에서도 난민과 이민자 수용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1950년에 유럽 47개국 간에 체결된 유럽인권협약(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Human Rights and Fundamental Freedoms)과2000년에 유럽연합에서 체결한 유럽연합기본권헌장(Charter of Fundamental Rights of the EU)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대표적인 유럽 국가이다. 스웨덴에서는 표현과 결사의 자유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교육과 주거보장, 인종, 성별과 성적 취향 등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개인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된다.

스웨덴은 1921년 여성의 참정권 허용 이후 여러 개혁을 통해 양성평등을 철저히 실행하는 국가이다. 스웨덴에서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괄목하게 진척되면서 정부차원에서 남녀평등을 위한 제도와 환경개선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결과 과학, 문화 및 언론계를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매우 활발하다. 특히 공직과 정치계에서는 완전한 남녀평등을 실현하여 의회 내 여성의원 비율이 약 45%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민

2018년 기준 스웨덴 인구의 약 19%가 약 250만명의 이민자로 이뤄져 있다. 과거 스웨덴인들은 185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가난과 박해를 피해 약 150만 명이 미국과 호주로 대거 이주하였다. 1940년대에는 2차 대전을 피해 독일, 노르웨이 및 발틱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이 중립국인 스웨덴으로유입되었으나 공산화된 발틱국가 출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전쟁 종료 후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이후 1980년대까지 노동력 부족에 따라 여러 유럽국가에서 스웨덴으로의 이민유입이 이루어졌다. 또한 1980-89년에 진행된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이라크 약 7,000여 명 그리고 이란에서 약 27,000여 명이 난민으로 유입되었다.

스웨덴에서 본격적으로 이민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발칸분쟁에 따라 약 10만여 명의 보스니아와 코소보 내 알바니아인들이 스웨덴으로 넘어와 망명지위를 받아 정착하였으며, 2001년 스웨덴이 유럽국가간 상호 국경을 개방한 쉥겐조약(Schengen Agreement)에 가입하고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중동지역과 아프리카에서 난민이 대거 스웨덴으로 유입되었다. 2015년을 정점으로 매년 10만 여명 이상의 난민이 스웨덴 망명을 신청 하여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스웨덴은 1990년대까지 비교적 이민자에게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였으나 2000년대 이후 특히 중동지역 난민 유입으로 빈곤, 사회적 비용증가, 문화종교적 이질성과 범죄율 증가 등으로 이민과 망명자문제는 큰 사회적 현안이 되었다.

복지

스웨덴은 경제/사회학적으로 semi-socialist state(半 사회주의형 국가)로 분류되는 나라며 가장 전폭적인 복지 정책을 추진하는 나라로 꼽힌다. 이 나라의 복지 모델이 확립된 것은 1950년대 스웨덴이 유럽 1위의 경제 부국으로 등극한 후 제도적 측면에서 사회주의 모델을 차용한 것에서 시작한다. 스웨덴은 높은 복지와 함께 높은 세금 부담률이 특징이며 학교, 보육, 건강, 연금, 노인 복지, 사회복지 사업 등을 국가가 거의 무상 제공하고 있다. 다만 2000년대 중반 우익 연립내각이 들어서며 스웨덴 복지 제도가 상당히 축소되기도 했지만, 사회적 합의이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좌익 연립내각이 다시 들어섰다.

의료

스웨덴의 의료는 의료비를 본인과 나라가 같이 부담하고 있다. 스웨덴은 1년에 진료비가 900크로나(15만원)를 넘으면 바로 '무료 진료카드'가 나온다. 이 때부터 병원 치료비는 모두 공짜다. 약값도 1800크로나(32만원) 이상은 내지 않는다. 환자가 부담하는 상한금액은 국회에서 결정하는데, 1998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제도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다만 입원비는 하루에 80크로나를 별도로 낸다. 입원했을 때 먹는 세 끼 식사와 간식 값이다. 이러한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월급의 50%를 세금으로 내지만 복지를 제공받기 때문에 국민들의 조세 불만이 없다. 또한 노동자가 병이 나면 법으로 병가를 주도록 되어 있어서, 병이 났다고 해서 해고되는 부당해고가 없으며 생활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월급의 80%를 사회보험청에서 준다.

노동정책
  • 연대임금제: 노동조합과 자본가의 중앙협의로 산별 임금차별을 줄이고 있다. 또한 최저임금도 노사가 같이 정하는데, 평균임금의 62%이다. 즉, 스웨덴은 노동조합과 자본가가 같이 회사를 꾸리는 공동경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대임금제는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적용함으로써 직장에서의 차별을 개선하는 정책이며, 연대임금제를 참여할 수 없는 영세사업장들은 자연스럽게 퇴출되도록 하여 일자리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까지 있다. 영세사업장의 퇴출, 사양사업의 발생 등으로 생기는 실직자들은 비용부담이 없는 직업교육 및 스웨덴 노총이 구직자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직업을 소개하기 등으로써 돕는 적극적 노동정책으로써 구직자의 흥미에 맞는 직업으로의 이동이 되도록 한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인 스웨덴은 자사율이 제일이다."라는 일부의 잘못된 생각과 달리 실제로 스웨덴의 자사율은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10%에 그친다.
  • 비정규직 정책: 비정규직의 비율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차별이 낮다. 스웨덴의 비정규직은 15%이며, 정규직의 80%를 받는다.
  • 창업지원: 노동자가 자영업자로 전환할 경우에 사업계획서를 내야 하며, 창업전문가들이 자영업을 해도 되는지 결정한다.
  • 퇴직자: 스웨덴에서는 퇴직자에 대해 벌이가 없어 생활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1년동안 월급을 주고 있으며, 6개월치 월급을 한 번에 준다. 퇴직자들의 전직을 돕는 민간회사인 '노동자안정위원회'에서 보충실업급여(처음에 월급의 80%, 그 다음에는 70%)를 지불하며, 창업에 필요한 절차와 법률, 세무 등 실무지식도 가르친다. 대신 퇴직자는 노동자안정위원회에 월급의 0.3%를 지불한다.
  • 실업보험: 스웨덴의 실업보험제도는 스웨덴 노총을 상위단체로 한 산별노조가 만든 실업기금을 통해 운영된다. 노동자는 취직과 함께 실업기금에 가입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조원이 된다. 노조 조직률이 80%를 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씨는 직장에 다닐 때 한 달에 실업보험료로 100크로나, 노조회비로 200~300크로나를 냈다. 스웨덴 실업보험기금연합 멜케르 외데브링크 이사는 "재원은 고용주가 55%, 노동자가 45%를 부담한다."고 말했다.

문화

문학

작가이자 극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스웨덴 문학사의 두드러진 존재는 스트린드베리이며, 자연주의 비극 《줄리 아가씨》, 상징주의적 작품 《몽환곡(夢幻曲)》으로 명성을 얻었다. 많은 외국어로 번역된 작품으로는 라게를뢰프 여사의 《닐스의 이상한 여행》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의 《말괄량이 피피》가 있고 20세기 프롤레타리아문학을 대표하는 빌헬름 모베르그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범죄물, 호러, 스릴러 같은 장르소설에 일가견이 있어서 2000년대 이후부터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기도 하다. 밀레니엄 시리즈와 렛미인이 대표적이다.

오베라는 남자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유명하다.

음악

1974년 4월, 스웨덴 밴드 ABBA

부드러운 스웨디시 팝, 과격한 데스 메탈, 블랙 메탈, 그리고 현란한 유로 테크노가 공존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영미권을 제외한 나라 중에서 가장 메탈이 발달한 곳이라고 한다. 실제 메탈 장르 중 NWOSDM(New Wave of Swedish Death Metal)이라는 장르도 있다. 이 장르에 속한 밴드들은 다크 트랭퀼리티, 앳 더 게이츠, 소일워크, 인 플레임스, 아치 에너미 등이 있다. 신기한 건 이 밴드들이 모두 스웨덴의 대도시 예테보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테보리는 멜로딕 데스 메탈의 성지로 불린다. 현재는 이 멜로딕 데스 메탈과 미국의 하드코어가 혼합돼서 메탈코어라는 장르가 나왔다. 그리고 전쟁에 관련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메탈 밴드 사바톤과 Hearts On Fire로 유명한 해머폴(Hammerfall)도 이 곳 출신이다. The Final Countdown으로 유명한 메탈 밴드 Europe도 스웨덴의 밴드다. Djent의 뿌리가 되는 밴드인 메슈가 역시 스웨덴 밴드다.

비단 헤비메탈뿐만 아니라 락에서도 몽환적 사운드로 자신들만의 색을 살린 스웨디시 락도 컬트적인 인기가 있으며, 대표적으로 Club 8, 켄트, 카디건스 등이 있다.

메탈은 아니지만 과격한 록 음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밴드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1998년 전설적 앨범 The Shape Of Punk To Come 을 발매하여 하드코어 펑크의 전설들 중 하나가 된 Refused가 있으며, 노이즈 록 계열의 전설로 추앙받는 Brainbombs도 있다. 특별히 Brainbombs는 어쩐지 평화롭고 조용할 것 같은 스웨덴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과격하고 적나라하며 폭력적인 가사로 유명하며, 이에 따라 구설수에 여러 번 오른 적이 있다 (대표작 "Obey"). 그렇게까지 널리 알려진 밴드는 아니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밴드다.

이럴 정도니 대중음악 역시 스웨덴의 최고 수출품 중 하나이다. 실제 미국, 영국 다음으로 음악 수출이 많은 나라가 스웨덴이라고 한다. 1970-1980년대의 ABBA, 잉베이 말름스틴, 1990년대 초 세계를 휩쓸었던 락싯(Roxette)과 에이스 오브 베이스(Ace of Base)와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팝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프로듀서 맥스 마틴 역시 스웨덴 출신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꽤 유명하고 아카펠라 그룹 리얼그룹도 스웨덴 출신이다. 그리고 웃웃우마우마의 원곡인 〈Carameldansen〉을 부른 가수 카라멜(Caramell)(현 Caramella Girls)의 국적이 바로 여기 스웨덴이다. 2004년엔 Dungen이라는 사이키델릭 록 밴드가 스웨덴어로 부른 앨범이 미국 인디 록 시장에 진출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또한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나 마리 앙투아네트(영화) 삽입곡으로 유명한 라디오 디파트먼트, 한국으로 살아서 신촌 lindh 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Lasse Lindh 역시 스웨덴 출신 아티스트이다. 2014년부터 주목받은 싱어송라이터 토브 로, 2017년 클린 밴딧과 협업하며 주목받은 자라 라슨이 스웨덴 사람이다.

일렉트로니카 음악, 특히 EDM씬으로써는 엄청난 강국이기도 하다. 하우스 계열에서 오랜 명성을 떨쳐온 Eric Prydz와 상업성까지 겸비하여 스웨디시 하우스의 세계화를 이끄는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 3인방, Avicii, 그리고 Alesso가 있다. 여담으로 페이데이 2게임의 음악 프로듀서 Simon Viklund도 스웨덴사람이다. NCS 등 인디 레이블을 보면 태반이 스웨덴 아니면 네덜란드 출신 프로듀서 투성이다. 놀랍게도 대한민국의 트로트와 같은 음악이 존재하는데, 단스반드(Dansband)가 그것이다. 이름처럼 원래는 '오부리' 밴드에서 유래한 것으로 위의 다른 장르들과 달리 철저하게 중년,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음악이라 보면 된다.

대표 밴드로 4인조 밴드 Ace Of Base가 있다. 1993년 빌보드100 탑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예술

에칭의 대가인 소른은 스웨덴 최대의 화가로 생각되고 있으며, 조각에서는 형식주의적 조각을 확립한 밀레스를 들 수 있다. 또 17~18세기의 대표적 건축을 테신 부자(父子)가 만든 스톡홀름 왕궁이라 한다면 근대건축에서는 20세기 초에 지은 스톡홀름 시청사를 들 수 있다. 공예 디자인도 20세기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유리그릇·기·은그릇·직물·가구 등이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무용

스웨덴과 덴마크, 핀란드 등 여러 북유럽 국가에서는, 과거에 폴란드에서 들어온 폴스카를 춘다.[12] 이 밖에 스웨덴의 제례·사교 댄스인 레크스트와 4분의 4박자로 짝이 되어 추는 렌닝엔 등이 있다.

스포츠

북쪽 지대에 위치한 특성상 스키 등 겨울 스포츠가 발달해있다. 그 외 상당수는 축구도 즐겨한다. 또한 세계적인 축구 선수들이 나오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헨릭 라르손, 프레드릭 융베리, 요한 엘만데르 등이 있다.

영화

스웨덴 영화의 중심지는 예테보리다. 매년 1월 북유럽 최대 규모의 예테보리 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예테보리 교외 트롤헤탄에 북유럽 최대의 영화 스튜디오 필름 이 베스트(Film i Väst)가 있다. 필름 이 베스트는 스웨덴의 할리우드, 일명 트롤리우드(Trollywood)라고 불리며 스웨덴은 물론 북유럽 대부분의 영화 제작 및 후반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더 스퀘어도 필름이 베스트 제작 영화.

요리

스웨덴 요리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덴마크, 노르웨이)처럼 전통적으로 조리법이 단순한 편이다. 특히 생선 중 청어와 고기, 감자가 주요 식품 재료이며, 향신료의 사용은 적다. 유명한 요리로는 전통적으로 그레이비와 삶은 감자, 월귤잼을 곁들인 스웨덴식 미트볼, 즉 셰트불레와, 팬케이크, 루테피스크와 스웨덴식 부페인 스뫼르고스보르드(스웨덴어: smörgåsbord)가 있다. 아크바비트(스웨덴어: akvavit)는 인기있는 증류된 술이며, 스납스(스웨덴어: snaps)를 마시는 것은 문화적 중요도를 가진다. 납작하고 건조하며 바삭바삭한 전통적인 빵인 크네케브뢰드(스웨덴어: knäckebröd)는 근래에 들어 여러가지의 형태를 지니며 발전해왔다. 지역적으로 중요한 음식은 북스웨덴에는 발효한 청어인 수르스트룀밍(스웨덴어: surströmming)이 있으며, 스웨덴 남부의 스코네에는 장어가 있다.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외국의 영향에 개방적이며 스웨덴인들이 수용하여 즐겨 먹는 음식으로는 18세기에 수입된 프랑스 요리에서부터, 비교적 근래 수입된 스시나 케밥 등이 있다.

언론

공영방송사인 SVT와 민영방송인 TV3, TV4, 한국의 EBS와 같은 kunskapskanalen, SVT Barn 등이 있다. 유료 성인 채널로 TV 1000도 있다.

위의 채널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의 대다수는 주로 뉴스 및 영어권의 인기/비인기 프로그램에 스웨덴어 자막을 달아서 내보내는 것 들이며, 간혹 자체 제작한 다큐 및 드라마(ex. solsidan)등도 방영한다.

노르웨이, 덴마크처럼 스웨덴도 1980년대까지는 TV 광고방송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보다 사회가 보수적인 시절, TV광고를 허용하면 공영방송의 질이 떨어지고 도덕적 타락을 부를 수 있다는 여론이 컸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사회가 자유분방해지면서 광고방송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여전히 당국에서는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1980년대 공영독점체제를 폐지하고 위성방송인 TV3이 개국하면서 광고방송이 허용되었고, 뒤이어 1992년 지상파 민영방송인 TV4의 개국으로 광고방송이 완전 자유화되었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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